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들불축제가 대면행사로 4년만에 진행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진행되지 못한 탓에 축제를 기다리는 사람도 분명히 많을 것이라 짐작된다. 다만 들불축제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도 이번 축제가 다가올수록 커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들불축제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일까?#목축문화 전통을 계승한다는 거짓말가장 먼저 불편한 점은 들불축제가 모티브인 전통목축문화를 전혀 계승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시는 들불축제에 대해 새봄이 찾아올 무렵 소와 말의 방목지에 불을 놓아 진드기 등 해충을 없애 가축에게 먹이기 좋은
3월 6일 환경부가 국토부가 제출한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조건부 동의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당한 절차라고 보기엔 사회적 정치적 약속의 파기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 것일 수 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이미 도민의 결정이 있었다. 제주도의회의 중재로 국토부와 제주도민은 ‘도민여론조사’라는 방식을 통해 제주 제2공항 건설 여부를 결정하자고 합의를 했고, ‘공항건설 반대’로 결정이 났다. 어떤 절차가 더 필요한가? 제주도민은 스스로 살길을 선택한 것이다. 개발과 성장의 가치가 우리 삶을 뼛속 깊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도 제주도민은
남편은 손님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음료잔과 음식 접시를 서둘러 치운다. 그는 종종 내가 마시던 커피잔도 가져가서 홀랑 씻어 버린다. 설거지할 것들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기민하다. 가게로 찾아온 친구들과 함께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는 경우에도, 그는 설거지를 자신의 몫으로 여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가 설거지를 미루는 일은 없다. 좋은 습관을 가진 남자다. '인간식기세척기'이라는 별명도 붙였다. 종종 친구들이 부러워 한다. 다들 자기 남편 얘기를 꺼내며 한 마디씩 보탠다. “세상에. 저런 남편이 어디 있어?”하지만 악마는 디테일
문명이 탄생하고 문명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기후 변화에 기민했었다. 날씨와 관련된 수많은 전설과 신화만 살펴보더라도 인류는 단 한 번도 태평하지 않았으나 요즘 더 유난해졌다. 특히나 재앙에 가까울수록 기록을 남겼던 인류 아닌가. 그 기록이 잦고 있다는 것을 탐지하고 이에 관해 쓰고 말하는 사람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풍경은 비 내리기 직전 새의 지저귐만큼이나 요란하다. 이 요란함은 인류가 단 1만여 년 만에 새로운 지질학적 명칭을 스스로 부여할 만큼 달라진 시대를, 간빙기/홀로세에 이어 인류는 대가속의 시대, 대멸종의 시대에 살게 되었기
온 국민에게 제주는 각별한 곳이다. 제주로 향하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된 기대는 무엇보다 자연 속에 있다는 평온함을 느끼는 것 아닐까. 옥빛 바다와 검은 돌담에 둘러싸인 푸른 밭, 오름과 숲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절로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다.그러나 머릿속 그 풍경과 달리 제주의 실상은 전쟁터이다. 넘치는 관광객으로 인한 쓰레기와 하수 문제, 교통 체증과 대기 오염, 상수도 자원의 고갈 등 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당장 쓰레기 소각장과 하수처리장 증설 문제로 주민들의 고통과 갈등이 첨예하다. 곳곳이 도로 증설과 개발사업으로 파헤
버드낭은 버드나무과 버드나무를 이르는 제주도 방언이다. 버드나무류는 능수버들, 수양버들, 왕버들, 호랑버들, 갯버들, 버드나무 등의 다양한 종류가 있다.남태평양에서 밀어 올라오는 춘삼월의 드센 봄바람 앞에 북풍 한설도 머나먼 북쪽으로 떠나가고 개울과 늪지마다 긴 머리 풀어 봄바람에 찰랑찰랑 쓸어내리는 버들낭자의 여유로운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버드나무는 생명력이 강하고 귀신에게도 지지 않는 나무다. 버드나무 가지를 지팡이 길이로 잘라다가 거꾸로 아무렇게나 박아놓아도 거기서 싹이 나오고 뿌리내려 자라는 걸 볼 수가 있다.제주도에서는
