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과 맥주 한잔을 하게 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기타리스트 누구를 가장 좋아하세요?""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누군가요?"난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저요! 전 저를 제일 좋아해요."그러면 다들 깜짝 놀라며 헛웃음을 짓거나 민망한 듯 살짝 시선을 피한다. 물론 '거침없이 당당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의 다른 표현이긴 하지만 전혀 실없는 얘기는 아니다.세상엔 닮고 싶고 맘속 깊은 곳에서부터 경외심을 품게 하는 음악가들이 너무 많다. 오늘만 해도 80살의 행크 존스가 연주하는 미니멀한 선율
그 시절 삶의 유일한 탈출구는 스크린 속이었다.월요일 아침이면 신문 귀퉁이에 있는 영화 시간표를 스크랩하고 개봉 날짜를 꼼꼼히 메모했다. 그리곤 주말을 기다려 영화관을 찾았다. 중학생이었던 90년대는 헐리우드 영화와 더불어 홍콩영화가 붐이었다. 극장마다 각기 다른 영화를 상영하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지만) 단관개봉 시절이었다.코리아극장과 푸른극장, 동양극장이 있던 칠성통과, 아카데미 극장이 있던 한짓골 일대를 싸돌아 다녔다. 상영관은 매캐한 담배연기와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눅눅한 공기로 가득차 있었다. 어둠속을 더듬어 두툼한 패
지난한 시간 끝에 조금씩 예전의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평소 자연이 주는 변화에 무딘 편인데 올 봄은 무언가가 생동하는 느낌이 가득하다.얼마전엔 편백나무로 둘러싸인 휴양림에서 캠핑을 했다. 야생의 기운을 그대로 머금은 숲 여기저기에선 익숙한 옛날 음악들이 흘렀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벌레소리와 함께 아련하게 들리는 포크음악이 유독 가슴을 울렸다.포크(Folk Music)의 매력은 무엇일까? 나무로 만들어진 악기들이 선사하는 목가적인 사운드와 소박한 멜로디, 삶의 정수가 담긴 노랫말의 어우러짐일 것이다.포크송(Folk S
얼마 전 음악 관계자 몇 사람과 함께한 자리였다. 팝음악의 황금기였던 90년대 음반에 관해 토론하다 각자의 음악감상법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뮤직바를 운영하는 한 선배는 음악을 들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레코딩 엔지니어인 친구는 톤과 사운드 밸런스, 악기들의 공간감 등이 먼저 들린다 하고, 한 공연기획사 대표는 음악이 풍기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모나지 않은 공감력 등을 유심히 듣는다고 한다. 다분히 직업적인 관점이긴 했지만 저마다 다른 음악을 듣는 방식이 흥미로웠다.음악을 만드는 창작자들은 어떨까?
음악을 듣고 처음 “앗!”하며 놀랐던 곡은 Simon and Garfunkel의 ‘Sound of Silience’였다. 부유하는 음률의 기타 아르페지오와 그에 맞춰 노래하는 두 목소리의 화음은 천상의 소리마냥 신비로웠다.중학교 때 친구 집에서 처음 들었던 김민기의 ‘친구’는 TV에서 듣던 가요와는 결이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좀 더 차분ㅎ고 기품이 있었다. 소곤대는 목소리가 좋았다. 그 영향으로 어쿠스틱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이나 등에 수록된 옛 노래들을 따라 불렀다. 통기타 반주에 맞춰 아름
한창 재즈를 공부하던 시절에는 '모던 크리에이티브'라 불린 새로운 형식의 연주에 빠져 있었다. 한창 혈기 왕성한 시절이었던지라 정통재즈는 뭔가 고루하고 틀에 박힌 느낌이었고 기타리스트로 치자면 믹 구드릭과 존 에버크롬비 류의 당시로선 진보적인 연주방식을 모토로 연습했다. 과거의 재즈는 '박제된 것'이고 재즈 연주자의 미덕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 있다는 스승의 가르침도 한몫 했지만 당시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그런 의미에서 당시에는 쳇 베이커를 들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괴물같이 엄청난 블로잉으로 하이노트의 강렬한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한다. 날씨가 쌀쌀한 요즘은 주로 자전거를 탄다. 