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저물녘달맞이 나선 들판에망아지 하나 백골이 되어 마중한다.여름 끝자락먼길 떠난 망아지어느새 살옷 훌훌 벗고저문 하늘 바라본다.오름 굼부리 위로둥근달 떠오르고어미말 하나묵묵히 풀뜯는다들판 저 멀리 어둠속노루 울음소리 밤공기 가르는데담 낮은 무덤 하나달빛 아래 적요하다.달빛 들판 나서다 마주친길섶 그림자 하나무심한 자동차 불빛에채 감지 못한 눈동자 반짝이며밤하늘 바라본다.아! 애이불비*가을밤이여.애이불비 :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픔을 나타내지 아니함 김수오제주 노형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수오 씨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초여름 들어 퇴근길 나서도들판 저녁놀 감상할 정도로 해가 길어졌다비가 잦아든 저녁 먹장구름 살피며 들판으로 들었다이맘때 들판에는 만삭의 말보다햇망아지 붙어다니는 어미말 많아진다봄날에 꽃피고 가을에 열매 맺듯 여름과 가을에 걸쳐 부지런히 자라야혹독한 겨울을 견뎌낼 테이니망아지들도 이맘때 꽃처럼 피어난다가랑비에 젖은 수풀 헤치며 햇망아지들을 따라 다니다누워있는 만삭의 어미말과어미를 지켜보는 해지난 망아지를 만났다순간 전율이 일었다.아! 결정적 순간이구나!어미말이 놀라지 않게 서서히 다가가숭고한 현장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가랑비를 맞으며몸
고사리철 저물어가는 오월 어느날최악의 황사로 숨막히던 날들을 보내고퇴근하자마자 오랜만에 들판에 들었다평소 살갑게 다가와 안기는 망아지가기다렸다는 듯 유난히 반갑게 안겼다망아지 등 긁어주며 노닐다가어둠속 힘겹게 드러누운 흰 말을 보았다가까이 가서 보니 곁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고가만히 지켜보니 갓 태어난 망아지였다새끼 낳느라 힘겨웠던 어미말은새끼 곁에 지친 몸 누인채꼼지락거리는 새끼를 지켜보고 있었다겨우 몸을 일으킨 망아지가 어미말을 찾아 젖을 물었다새끼는 어미젖을 실컷 먹고나서 드러눕고어미는 새끼 곁에서 열심히 풀을 뜯었다젖먹고 눕기
2018년 여름,천그루의 나무가 무참히 잘려나간 자리에나무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2020년 봄,사람들 모여 아이들과숲 베어진 빈자리에 나무를 심었다2년 전 잘려진 나무도모아이*로 태어났다낭심는 사람들예술가들도 다양한 방식으로잘려진 나무들을 위무하였다2021년 봄,기후위기와 팬데믹 시대지구의 날을 맞아 다시 숲에 모였다어린 나무들은 모아이보다 높이 자랐고아이들은 더욱 여물어졌다삼나무 숲을 지나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 천미천에 들었다뜨거운 용암이 흐르며 만든 비경 속에아이들의 흙피리 소리가 잔잔히 흘렀다기나긴 천미천도 하천정비 사업으로포
코로나에 숨막힌 날들에도변함없이 피어나는 들꽃처럼봄 들판에 햇망아지 피어난다.들판에 들어서 어미말 판박이인 햇망아지 한 마리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눈 마주치면 슬그머니 어미말 뒤로 숨다가무심한 어미의 반응에 점차 경계를 풀더니 어느새 개구쟁이처럼 성큼 내게 다가온다곁에서 지켜보면말들이 참 영특하고 감수성이 섬세함을 실감한다어린 새끼를 돌보는 어미말은낯선 이가 나타나면 위협적인지 판단하고지체없이 새끼를 데리고 멀찍이 피해버린다새벽녘이나 해질녘에 나타나 별빛아래 잠들때까지 자기들 곁에 쪼그려 앉아 있다보니 어떤 어미말은 내 눈앞에서 드러
봄비 지나간 봄날흐드러진 벚꽃 뒤로하고 저물녘 들어선 들판에들꽃들과 어우러져 여기저기 고사리들 피어난다.제비꽃 트멍에 여린 햇고사리 하나고사리손 이쁘게 내민다.해 지고 세상 어둠 속에 잠들 때동녘 하늘로 둥근달 떠오른다.어린 시절 시골집 컴컴한 골목길 올레 입구 은은한 가로등처럼 붉은 보름달 부드러이 들판 곳곳 비춰준다.여린 봄풀로 허기채우는어린 망아지에게도동무랑 노느라 멀리 떨어진새끼 향하는 어미말에게도어쩌면 그해 겨울 눈보라 속 들판을 헤매던 원혼들에게도어머니 품처럼따스하게 비춰준다.4ㆍ3 추념일 지나면어머니 모시고 들판에 들어
