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시민 혁명’, ‘촛불 혁명’, ‘광장민주주의 승리’, ‘촛불민심의 승리’.12월 9일, 국회가 찬성234의 압도적 표로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자 나온 시민사회의 반응들이다.탄핵안 표결 결과에 대해서는 먼저 ‘가(可)·부(否)’간 표결에 임했던 국회의원부터 놀랐다.처음과 끝은 지켜봤던 국민들도 놀랐다.압도적 표차의 의외성 때문이었다.표결 전까지만 해도 가결 여부는 예측 불허였다.탄핵안 가결 정족수 200표 찬성의 턱걸이를 전망하는 분석도 없지 않았다.이른바 ‘새누리당 비주류’의 표심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어멍’은 ‘어머니’라는 뜻의 제주말(語)이다.‘제주해녀’는 바로 ‘제주어멍’으로 불러도 무방하다.척박한 환경의 ‘바다 밭’이나 ‘빌레왓(돌밭)’을 일구어온 강인한 개척정신으로 제주를 먹이고 키워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지난 1일 제주해녀 문화가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할 수 있었던 것도 인고(忍苦)의 세월을 엮으며 억척스럽게 삶을 개척해온 제주여성의 주체적 역할을 세계가 인정했기 때문이다.제주해녀문화는 척박한 토양과 거친 파도와 싸우며 살아온 강인한 제주여성들의 빚어낸 삶의 영역이며 형상이다.거기에는 이승과 저승이
‘가을 들녘 햇빛에 부서지는억새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꽃이 되고 싶어라누군가의 마음이 되고위로가 되어 시들어 버려진다고 해도사랑을 배달하는 꽃이 되고 싶어라초가지붕 울안에터줏대감 유카 꽃 보러아버지 다녀가시고돌 위에 위태로운 손가락 선인장빨갛게 나팔 불 때면어머니 볼은 더욱 붉어지니꽃이 되고 싶어라바람은 시간을 쓸어가도꽃은 피어속절없이 뿌리째 버려진다 해도당신 앞에서 꽃이고 싶어라‘김성현의 시 ‘꽃이 되고 싶어라’ 전문(全文)이다.김성현은 누구인가.‘기도하는 여인’, ‘꽃의 봉사자‘, 온갖 허드렛일도 마다않는 ’겸손한 신자‘,오랫동
‘내 마음은 촛불이요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 오리다‘김동명(1901~1968)의 시, ‘내 마음은’의 두 번째 연(聯)이다.독자로서 시(詩)적 상상력을 동원하자면 온몸을 녹여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을 노래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촛불의 이미지는 조용하지만 거룩하다.제 몸을 녹여 어둠을 밝히는 ‘희생의 화신’이다.거기에는 범접할 수 없는 신성이 묻어 있다.촛불은 두 손으로 받쳐 든 기도하는 마음이다.속삭이는 듯 작지만 강력한 불꽃 에너지가 농축되어 있다.촛불은 그래서
서울 도심에서, 제주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성난 시민의 함성이 가을밤 하늘을 덮었다.이른바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에 기가 막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분노의 함성이었다.11일 밤,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 등에서 진행되었던 촛불집회에는 행사 주최 측 추산으로 100여 만 명이 참석하여 인산인해를 이뤘다.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최대 인파였다.한 여인의 치마폭에서 놀아난 무능한 정권, 무책임한 정부, 무분별한 꼭두각시 권력을 규탄하는 분노한 시민 행렬은 노도(怒濤) 같았다.공적 기능 붕괴와 소수 계층에 의한 부패 스캔
‘존시는 화가를 지망하는 소녀였다. 동료인 수와 함께 건물 3층에 공동화실을 갖고 있었다.그러나 존시는 폐결핵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환자였다.창 너머 건너편 건물 벽의 담쟁이덩굴을 보며 ‘저 잎이 다 떨어지면 죽을 것’이라는 절망적 상황을 생각하는 신세였다.“살고 싶다는 의지와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도 소용없었다.‘떨어지는 담쟁이 잎과 함께 죽을 것’이라는 존시의 망상을 슬퍼하는 룸메이트인 수와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아래층 늙은 화가 베어먼의 질타도 아랑곳없었다.세찬 비바람에 어느덧 담쟁이 잎은 다섯 개 밖에 남아있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한 여인의 치마폭에서 하수구처럼 쏟아지는 고약한 냄새다.이른바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이 뿜어내는 악취인 것이다.여기에 실려 대통령을 향한 국민적 좌절과 분노도 하늘을 찌르고 있다.참담·허탈·절망·황당·경악 등 동원되는 단어는 하나같이 부정적 된 소리 뿐이다.신뢰와 권위는 이미 바닥을 친지 오래다. 도덕성과 리더십 역시 만신창이다.‘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지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다.