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10년이 넘게 부부가 모두 일을 하며 살아가는 맞벌이 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 내내 바쁘게 활동하다 집으로 돌아가 저녁 준비하고 아이들이랑 먹고 나면 세상 모든 일이 귀찮게 느껴지기만 한다. 빨래는 수북이 쌓여가고 빈 그릇으로 싱크대가 넘쳐나기 일쑤다.거기다 하루가 다르게 훌쩍 커가는 아이들까지 돌보려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닐테고 많은 부부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리라. 특히 제주는 10가구 중 6가구가 맞벌이로 전국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지난 달 지인들과 대화하다가 아는 사람이 종종 가사도우
“햇살이 포근한 걸 보니 봄은 봄인가 보네”라고 자판기 커피를 뽑으며 입사동기인 동석이가 인사를 건넨다. 나는 “봄이면 뭐하냐. 피곤해 죽겠는데”라고 쏘아붙였다. 계속되는 야근으로 몸이 천근만근인지라 기분 좋게 답할 여유가 없다.동석이도 사정을 뻔히 아는지라 조금 미안했는지 “그래도 다음 주면 저축해둔 휴가 몰아서 쓸 수 있으니 제수씨랑 어디 놀러라도 다녀와. 나도 가족들이랑 며칠 여행 가기로 했어. 애들이 엄청 좋아하더라고”라며 위로를 건넨다. 나도 ‘그래 이번 주만 지나면 제대로 쉴 수 있겠지. 동석이 말대로 오랜만에 휴가나 가
얼마 전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서울의 대형종합병원에 다녀왔다. 국내 유수의 병원답게 내원환자와 보호자, 직원들로 북새통이었다.다소 복잡한 절차와 기다림을 거쳐 마침내 의사와 마주 앉았다. 증세를 얘기하고 소견을 묻고, 다음 검사일자를 잡는 데 10분 정도가 걸렸다. 비행기까지 타고 왔는 데 좀 더 시간을 내서 자세하게 얘기해 주지 않는 의사가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 수십수백명의 환자를 봐야 하는 조건이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진료실을 나와 수납창구로 갔다. 다음에 할 검사비용까지 정산한다고 해서 지출
‘삐이익! 삐이익!’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린다.나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동시에 휴대전화를 들여다본다. 재난문자가 울린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이는 많지 않다. 힐끗 문자내용을 확인하곤 곧 닫는다.코로나19 이후 행정안전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코로나19 상황을 알리기 위해 재난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확진자 수나 감염예방 조치 등을 알려주는 문자가 반갑기도 했다.그런데 코로나19 위기감이 많이 이완돼서인지 요즘은 잘 보지도 않게 되고 시도 때도 없이 울려서 살짝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아예 문자 알림
초겨울 후두둑 인도에 떨어진 낙엽들을 키 작은 중년여성이 일일이 쓸어 담고 있다. 아마 공공근로를 하시는 분으로 보인다. 정성껏 낙엽을 모아 비닐에 담아두면 시간 약속이나 한 듯 트럭 한 대가 바로 다가와 훌쩍 싣고 떠난다. 길 가 양편으로는 몇 장의 현수막이 각자의 사연을 담아 바람을 맞으며 앞뒤로 흔들리고 있다.방금 업무보고를 마친 듯한 공무원들이 한 손에 두꺼운 수첩을 들고 성큼성큼 지나친다. 민원 보러 왔다가 잘 안 풀렸는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지나가던 행인들이 이건 무슨 일이지 궁금해하며 곁눈질로 힐끗 쳐다본다. 2022년
2018년 12월. 서귀포에 볼 일이 있어서 차를 몰고 한라산을 넘어가던 중이었다. 라디오에서 사고 소식이 흘러나왔다. 태안에 있는 화력발전소에서 한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다는 것이었다.아나운서는 덤덤한 목소리로 사망한 노동자가 신체가 분리된 채 발견되었다고 전했다. 순간 온몸이 서늘해졌다. 작업현장에서 사망사고가 숱하게 일어나고 때때로 방송을 통해 알려지지만, 죽음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뉴스는 거의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서귀포에 도착할 때까지 머릿속에는 사망한 노동자가 어떤 상황이었을지, 왜 사고를 피할 수 없
중부지방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반지하방에 살던 발달장애 일가족의 죽음은 불안정한 주거환경과 정책에 대한 성찰과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론 피해자인 엄마가 노동조합 활동가이기도 하고 제주와 인연도 있어 더욱 애통하다.이번 폭우피해의 원인을 두고 많은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는 불투수층을 확대하는 도시계획, 차수벽이나 저류지 설치 등 사전적인 대응책 부재, 호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반지하주택 난립 등 그동안 발전과 성장이라는 도그마에 갇혀 무시되어 왔던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연세대학교 학생이 학내에서 집회를 연 청소노동자에게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연세대 학생은 학습권을 침해하는 불법집회를 했으니 업무방해에 해당하고, 이로 인한 손해를 보상하라고 주장한다. 국민의힘 소속인 서울시 구의원은 고소 학생 입장을 지지하면서 청소노동자 집회를 대통령을 흠집내기 위한 정치집회라고 사실과 다른 비난을 하고 있다.하지만 많은 법률전문가들은 업무방해든 손해배상이든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불법집회라는 주장은 청소노동자의 사실상 직접고용주인 대학의 교내에서 개최한 집회이기
인터넷 활용이 본격화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자신들의 얘기를 털어놓거나 대화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또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기도 하고 때론 치열한 공박을 하기도 한다. 갈수록 파편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SNS는 사회적 관계를 이어가는 유용한 도구이자 배움의 장이기도 하다.지방선거가 끝난 후 역시나 많은 이가 평가와 과제에 대한 말들을 SNS에 쏟아 놓았다. 기존의 진영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주장도 있었고, 처절한 자기반성과 대안, 전망에 대해 토로하는 글도 있었다. 그 많은 얘기 중에 관심을
5월, 서서히 더워지는 날씨만큼이나 지방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이번 지방선거는 무난하게 이길 줄 알았던 더불어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치러지는 선거이다. 그만큼 양 진영이 사활을 걸고 대결하는 모양새다. 정치세력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다만, 오직 선거 승리만이 존재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란 대중들의 삶을 바꾸는 유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진영의 이해득실을 넘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얘기다.그런데 지금 선거판은 그렇지 못하다. 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