한 달 전제2공항여론조사 결과를 듣고 들판에 들었다멀리 한라산에 채 스러지지 않은 잔설 희끗해도별빛 가득 찬 밤하늘 아래 봄기운 물씬하였다한 달 후벚꽃 만발한 주말 저녁봄비 맞으며 사람들 다시 촛불을 든다어린아이는 촛불에 시린 손 녹이며 마냥 즐겁다홀로 제주산야 누비며 풍광을 찍다간혹 사람이 든다오늘 주인공은 제주 여성 농민들어미들에 보호받는 아이를 중심으로 담는다먼 훗날 아이가 자라서 추억의 사진이 되길다음날 저녁비 그치고 세찬 바람 불어온다중산간 들판은 살을 에는 칼바람 난무하고먹장구름에 뒤덮인 한라산은 다시 겨울이다칼바람에도
2월 하순.꽃샘추위 지나간 저녁오랜 염원 담긴4·3특별법 개정안 통과 소식을 안고겨울 기운 채 가시지 않은중산간 들판으로 들었다.긴 겨울 견디던 늙은 말 하나꽃샘추위에 끝내 눈을 감고어린 조랑말 하나해맑은 눈망울로 가만히 마주한다.겁이 많아 서서 잠자는 말들서로 의지하며 긴 밤 지새다건초 더미 여기저기에 평안히 몸을 누인다.제주 산야 여기저기 스러져간칭원헌 넋들도긴 세월 깊은 상흔 간직한살아남은 이들도저 말들처럼이제 평안한 봄날이길. 김수오제주 노형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수오 씨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한의학에 매료된
1월의 마지막날.휴식년 통제전 마지막 새벽안스러워 발길 끊었던 용눈이오름에 들었다.오름 초입 반갑게 맞아주던 무덤도 빈집 되어 새벽 여명에 스산하다.부드러운 곡선의 실루엣 위로 아침해 붉게 떠오른다. 햇살에 드러난 능선 등짝 깊은 상처선명한 수술자국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굼부리 안 무덤 하나멀리 설산 눈길 아래 안온한데오름 기슭 무덤 하나포크레인 삽날 아래 위태롭다.저 능선에 넘실대는 인파잠시 쉰들 온전히 치유될까돌아서던 발걸음 멈추고 가만히 돌아본다.어쩌면 지금은화산섬 전체가 멈추고돌아볼 때가 아닐는지. 김수오제주 노형에서 한의원
입춘 갓지난 주말여느 해 같으면 오름 기슭 잔설 사이 피어난 노란 복수초 만나러 갈텐데올해 봄기운은 섬의 동쪽 성산에서 맞이한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깃발과 머리띠도땅땅거리는 부동산 팻말도입춘 햇살에 노랗게 빛난다.뻥뚫린 도로위로 허허호호 렌트카 무심히 질주하고두 손 모은 사람들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묵묵히 절한다"성산을 살려줍서""반대로 지켜줍써"절뚝이는 걸음마다 간절함 배인다.성산읍 도배한 새 현수막들 콘크리트에 점령당한 섭지코지 배경으로 번들거리는데수년의 세월에 타들어간 노란 깃발 애처로이 바람에 펄럭인다.묵묵히 하루의 순례
매서운 동장군이었다.온 섬을 휘몰아친 강추위에늙은 말 한 마리 눈 위에 몸을 내렸다.들판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노루도 말들도 시련의 계절이다.쌓인 눈을 헤치며 잔풀 뜯어야 한겨울 무탈히 견디는데노쇠한 말은 끝내 동장군의 맹위에 명을 다하였다.화산섬 뒤덮은 폭설에먼저 잠든 망아지도 뒤따른 늙은말도산담과 더불어 눈이불 덮었다.저 무덤 속 주인의 생은 어떠했을까.동장군 물러가 햇살 온화한 날망아지와 늙은말 나란히 흙속으로 돌아갔다.그렇게 삶은 지속된다. 김수오제주 노형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수오 씨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동짓날 밤이었다.강추위 예보대로 밤이 깊어질수록 매서운 바람에 눈발이 거칠어졌다. 들판의 제주마들은 여느 때처럼 서로 몸 맞대어 추운 밤 견디고 있었다. 그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는 내 손도 꽁꽁 얼었다. 먹장구름에 별빛도 사라진 깊은 밤, 들판을 내려오는데 멀리서 가냘픈 망아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다가가 보니 망아지 하나 죽은 듯 누워있고 어미말이 바람맞으며 곁을 지키고 있었다. 어둠 속 가까이 지켜보니 다리 끌던 망아지였다. 뒷다리가 마비되어 앞다리로 몸을 끌면서 어미말을 따라다니던 어린 망아지. 꿋꿋하게 잘 버티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