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고성목이 동과원과 서과원에 과일나무를 심어서 과일이 열리면 제주목사한테 바치곤 하였다. 그러던 중 제주목사가 이곳으로 출두를 하게 되었으니 길을 닦으라는 명이 떨어졌다. 며칠 내로 길을 닦으라는 명령도 심상치 않은데, 이런 저런 까다로운 조건까지 붙여놓았다. “길을 닦되 다섯 자 넓이에 석자 높이로 하여라. 그 위에 담배씨로 덮어놓아야 한다.”고성목은 부랴부랴 길을 닦기 시작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길 닦기에 몰두하여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바닷가 백모래가 날아와 길을 덮어버리는 게 아
뜨거웠던 폭염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아침저녁으로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이러한 날씨를 몸으로 체험하면 ‘기후위기’라는 말은 당장 우리네 삶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올해 제주도의 여름은 역대 세 번째로 더웠다고 한다.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섭씨 1.2도(이하 단위 생략) 높았다고 한다.(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합의한 지구기온평균상승은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하고 2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어쩌면 올해가 덜 더웠던 여름이 될지도 모르겠다. 국립기상청이 발표한 ‘
선생님이 학교 교실에서 돌아가셨대. 이게 무슨 일이지?엄마에게 카톡을 남기고 유튜브 생중계를 보며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계속되는 조문 행렬에 학교는 정문을 막았고, 조문 온 교사들은 땡볕에 ‘열어라‘를 외쳤다. 누가 근무지에서 자살을 생각할 수 있을까. 매일 만나고 가르치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혼자 교실에 남아 도대체 무슨 생각이 들었길래 선생님은 교실 옆 작은 창고에서 생을 마감하셨을까. 뉴스를 보고 무작정 비행기표를 끊어 서이초등학교를 찾았다. 학교 안에 마련된 추모 공간엔 영정 사진이나 이름조차 없었다. 고작 테이
개도랫낭은 다래나무과 개다래나무의 제주말이다. 참다래도 산다래도 아니여서 '가짜다래'라는 의미로 개다래라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이름은 쥐다래다.열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귀여운 아기쥐의 얼굴을 닮았다. 열매는 길쭉한 타원형이며 끝이 표족하다. 나무줄기는 잎지는 덩굴성 나무줄기고, 짙은 갈색을띈다. 생존을 위해 숲에서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야만 광합성작용을 하며 자랄 수 있다.초여름쯤 새순이 왕성하게 자란다. 꽃이 필 때면 새 잎은 삼백초의 이파리처럼 백색 얼룩무늬가 생긴다. 멀리서 초록색이 짙어지는 숲을 보다가 흰색의 얼룩
9·4 공교육 멈춤의 날30만이다. 지난 9월 2일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교사들의 숫자다. 대한민국 교사는 모두 합쳐 47만이다. 그 47만 중에 30만이 집결한 것이다. 그리고 이틀 뒤인 9월 4일, 교사들은 ‘9·4 공교육 멈춤의 날’을 선포하고 전국 동시다발 집회를 열었다. 이날은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일이었다. 제주에서는 2000명이 넘는 교사들이 제주도교육청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이건 절박함이다. 억울한 죽음이 내게도 닥쳐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바닥까지 추락하고 있다는 좌절감이다. 모든 책임을
제주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들, 그 중 먼지에 쌓여 존재감이 희미해진 이야기들을 다시금 햇살 아래로 끌어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꼬닥꼬닥_마을신화]연재를 시작한다. 구술 채록된 제주 마을의 신화 가운데 서사를 갖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동료 연구자들과 토론도 하고 답사도 진행했다. 마을에 전해오는 신화를 공유하고 보전하는 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자연의 신성성을 되찾는 작업이 될 것이라 믿는다. 큰물당 조상님이 한라산 서쪽어깨 무유알에서 솟아나 산방산으로 내려왔다. 조상님이 여지물 동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너른 들녘이 풍요
지난달 26일, 8월의 마지막 토요일 저녁 ‘제주 인디’ 공연장에서는 이곳의 10주년을 축하하는 헌정과 존경의 트리뷰트 콘서트가 열렸다.그날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공포와 두려움이었다. 공연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뜨거운 열기 때문에 혹시라도 화상을 입지 않을까 싶어서다. 물론 과장이다. 이토록 부풀려 말하는 이유는 이번 공연이 록 음악의 황금기였던 1980~1990년대의 대표 밴드들이 소환된 무대였기 때문.근래 봤었던 제주 인디 뮤지션들의 라이브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다. 이날 공연에 참가한 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시절
지난 26일 오후 2시, BeIN 블랙박스 공연장에서 행사가 있었다. ‘2023 제주뮤직위켄드’라는 타이틀의 행사다. ‘SEMINAR 1, 아시아권 음악산업 교류’, ‘SEMINAR 2, 송캠프와 아티스트 교류’라는 두가지 섹션의 세미나와 함께 제주음악창작소의 프로듀싱지원 프로그램의 결과로 만들어진 ‘제뮤테이프 VOL.2’ 참여 뮤지션들의 쇼케이스 무대가 진행됐다.나는 칼럼 연재를 통해 보석 같은 제주의 인디 뮤지션들과 공연문화를 도내는 물론 육지부에 알리고 싶었다. 이번 행사는 그보다 더 몇 걸음을 나아갔다. 제주의 인디 뮤지션들
내 유년의 필름들 속에는 관덕정이 자주 등장한다. 관덕정과 거리상으로 멀지 않은 곳의 초등‧중학교를 다닌 영향도 있을 것이다.관덕정은 세종 30년(1448년) 제주목사 신축청에 의해 건립된 군사 훈련을 목적으로 지어진 누정으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제주도 역사의 타임라인 속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장소다. 관덕정이 목도한 제주의 역사는 주로 치유되지 않는 아픔의 역사였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세대에서 도심의 중심과 번화가는 관덕정이었다. 관덕정 주변으로 식당, 찻집, 극장도 있었고 큰 책방도 있었다. 그대들
영화 의 주인공 '길 펜더'는 소설가를 꿈꾸고 예술의 도시 파리를 동경한다. 연인과의 파리 여행중 사소한 다툼 끝에 밤거리를 배회하게 된다. 자정이 되자 종소리가 울리며 오래된 클래식카가 나타난다. 그 차가 향한 곳 황금시대인 1920년.환상적인 시간 여행이 시작됐다. 처음 들른 카페에서 'Let's Fall in Love'가 흐른하. 고개를 돌려 무대를 보니 콜 포터가 노래하고 있다. 길은 놀라면서도 어느 순간 이런 상황들을 즐긴다. 그곳에서 헤밍웨이, 피카소, 피츠제랄드 등을 만나고 그들과 삶을 이야기하고 문
2020년에 나온 책이다. 책에 담긴 글은 권정생이 1970년 6월에 썼다. 올해가 2023년이니 53년 앞서 쓴 글이다. 1970년이면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도 먹었다. 그땐 동네에서 축구를 하다가 목이 마르면 수돗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수돗물이 없으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도 마셨다. 글쓴이는 그때 벌써 지구가 더럽혀지는 것을 알았다. 한 여름에 눈이 내린다는 상상을 했다. 지금 세상에선 전혀 이상하지 않다.지구 곳곳에 여름에 눈이 내리고 겨울에 폭우가 쏟아진다. 사람들은 점점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지구 온도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