올 봄에 중고로 구입한 주황색 자전거는 사슴처럼 날렵해 느리게 페달을 밟아도 우아한 걸음으로 빠르게 달렸다. 바다를 향해 십 여분 달리면 한적한 주택가가 나온다. 여러 갈래로 뻗은 좁은 골목길엔 시간을 간직하고 세월을 이겨낸 건물들과 나무,돌담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이제는 희미하게 형체만 남은 목욕탕 굴뚝의 벗겨진 글씨와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이발소의 간판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찌그러진 양은주전자가 걸려 있는 국밥집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숨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한 남자는 랭보를 떠올리곤 그의 비극적 삶에 대해 생각하다 순간 기억을 잃는다. 기억을 잃어버린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을 증명할 기록들을 찾지만 어디에도 흔적은 없었다. 다만 마시고 있던 커피가 ‘이디오피아 하라’인 것과 커피 잔이 진품인 것, 자신이 앉은 의자가 파리의 카페의자로 불리우는 토넷 No.14에 대해선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정지아 작가의 단편 에 대해 간략한 후기를 노트에 적고는 인터넷 창을 열었다. 오랜만에 재즈기타 커뮤니티에 접속하니 게시판에
계절마다 어울리는 음악들이 있다.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겨울에는 북구의 차가운 서정이 느껴지는 실내악풍의 클래식이나 ECM사의 음반을 자주 찾게 된다.봄에는 자연의 울림이 느껴지는 포크음악 위주의 어쿠스틱 사운드를, 여름의 뜨거운 태양빛 아래선 레게나 삼바,락앤롤등 역동적 리듬의 음악들이 어울린다.가을은 뭐니 뭐니 해도 재즈다. 한여름의 뜨거웠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고 거무스름하게 색이 바랜 나무들과 길가 여기저기 흩어진 낙엽들을 볼 때면 불현듯 멜랑꼴리한 음악들이 그리워진다. 이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은 ‘죽은 잎새’이라는
K에 대한 이야기는 20여 년 전 처음 들었다. 당시 음악 동료들에게서 들은 그의 일화들을 종합해보면 자연스레 떠오른 문장이 있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당시 국내의 내로라 하는 기타리스트들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유명 기타리스트조차도 그에게는 한낱 아마추어일 뿐이었다. 나는 그런 K의 안하무인적인 태도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고 상상이 더해지자 경외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그가 직접 재즈클럽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어스름이 막 내리기 시작한 저녁 무렵 친구들과 클럽을 방문했다. 용두암 해안가에서 공항쪽으로 걷다보니
나는 평생 록 음악을 연주하며 살 줄 알았다. 자멸감으로 똘똘 뭉쳐있던 고등학교 시절을 버티게 해준 건 오로지 록뿐이었으니까. 레드 재플린의 'Stairway to heaven', 전축에서 그 유명한 기타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때 그렇게 직감했다. 하루 종일 록음악을 끼고 살았다. 음악 속에서 밥을 먹고 책을 읽었다. 심지어 티비를 볼 때도 음악이 흘러야 했고 잠을 자다가도 음악이 꺼지면 소스라치게 놀라 깨곤 했다.어설픈 기타실력으로 호기롭게 밴드를 만들었다. 밤을 새워가며 곡을 연습했고 클럽과 소극장 등의 무대에 서기도 했
돌이켜보면 가장 뜨거웠던 여름날의 기억은 스물다섯 살무렵 경험했던 건설현장이다. 막 군대를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기 위해선 새로운 장비가 필요했다. 두어달 정도 쉬지 않고 일하면 좋은 기타 한 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말에 무턱대고 인력사무소를 찾았다.피부가 데일 듯 뜨거운 여름의 태양볕에 아침부터 얼굴을 타고 땀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벽돌을 지고 철근을 나르다보니 한두 시간만에 신물이 올라왔고 철근을 나르던 왼쪽 어깨는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의지는 강했지만 육체는 너무 나약했다. 