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지역 작가들의 작품들을 따뜻하게 읽어온 김신숙·현택훈 두 시인의 [시인부부 제주탐독]이 이번 회로 마무리 됩니다. "서로 함께 부르는 노래"를 찾아나가는 두 시인. 두 시인이 함께 불러갈 "내일의 노래"들을 기대합니다.제주장애인주간활동센터와의 인연은 3년 정도 되었다. 나는 제주역사 강사로, 아내는 제주어 강사로 뇌병변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수업을 진행했다. 특수교육에 대한 이해가 없던 우리는 처음에는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1년이 지나고 그래도 나름 소통이 된 아내는 살아남았고, 나는 계약
내가 섬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열세 살 무렵이었다. 별도봉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혼자 빠져나와 산지등대에 갔다. 그곳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는데 처음 느껴보는 고독이 파도처럼 밀려왔다.제주도 주변의 섬들을 모두 돌아다닌 뒤 그 섬들에 관한 책을 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적 있다. 하지만 나는 모험가가 될 수 없는 체질이다. 멀미를 심하게 한다. 마라도 가는 배에서도 속이 울렁거린다. 목포로 가는 배는 치과만큼 곤혹스러웠다. 친구가 해군에 함께 지원하고자 했을 때 멀미 때문에 손사래를 쳤다. 뱃고동 소리만 들려도 멀미가 난
제주도 어디선가 아코디언 소리가 들리면 그 자리에서 풍경과 함께 흔들리는 음악 소리에 귀를 열면 좋을 것이다.제주도 곳곳을 다니며 자연과 어우러진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모임이 있다. 전직 영어교사, 직장인, 농부, 초등교사, 소방관 등으로 구성된 바숨(바람이 숨결이 될 때)이다.설문대할망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풀어낸 『큰할망이 있었어』를 낸 김영화 작가가 새 책을 출간했다. 동료 예술가들과 동광리 어르신들과 함께 조 농사를 지으며 만든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김영화, 이야기꽃, 2022)이다. 이 책 안에 바숨의 모습이 있다.한해
이애자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은 단시조가 주를 이룬다. 몇 해 전에 이애자 시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단시조(평시조)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단시조야말로 시조 형식의 정수이기에 단시조로 시조의 멋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책에 수록된 단시조 「입」, 「초승달」, 「단호박」, 「제주 사람」 등을 읽으면 그의 시론을 짐작할 수 있다.나는 시조를 잘 모른다. 시조는 글자 수를 지켜야 하는 정형시 정도로만 생각했다. 시조인지 확인하려면 음수율과 음보율을 따지는 게 우선이었다. 시조가 고려 말엽에 시작된 우
태풍이 오면 각 언론사의 차량이 모이는 곳이 있다. 바로 법환포구이다. 태풍이 오는 모습을 찍기 위해서다. 다른 해안도 많은데 유독 그곳에 모이는 까닭을 알아보니 의외로 간단하다. 그곳이 그림이 가장 잘 나와서 그렇다고 한다. 그만큼 법환 바다는 파도치는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범섬에는 목호의 난이라는 역사가 전해온다. 최영 장군은 목호를 토벌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제주도에 상륙했다. 목호는 최후의 항전지로 범섬을 선택했다. 아무리 대군도 바다가 가로막고 있으니 전원 공격이 어려웠다. 전략가 최영은 제주도 어선들에게
아내가 내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귀신이 무서울까, 글자가 무서울까?”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귀신이 무섭다고 말했다.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내 생각이 깊지 못했다.글자들이 귀신보다 더 오래 살아 남았으니 글자가 더 무서운 거라고. 글자야말로 정말 무서운 존재인 것.(나는 역시나 아직 멀었다.)동산 위에 있는 세 그루의 소나무가 무서웠다. 늙은 소나무 세 그루는 한낮에도 검게 보였다. 누군가의 그림자 같았다. 작은 물결을 일으키는 것도 같았다. 나는 짐짓 고개를 돌리고 걸을 때도 있었다. 으스스한 풍경에는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