‘식물 대통령’이라는 조롱도 거침없다. 허수아비, 꼭두각시, 바지대통령 등등 국가통수권자에게 보내는 야유는 무례하고 살똥스럽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사람을 만드는 데 있다’.교육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명언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 사상가였던 장자크 루소(1722~1778)의 말이다.사람의 타고난 가치에 윤기를 더해주고 이성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 하도록 가르치는 인성교육 또는 전인교육과 맥을 같이 한다.사람을 사람답게 가꾸는 작업이 교육이라면 교사(교직)의 역할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지식(학문)을 가르치는 ‘교(敎)’와 인성이나 성정을 다듬어주고 양육하는 ‘육(育)‘을 담당하는 몫이 교사에게 있기 때문이다.물론 교육의 주체는
자하(子夏)가 고을 태수로 내려가면서 공자(孔子)에게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가르침을 청했다.공자가 말했다.‘욕속부달(欲速不達) 욕교반졸(欲巧反拙)’.“급히 서두르지 말고 작은 기교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일을 그르치기 쉽고 작은 일에 매달리다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가르침이었다.2500여 년 전 공자의 말씀을 떠올리는 까닭은 다른데 있지 않다.오늘날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와 닿은 가르침으로 여겨져서다.임기 안에 자신의 치적을 남기고 싶어 안달하는 정치가의 속성을 꼬집는
제주가 숨이 막힌다. 호흡이 가쁘다. 병증이 심각하다.수용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외형 부풀리기에만 매달려온 개발지상주의 도정 추진이 원인이다.지난 2013년 8월 13일, 제주도청에는 ‘인구 60만 명 시대 개막’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기념행사를 진행했었다.당시 도지사는 “전문가들이 2020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인구 60만 명 시대 개막이 7년 이상 앞당겨졌다”고 환호작약했다.그러면서 “인구 60만 명 시대는 인구 증가의 의미를 넘어 제주의 경제사회적 규모가 커지고 자립경제의 바탕이 되면서 제주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면서 ‘인구
‘역사란 무엇인가’.‘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1892~1982)의 말이다.그에 따르면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 사이의 대화 또는 해석이나 선택’이라는 이야기다.‘역사는 본질상 ’변화‘라고도 했다.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항상 다시 기록되는 것이라는 뜻이다.근대 역사학의 확립자라는 독일의 랑케(1795~1886)역시 “역사 해석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했었다.감히 이들의 도저(到底)한 학문영역이나 심오한 역사 인식을 넘볼 처지는 아니다.그러나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땅은 삶의 터전인가, 투기의 대상인가’.지금 이런 논의는 의미가 없다.이미 투기 대상으로, 가진 자들의 축재 수단이 되어 버린 지가 오래기 때문이다.‘삶의 터전으로써 땅값이 안정되어 인간적 삶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집 없고 가난한 서민들의 애타는 염원은 말 그대로 공염불(空念佛)이 되어버렸다.투기 대상 또는 투기 수단으로서의 ‘땅’은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의 사회양극화 주범이며 경제정의 실현의 왜곡을 불러왔다.땅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일반적이다. 누구나 체감하고 있다. 공감되는 부분이다.그런데 투기대상으로서의 ‘땅’이
닷새의 추석 연휴 날씨는 내내 흐렸다.밝고 둥근 팔월대보름 달은 구름 속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그렇기 때문에 날씨로만 따진다면 이번 추석 연휴는 우울했다.그렇지 않아도 북한의 5차 핵실험 도발, 경주에서의 역대 최대 강도의 지진은 불안하고 우울한 추석 연휴의 전조현상이나 다름없었다.이런 소용돌이 속에 추석 연휴 기간, 제주에서는 충격적이고 경악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17일 오전 8시45분경, 제주시내 한 성당에서 새벽미사를 참례한 후 혼자 조용히 기도하던 60대 여인이 중국인 첸(51)모가 휘두른 흉기에 쓰러졌다.공격은 무자비했다.
