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어딜가나 돌담을 보게 된다. 제주의 돌담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규칙도 없으며 무한한 곡선의 향연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색채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흑룡만리’라는 멋진 이름이 있다. 까만 용이 1만 리에 걸쳐 이어져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어떤 이들은 불멍 바다멍처럼 하나의 힐링용어으로서 '돌담멍'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무질서해 보이는 제주 돌담은 자연재해가 강력한 제주에서도 어지간해선 무너지지 않는다.'그렝이 공법'이라는 한국의 전통건축기법으로 지어 태풍에도 끄떡없다. 돌들을 반
노리자리라 하면 꿀풀과의 1년생 야생초 꽃향유와 좀향유를 이르는 제주도 방언이다. 노리는 노루를 가리키는 제주방언이며 노루가 노닐거나 푹신하게 깔고 앉는 자리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10월부터 11월에 걸쳐 제주도 내 해발 200~700고지 오름이나 자연 목초지의 키 작은 풀밭에서 자주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이삭꽃차례로 흐드러지게 핀다.온 들판에 깊어가는 가을하늘 아래 눈부시도록 꽃방석을 깔아놓고 꿀벌의 노래 신나게 붕붕거리면 양봉농가에서는 양지바른 들판에 벌통들을 줄지어놓고 꿀 수확을 기다린다. 노리자리 꿀은 제주도에서 나오는 모
내가 섬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열세 살 무렵이었다. 별도봉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혼자 빠져나와 산지등대에 갔다. 그곳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는데 처음 느껴보는 고독이 파도처럼 밀려왔다.제주도 주변의 섬들을 모두 돌아다닌 뒤 그 섬들에 관한 책을 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적 있다. 하지만 나는 모험가가 될 수 없는 체질이다. 멀미를 심하게 한다. 마라도 가는 배에서도 속이 울렁거린다. 목포로 가는 배는 치과만큼 곤혹스러웠다. 친구가 해군에 함께 지원하고자 했을 때 멀미 때문에 손사래를 쳤다. 뱃고동 소리만 들려도 멀미가 난
최후통첩 게임, 협동의 유전자를 타고난 인간사람들은 과연 이기적일까? 이타적일까? 보통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이기적이라 못박는다. 진화론은 이를 뒷받침해 왔던 대표적인 도그마. 진화론하면 누구나 적자생존(適者生存), 즉 경쟁과 도태를 떠올린다. 19세기 중반 당시 자본가들은 자유경쟁과 도태를 진화의 원리로 설명한 다윈을 구세주처럼 떠받들었다. 하지만 적자생존이란 용어를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다. 경쟁만 강조한 줄 알았던 다윈마저도 “꿀벌과 같이 서로 협동하는 종이 있다. 협동하는 종은 경쟁하는 종보다 우월하다”
학교 옆 문방구처럼 없는 것 빼고 있을 것이 다 있는 책방 책가방의 탄생으로 거슬러 가 보자. 때는 2018년도다. 이미 그 전부터 미화씨는 책방을 다니는 걸 좋아했다. 책을 좋아했고, 책방이 풍기는 분위기를 사랑했다. 어떤 책방은 소품을 같이 판매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보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만의 책방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가 책방을 운영하면 어떨까? 어떤 모습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1년여 동안의 깊은 고민 끝에 일단 문을 열기로 결심했다. 결심하기까지가 어렵지 그 후의 일은 일
내 일요일의 일과는 단순하다. 오전에 축구를 하고 돌아와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는 푹 잔다. 평화롭고 안온하다. 이 일요일의 평온한 루틴에 균열을 내는 자가 있다. 물론 나의 아내다. “좀 이따 마트 가자! 두 시간 낮잠 자고 세 시에 가자.”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넘기고, 일단 잔다.“세 시야! 마트 가자!” 한참 깊은 수면의 동굴에 있는 나를 뒤흔들어 깨우는 성마른 아내의 목소리! 단잠에서 깨어나 차를 몰고 움직일 생각을 하니 지옥이 따로 없다. “내일 가자. 진짜 못 일어나겠어.”경험해본 바, 두려움 없이 진실을 고하려면 먼저
태양이 아침을 깨우는 시간오름 등성이에는 가을 햇살에 바람 따라 은빛 눈부심으로 물결치는 억새, 깊숙이 파고드는 가을이 내려앉은 한라산 둘레길 오색단풍은 열두 폭 병풍이 펼쳐지듯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가을 아름다운 단풍 드라이브코스 1100 도로제주 가을 단풍 명소로 알려진 '한라산 천아 계곡'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한 줄로 주차된 차량들은 도로 밖까지 나와 있다.차 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색으로 물든 오색단풍 1100 도로를 달리는 아기자기한 가을 길은 엽서의 그림 속을 여행 하 듯 설렘과 따스함으로 채워진다.자연과 에코 힐링하
