드디어 살풀이 작품 완성이 눈앞에 다가왔다. 13분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올해 4월 중순부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배워온 춤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바람에 어려움이 많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완성이 눈앞에 다가왔다.살풀이춤의 종류는 다양하다. 나는 이매방류의 살풀이춤을 배웠다.살풀이춤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며 전통춤에서 가장 중요한 호흡인 정중동을 가장 잘 표현한 춤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무속인들이 추던 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기방에
‘춤은 곧 자연이다’몇 년 전에 작고하신 예인 이매방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오래전, 우리 춤의 동작을 익히다 춤의 선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 곡선으로 되어 있을까? 깊은 생각에 잠길 즈음, 가을 들녘에서 문득 산들바람이 연주하는 리듬에 몸을 움직이는 가느다랗게 위로 쭉 뻗어 있는 들풀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누군가가 다가가서 손으로 뚝 잘라 버리면 그만인 여리디여린 생명체가 거칠고 매서운 대자연의 광풍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생존방법은 무엇일까? 그들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바람의 방향에 몸을 맡기듯
일요일 아침, 2학년 친구가 들어왔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그런데 두 손을 자꾸 뒤로 감추는 것이었다."손은 왜 뒤로 가니? 선생님께 줄 편지구나! 어서 주렴.” 라고 하자 잠시 망설이다가 "제가 쓰고 싶어서 쓴 거 절대 아니에요. 엄마가 쓰라고 했어요." 하면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살며시 편지를 내밀었다.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1학년 때부터 수업한 친구인데, 마음에 들지 않거나 화가 나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안 해!" 라며 손을 놓아 버리는 친구였다.2학년이 된 후, 달라지긴 했지만 글쓰기가 싫을 때 간혹 행동이 나온
한국무용의 품격을 높이는 하나의 요소가 발디딤이다. 한복의 치맛자락을 살포시 옆으로 끌어 올리면 하이얀 버선이 드러난다.버선을 신은 발의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지는 곡선미는 한국 전통무용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사뿐사뿐 움직이며 위로 솟은 버선코를 돋보이게 하는 발 매무새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간드러지게 만든다. 두 발의 움직임은 마치 밀당하는 연인같다.어느 무용에서나 발과 하체의 힘은 중요하다. 무용 동작에서 기둥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무용은 앞으로 발을 디뎌 나아갈 때 무게 중심을 앞발로 옮겨야 하고, 뒤로 움직일
오래전, 춤은 생존 그 자체였다. 극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들은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자 숭배의 대상이었다. 특히 농경문화였던 우리 민족은 질풍, 신뢰, 폭우 등 자연재해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고 생명을 유지해야 했다. 자연에 정령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자연물을 숭배하고, 제의로서 굿을 하면서 노래와 춤으로 초월적 존재와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행위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간이 자연을 도구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서서히 유희적 가치로 발전하여 예술화되었다.조선 시대에 전통춤은 궁중 무용(정재)과 민속무용으로
조지훈의 '승무'라는 시는 한국전통무용의 정수인 '승무'라는 춤을 섬세하게 묘사한 시다. 기다란 장삼이 하늘하늘거리며 사뿐히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처럼 우아하고 아름답다. 불교적 색채가 강한 이 춤은 기다란 장삼을 뿌리면 멀리 퍼져나갔다가 흘러내리는 곡선미가 백미다. 몇 해 전 이매방 선생님 제자 백경우 씨의 '승무'를 본 적이 있다. 동영상이 아닌 전문 무용수가 추는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승무'의 첫 연과 마지막 연의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라는 시구가 떠나질 않았다.승무는 한
나는 무용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현재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춤꾼도 아니다. 뒤늦게 우리춤에 푹 빠진 아마추어 춤꾼이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 무용가보다 춤꾼이라고 말하는 게 좋다고 했다. 무용가는 전문적인 직업 냄새가 나지만, 춤꾼은 춤이 좋아서 즐긴다는 의미도 있다는 이유다. 나도 무용가보다 춤꾼이라는 말이 정겹다. 내가 한국무용을 시작한 계기는 의도적이면서도 우연이었다.30대 때, 나는 노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방구석 지키는 노인이 아닌 활동적이고,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 삶을 살려면 지금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