누가, 저 광대한 카펫에 팝콘을 뿌려 놓았을까?햇빛 쏟아지는 푸른 등성이에 내려앉아 빤짝이는 성긴 눈발을 보는 듯 눈이 시리다.한라산 자락인 제주도 오라동 지경 노루손이오름과 열안지오름 어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25만여평의 광활한 면적에는 시방,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가을 햇살이 눈 부셨다.소슬 바람을 타고 출렁이는 메밀꽃 물결은 그래서 더욱 꽃 멀미를 일으키듯 몸살이 났다.거기에다 제주시내 빌딩 너머 푸른 바다가 아스라이 눈에 잡혔다.장관이었다. 현란했다. 낮에 나온 팔월 초아흐레
논란이 많다. 파장이 만만치 않다.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제주도감사위원회(이하 감사위)의 감사결과 조치에 대해서다.동일한 위법·재정 손실을 놓고 행정결재라인의 최고 책임석에는 ‘면죄부’를 주고 말단 실무 공무원에게만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의 변상명령과 함께 양벌 적 신분상 징계를 요구했기 때문이다.감사위는 지난 5월9일부터 24일까지 제주시를 대상으로 곽지 해수욕장 위법 공사 관련 감사를 실시했다. 30일에는 감사 결과보고서를 공개 했다.이에 따르면 관련 정책사업의 최고 결재권자인 제주시장에게는 ‘주의’ 를, 해당 부서 상위 결재라
대학(大學)을 일컬어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전당’이라고 했었다. 적어도 20세기 전반까지는 그랬다.‘현실 도피적’이라는 원래의 부정적 의미를 걷어내 대학을 ‘상아탑(象牙塔)’이라 불러 왔던 것도 물욕과 현실적 이해를 떠나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세계에 대한 경외감(敬畏感)의 표현일 터였다.정말 그런가. 대학이 그렇게 고고한 진리탐구의 전당인가.그렇다고 똑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감히 단언하건데, 대학은 변질되었다.더 이상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진리탐구의 전당이 아니다.오늘날 대학의 위기를 지적하는 학자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오늘은 그의 이야기다. 하필이면 왜 그인가.지칠 줄 모르는 치열한 삶, 제주사랑의 열정과 도전 정신이 예사롭지가 않아서다.동 시대를 살아가는 노년들에게 신선한 삶의 자극제(劑)가 되지 않을까 해서다.그는 1942년 생이다. 우리나이로 일흔 다섯이다. 황혼녘의 노년이다.그러나 그에게서 나이는 세상말로 숫자에 불과하다.이는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한 그의 삶의 궤적이기도 하다.녹슬지 않은 꿈과 이상, 샘솟는 미래 비전은 아직도 싱싱한 젊음 못지않다.최근 그는 법 공부를 하고 있다. 지난 2014년 도지사 선거 도전에
“해도 너무 한다”고 했다. “도가 지나친 물어뜯기”라는 말도 있다. 제주에서 발행하는 한 종이신문은 연일 원희룡 도정에 대한 비판·비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맹폭 수준이다. 한 달 가까이 그렇다.“무슨 일이 있었길래, 오뉴월 개 패듯 매 타작인가?” 거칠고 속된 시쳇말도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도대체 어떤 기사들인가? 해당 신문의 관련 기사들을 검색해 봤다.도정 비판· 비난성 기사 게재 횟수, 기사 가치(벨류) 판단의 변별력, 지면 배치의 적절성, 기사 용어 사용의 품격 등을 일별해 봤다.(사견임을 전제로) 아무리 느슨하게 잡아도
빨간 모자를 쓴 노인들이 한두 명씩 들어섰다. ‘삼계탕 집’이었다. 40석 좌석의 식당 안은 빈자리가 없었다.82세에서 92세까지 노인 34명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이들은 한국 해병대의 상징이자 산 증인으로 일컬어지는 해병 3~4기 예비역 해병들 이었다.한국 전쟁 당시 제주출신 학도병이 주축이 된 해병 3~4기의 혁혁한 전과(戰果)기록은 세계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불가능을 가능으로 역전 시켰던 ‘통영 상륙작전’, ‘인천 상륙작전’ 등은 세계 해전 역사에 영원히 남을 승전보(勝戰譜)다.‘귀신 잡는 해병’은 그렇게 해서 얻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시절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했었다.인사 청탁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 했으면 대통령의 입에서 그런 독한 말까지 나왔었겠는가.인사 청탁은 부정부패의 사슬이다. 이를 빌미로 검은 돈이 오가고 이권이 거래되기 때문이다.여기서 각종 사회악이 싹트고 자라난다.국가 최고 통치자인 역대 대통령들이 인사 청탁의 폐해를 지적하고 근절을 약속해도 아직도 인사 청탁 문화는 견고하게 권력 주변에서 똬리 틀고 앉아 있다.제주도 산하 지방공기업 제주개발공사의 신규 직원 채용과정에서도 예외 없이 ‘인사 청탁 파워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