육지에 사는 사람이 내게 맛집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나는 우물쭈물한다. 내가 평소에 자주 가는 식당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식당을 기대하는 건 아닐 것이다.서귀포에서 문학 프로그램이 끝나고 뒤풀이 장소를 알아볼 때 식당을 선뜻 추천하지 못하는 나는 서귀포를 정말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 현지인이라고 해서 여행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권리는 없다.제주도를 좋아하게 만든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준 노래가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이다.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이 노랫말에 등장하는, 바다가
지난 수요일에 한림에 있는 황우럭만화카페에 갔다. 그곳에서는 한림에 사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만화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구술 채록이 최근 꽤 활발히 이루어지는 편인데, 그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만화를 그린다는 점이 흥미롭다.이야기를 전하는 어르신 중에서 고창훈 농부는 1939년 한림2리에서 태어났다. 제주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에서 배운 농업 기술을 실제 농사에 적용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참외 농사를 지을 때는 참외가 덩굴에 가득 열려 발 딛을 틈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일찍이 스타 강사였다. 농업 관
요즘 한수풀도서관에서 수필 교실을 진행 중이다. 시 창작 교실은 몇 번 해봤는데, 수필은 처음이다. 그래서 수업을 준비하면서 수필의 특성을 다시 살피는 중이다. 수필은 쉽게 생각해도 될 정도의 갈래인 건 맞지만 수필 또한 결코 쉽지 않은 글이다.내 인생의 책, 유년의 원풍경, 비 등 제재를 정해 글을 쓴다. 자신이 쓴 글을 발표하는데, 하나같이 사연이 아릿하다. 세 번째 수업 시간에 이 책을 선보였다. 이아영의 『애기 해녀, 제주 일기』(미니멈, 2021)이다.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통한 깨달음을 전하는 글이다. 이아영은 제주 색달
지난 6월 17일 금요일에 아무튼 책방에 갔다. 아무튼 책방은 아라동에 있는 작은 서점이다. 주로 인문학 서적이나 독립출판 서적을 판매한다. 최근에 모슬포에 있는 어나더 페이지와 아무튼 책방과 내가 관여하는 서귀포 시옷서점이 뜻을 모아 추진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부쩍 교류가 잦아진 서점이다.마침 양경인의 논픽션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북토크를 한다고 해서 시간을 맞춰 가보았다. 양경인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그가 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을 하기 몇 달 전에 나는 우연히 그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내공 있는 문
직진으로만 운전 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열아홉 살, 운전면허를 따고 아빠 키를 몰래 훔쳐 트럭을 몰았다. 직진만 할 수 있어서 계속 앞으로만 달렸다. 뒤로 갈 수도 옆으로 갈 수도 없었다. 가다가 멈출 수는 있었지만 방향을 바꿀 수는 없었다. 계속 직진만 했다. 그래도 길이란 곧게 뻗어있지만 어딘가에서는 사람 팔꿈치처럼 방향을 틀어주는 지점이 있어서 로터리를 빙 돌아 다시 집으로 차를 몰고 올 수 있었다. 아빠에게 엄청 혼났으나 기뻤다. 운전을 실컷 했다. 운전면허를 딴 초창기, 잠을 자면서도 운전만 하고 싶었다. 버스는 대부
양동림 시인의 첫 시집 『마주 오는 사람을 위해』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를 위한 시집이다. 누군가 앞서가고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나란히 걷기 위해 마주 오는 사람을 기다린다. 그것은 평소 양동림 시인의 성품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그는 나름의 신념을 갖고 올곧게 행동하고 말한다.양동림 시인은 2008년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그를 아는 사람은 그가 대학 때부터 시를 써왔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위해 등단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13년 지나 작년에 이렇게 첫 시집을 냈다. 이 시집에는 대학 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