제주 제2공항 문제가 다시 제주 섬을 흔들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가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다시 환경부에 제출했고 전략환경영향평가서 협의 법정 처리기한에 따라 요청일로부터 최대 40일 이내 즉, 3월 6일까지 답변해야 한다. 정말 기한이 코앞이다. 만일 환경부에서 ‘동의’로 결정을 내린다면 제주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시간이 되돌아간 듯하다. 제주도지사 시절처럼 다시 원희룡(현 국토부장관)과 제주도민의 시간이 되었다. 도민사회의 갈등은 그때처럼 극에 달할 것이고 애써 지켜낸 사회적 공론의 결과와 약속마저 공권력 맘대로 파기할 수 있
지난 2월 4일 폭설로 한차례 연기되었던 정기총회가 무사히 끝났다. 총회를 끝내고 한동안 맥이 풀려버렸지만, 바야흐로 봄은 시작하는 기운을 지니지 않았던가? 잔디가 쏙쏙 올라온다. 이제 이장도 새로운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올해 마을회는 마을 자체 돌봄사업을 한 번 추진해보기로 했다. 마을이 이장이 되고 이렇게 저렇게 주민들을 만나다 보니 어려운 형편을 외면하기 힘든 주민들이 꽤 있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고 하지만 마을은 그래도 이웃을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부자들이 선심처럼 내놓는 시혜적인 돈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
록 기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지미 핸드릭스Jimi Hedrix는 몬트레이 팝페스티벌에서 자신의 기타를 불태우며 화려하게 등장한다. 블루스를 기본으로 피드백과 드라이브 등 갖가지 효과를 이용한 거친 싸이키델릭 사운드로 기타씬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그보다 몇 년 전인 1966년 에릭 클랩튼은 슈퍼 락밴드 크림Cream을 결성한다. 10여분이 넘는 현란하고 변화무쌍한 즉흥연에 관중은 열광했다.마초적인 아메리칸 하드록의 전형을 모여줬던 모터헤드Motorhead나 'Smells Like Teen Spirit" 으로 새
언제 쉬웠던 적이 있었으랴만 올겨울은 유독 힘들었다. 12월 말에나 한번 눈발이 날릴까 말까 하는 이곳 제주에 12월 중순에 때 이른 한파에 눈보라가 휘날렸다. 한번 쌓인 눈은 낮은 기온 탓에 이틀 동안 녹지 않았다. 1월에도 한파가 왔다하면 2~3일 내리 낮은 기온에 당근과 무 잎이 동해(凍害)를 입었다. 가을 가뭄으로 늦게 파종한 당근이 미처 자라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는데 더 자라야 할 당근의 잎을 상하게 했으니 당근 성장을 기대하기는 이제 끝이다. 마지막 한파에는 무를 고사 시켜버리는 결정적인 한파였다. 해안가 가까운 마을의
5. 제주해녀들은 자신의 일터를 바다밭으로 생각합니다. 땅의 밭과는 달리 바다밭에서는 공동어로가 행해졌습니다. 그것은 바다밭이 공유지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목숨을 위협하는 바다의 상황이 해녀들에게 강한 결속을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검석속립에 붙여진 이름은 다양한 해녀들의 우정과 만나 새로운 이름을 낳았습니다. 기존 이름에 새로운 이름이 쌓이면서 ‘강한 결속’은 ‘부드러운 공존’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제주해녀들은 이러한 공존의 정신으로 서로를 살리고 바다를 살렸습니다. ◼괭이밥북촌의 ‘무승기 바다’는 물살이 가장 쎈 곳입니다.
3. 검석속립은 화산활동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화산은 바다의 성격을 결정하기 전에 땅의 성격을 먼저 결정했습니다. 화산이 만들어 낸 제주의 토양은 대부분 박토(薄土)입니다. 제주 경작지의 0.5%만이 논이고, 나머지는 밭입니다. 논농사는 물로 하고 밭농사는 거름으로 한다고 합니다. 밭에 의지하여 살아야 했던 제주백성에게 거름은 죽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필생의 거름을 생산해 낸 것은 소와 돼지의 똥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와 돼지의 힘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바다에서 듬북을 건져 올려 모자란 거름을 충당해야 했습니다. 듬북과 함께 미역도
“제주도의 밭은 땅에 있는 만큼 바닷가와 바닷속에도 있다. 어부들의 바다밭이 있고, 해녀들의 바다밭이 있다. 같은 지점의 바다밭이라도 해녀집단들의 이름과 어부들의 이름이 다를 수도 있다. 바다밭마다 이름이 있다. 이름이 없는 것은 바다밭이 아니다.” (고광민,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 2004) 1. 제주 목사 이형상은 자신의 책 『남환박물』에 검석속립(劍石束立)이라는 문장을 남겼습니다. 제주해안을 둘러싼 검은 현무암을 보고 ‘검처럼 날카로운 돌들이 묶어놓은 듯 서 있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제주는 화산섬입니다. 여기저기에서 분