점심 시간이 되자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임아름 비발디: '사계' 중 여름 3악장Sufjan Stevens 한 낮의 무더움을 견뎌내고 맞이하는 서늘한 여름밤을 좋아한다. 여름밤이면 늘 영화 속으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윤단비 감독의 은 제목 그대로 여름방학동안 할아버지 집에 얹혀살게 되는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15살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옥주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진행되는데 영화 곳곳에서 신중현의 이 흐른다.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 누구나 공감할 만한
기타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현악기 전문가인 프리츠 야넬은 ‘기타와 구조’라는 책에서 사냥용 활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활의 한쪽 끝을 입으로 물고 활줄을 튕겨 ‘팅’ 하는 울림을 즐겼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거북껍질이나 호리병박을 울림통으로 사용하여 울림 효과를 키웠을 것이라고.미국에선 노예선을 타고 건너온 아프리카 악기인 라본퀸(Rabonquin)이 기타의 시초라고 본다. 노예들의 가장 중요한 악기는 드럼이었다. 그러나 비트의 강약으로 신호를 하며 폭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그리하여 흑
다양한 플랫폼으로 음악을 즐기는 시대다. 온갖 장르의 음악이 넘실댄다.첨단의 음악장비는 예전 음악에 비해 좀 더 다채롭고 세밀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음악가들 역시 새로운 장비들을 이용해 기존에 없던 파격적인 음악을 만들어 낸다.물론 여전히 구닥다리 로우 파이(LO-Fl)를 표방하는 음악들이 있고 오래된 아날로그 장비를 사용하는 뚝심있는 음악가들이 있다.많은 음악학자들은 대중음악의 뿌리를 블루스라고 말한다.블루스는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계 흑인의 고난한 노동속에서 터져나오는 부르짖음(Howl)과 복음성가에서 파생된 이 음악은 그들의
명절날 아침이 되면 온가족이 분주했다. 부모님은 오토바이에 짐을 실어 먼저 출발하고 중학생 누나와 나는 서둘러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고향으로 가는 한림행 완행버스에는 사람과 짐으로 빈틈없이 꽉 차 있었다. 어린 나는 가끔은 어른들 무릎 위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친척들 집을 돌며 제를 지내고 새해인사를 하다 보면 금세 하루가 갔다. 어슴푸레 어둠이 깔리는 저녁이면 마을 번화가인 동카름에서 노래대잔치가 열렸다. 커다란 멍쿠슬(먹구슬) 나무를 둘러싼 넓은 무대였다. 나뭇가지엔 커다란 백열등이 얼기설기 매달려 있고 무대배경으로
좁고 허름했던 연습실을 떠나 꽤 넓고 쾌적한 스튜디오로 이사를 했다. 녹음 부스로 쓰던 밴드 앙상블실 맞은 편에는 작은 창고가 있었다. 가장 높은 곳이 1.5미터 정도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직삼각형 모양의 공간이었다. 문을 열자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공기와 묵은 시멘트 냄새가 훅하고 덮쳤다. 꼬박 반나절을 쓸고 닦았다. 작은 책상 하나와 어쿠스틱 기타, 라디오를 들고는 토굴 같은 같은 그곳에서 칩거 생활을 했다. ’Aranya 아란야 나의 안식처‘라고 이름 지은 그 방에서 쪼그리고 앉아 곡을 쓰고 책을 읽고 가끔은 벽을 보며 명상을
눈이 쏟아져 내린 어느 날이었다. 희미하게 창을 때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를 조금 넘었다. 어지러이 흩날리는 눈발들은 창문에 부딪히며 불규칙한 리듬을 만들어 냈고, 나는 그 소리가 주는 안락함에 취해 한참을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창밖 거리는 밤새 내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얼마 전 후배가 건네준 보이차를 꺼내 뜨거운 물을 부어놓았다. 듀크 조단Duke Jordan의 《Flight to Denmark》를 꺼내 들었다.1974년에 발표된 이 앨범은 앙상한 나뭇가지로 둘러싸인 설원 위 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