전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군대가 없고 총과 대포와 미사일이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로울까. 군대가 없는 나라도 있다. 아이슬란드, 코스타리카, 파나마 외에 30개 나라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지금도 스스로 나라를 지키겠다며 첨단무기를 사들이고 만들고, 만들어서 팔고 있다.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핵무기를 갖고 싶어서 안달이다. 한반도 북녘에 핵무기가 있으니 우리도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은 전쟁을 할 때 '좋은' 무기를 쓰려 한다. 좋은 무기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겁주는 무기가 있으면 이길 수 있다고
2월의 첫 번째 ‘도시+락(Rock, 樂)’ 시간은지난번과 같은 장소인 ‘낮과 밤’ 소극장에서의 공연 소식이다.2월 19일, 아직 겨울 계절과 헤어질 결심을 하지 않은 2월 하늘에서 제법 찬 부슬비를 내리는 쓸쓸한 토요일 저녁.이번 겨울 계절은 무슨 미련이 남았기에 2월 중순이 넘어서기까지 그 냉랭한 심술을 부리는 걸까? 정녕 그렇다면 나는 라이브 극장에서 밴드의 뜨겁고 생생한 기운과 온도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겨울 계절의 냉랭한 심술을 조롱하리라.공연장으로 향하는 길.주차의 스트레스를 멀리하고 싶어 차를 제법 먼 곳에 세우고간만 긴
칼럼을 쓰면서 나에겐 ‘우연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기 2주 전, ‘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란 책을 도서관에서 만났다. 제목을 보고 호기심이 일어 읽어봤다.일본 도쿄에는 ‘후즈쿠에(fuzkue)’라는 가게가 있다. 오로지 책 읽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놓은 곳이다. 저자인 아크쓰 다카시가 이 가게를 만들었다. 특히 책에는 가게 이용 방법이 12페이지에 걸쳐서 아주 자세히 소개돼 있다. 입장료에 따라 달라지는 체류 시간, 독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용자가 지켜야 할 수칙 등이다
2월의 어느 날, 아내에게 부고가 전해졌다. ‘피스 언니’가 죽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힘겨운 투병과 이식수술 끝에 회복의 가능성을 점칠 무렵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그녀는 우리 집 여름 능소화를 좋아했다. 가을 금목서를 좋아했다. 그녀는 내 아내의 어리버리한 순진함을 좋아했다. 밝은 농담과 감각어린 취향을 좋아했다. 그리고 내가 만드는 크림치즈 파운드케이크와 에그 타르트를, 또 마르게리따 피자를 좋아했다. 아내와 피스 언니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지만, 한 가지 통하는 것이 있었다. 죽음의 처리가 그랬다.십 수 년 전쯤의 이야기부터
조선시대에 제주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형벌에 가까웠다. 제주는 섬이라 직접세인 토지세가 없는 대신에 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다른 공물은 국가재정이라 흉년이나 천재지변에는 깎아주기도 했고 대동법이 실시된 이후는 돈이나 쌀, 옷감으로 납부하면 되었다.하지만 진상은 왕실재정이라 꿈쩍도 안했다. 제주는 마치 점령지와 같았고 진상이 진상을 떠는 곳이 되었다.제주사람들이 왕실에 진상해야 할 품목은 귤, 해산물, 약재, 말, 흑우, 육포처럼 대부분 제주특산물들이어서 대체가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제주에서 한양까지 거리는 빨라야 한 달이 걸렸
비행체가 하늘로 발사되는 소리. 폭탄에 의해 땅에서 집기가 무너지는 소리. 전자는 출발을 의미하고, 후자는 끝을 의미하지만 영화 《가가린》에서 두 사건은 엇비슷한 소리를 낸다. 이 영화는 굉음으로 끊임없이 관객의 머리와 몸을 깨운다.영화 속 배경은 2019년에 철거된 프랑스 파리 남부의 ‘가가린 주택단지(Cité Gagarine)’다. 철거되기 직전 영화를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가가린'은 1960년에 프랑스 공산당에 의해 지어진 아파트 단지로, 러시아 최초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이름을 붙였다. 그렇기에 영화는 종종 실제
얼마 전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서울의 대형종합병원에 다녀왔다. 국내 유수의 병원답게 내원환자와 보호자, 직원들로 북새통이었다.다소 복잡한 절차와 기다림을 거쳐 마침내 의사와 마주 앉았다. 증세를 얘기하고 소견을 묻고, 다음 검사일자를 잡는 데 10분 정도가 걸렸다. 비행기까지 타고 왔는 데 좀 더 시간을 내서 자세하게 얘기해 주지 않는 의사가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 수십수백명의 환자를 봐야 하는 조건이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진료실을 나와 수납창구로 갔다. 다음에 할 검사비용까지 정산한다고 해서 지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