밤거리에 차가운 공기가 깔리기 시작한다. 옷장 깊숙이 넣어둔 갈색 가디건을 꺼내 입곤 바닷가 옆 작은 선술집을 향해 걷는다. 한 여름의 무더위가 시원한 맥주를 부르듯 '가을'이라는 말과 함께 오는 쓸쓸함은 막걸리와 와인을 부른다. 더군다나 이렇게 찬바람이 불어오는 절기엔 굴과 전어회, 꼬막과 과메기가 곳곳에서 술꾼들을 유혹한다. 계절에 따라 제철음식이 있듯이 이맘 때 역시 듣기 좋은 '제철 음악'들이 있다.이 계절의 제철 음악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반은 Gerry Mulligan Sextet의 63년도 앨범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아직도 가기가 아쉬운가 보다. 한낮엔 가벼운 산책에도 땀을 훔치게 된다. 반면, 가을은 곧 더위를 잠재우겠다며 아침저녁으로 쌀쌀맞은 바람을 불어댄다. 아침과 저녁엔 가을과 겨울 사이에 있는 것 같다가 한낮엔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있는 듯 세 계절을 묘하게 오간다. 그러고 보니 계절은 늘 맺고 끊음이 명확하지는 않았다. 항상 계절의 한가운데 들어서야만 알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기준인 ‘계절’의 구분이 선을 그은 듯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과거라는 것, 그러니까 추억이라 부르는 것 역시 어
각시가 미소 띤 얼굴로 양파가 들어있는 대야를 가리켰다. 양파를 까라는 무언의 지시다. 머뭇거렸다가는 평화가 깨질 것이 뻔하다. 얼른 칼을 집어 꼭지와 뿌리를 잘랐다. 상처를 입은 양파가 ‘프로페닐스르펜산’이라는 최루가스를 발사하여 눈물샘을 자극했다.프로페닐스르펜산은 수용성이다. 따라서 물에 적신 칼로 양파를 썰면 눈이 덜 따갑다. 그럼에도 굳이 손으로 줄기 비닐을 한 꺼풀씩 벗겨내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눈물을 질질 짜며 마음껏 울어본단 말인가? 속으로는 부평초처럼 흔들리면서도 겉으로는 큰 바위 얼굴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
태풍피해를 호되게 당하고 나서 다시는 콩농사를 짓지 않겠다 다짐을 했건만 어느새 토종콩을 갈무리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태풍이 여러 차례 지나갔고 9월은 가히 태풍의 달이라 불릴 만큼 여러 개의 태풍을 맞이하느라 몸과 마음이 바빴다. 당근을 파종하고 여린 싹이 막 올라온 시기라 직격으로 피해를 줬다. 무는 많이 성장해서 피해가 덜했지만 덜하다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콩은 바람 피해로 살짝 눕기는 하였지만 꼬투리가 상하거나 떨어지는 일은 없어서 큰 피해를 면했다. 구좌지역도 김녕 쪽으로는 바람 피해를 꽤 입었으나 종달
동해바다가 참 아름다워 그냥 가기엔 이쁜게 너무 많아 김포로 향하는 빠듯한 시간이지만 결코 놓칠 수 없는 국내 유일 해안단구 바다부채길~정동 심곡은 전국 최장거리의 해안단구 길로 천혜의 자연경관을 이용한 힐링 트레킹 공간으로 조성하였다.정동진 썬크루즈 주차장~심곡항 사이 약 2.8km 탐방로가 조성되어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과 웅장한 기암괴석에서 오는 비경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정동심곡 바다부채길(천연기념물 437호)은2천300만 년 전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 지역으로 정동진의 '부채꼴' 지명과
1. 귀뚜라미가 우네요. 내일 아침 듣게 될 아나운서의 멘트 같지만,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입니다. 가을은 대기가 건조하기 때문에 하늘이 맑아 천고하다고 합니다. 마비는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기보다는 말이 살을 찌워야 하는 계절이란 뜻이겠죠. 추운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뭇짐승들에게 가을은 에너지 보충을 위한 라스트 챤스이니까요. 너무 따졌나요? 귀뚜라미가 웃네요..가을은 뭐니 뭐니해도 단풍의 계절입니다. 안타깝게도 저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엔 단풍이 없습니다. 어릴 때 그림을 곧잘 그렸는데 이상하게도 가을 단풍을 그렸던 기억은 없습니다.
'뉴 알레그리아'... 태양의 서커스가 한국에 오다!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가 돌아왔다! 2018년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쿠자'에 이어 4년 만이다. 지난 20일 막 오른 ‘뉴 알레그리아’. 스페인어로 기쁨, 희망, 환희를 뜻하는 ‘알레그리아’는 지난 10여 년 동안 40개국 255개 도시에서 1000만 명 이상을 매료시킨 대표작이다.‘뉴 알레그리아’는 몰락해가는 가상의 왕국을 배경으로 권력을 다투던 인물들이 진정한 힘은 내면에서 나온다는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 다양한 국적을 가진 53명의 아티스트들이 텀블링,
글이 하나도 없는 그림책이다. 하지만 책은 많은 말을 한다.어느 날 강아지는 찻길에서 버려진다. 자동차에서 내던져진다. 강아지는 그 차를 따라서 숨이 턱에 닿도록 뛴다. 하지만 차를 따라 잡을 수는 없다. 그 차를 운전하는 어른은 개가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할 것 같으니 차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뒤를 돌아본다. 강아지는 하나의 점이 되어 멀리 떨어졌다. 강아지를 버린 사람 마음은 어떨까.내가 살고 있는 제주 지역에서 유기되는 개가 하루 50마리가 넘는다. 한 달 2000마리쯤 된다. 어떤 사람들은 제주도까지 와서 강아지를 버린다.
그림책 『디어 마이 호근동』은 독립출판사 ‘인터뷰’에서 제작됐다. 짐작했겠지만, 이 출판사는 인터뷰 책방이 운영하는 곳이다. 책방 이름을 ‘인터뷰’로 정할 때, 부부는 ‘제주와 삶을 깊이 보다’라는 의미를 담았다. 깊이 있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지속가능한 제주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지금은 ‘폭넓고 다양한 시선으로 제주 바라보기’로 시야를 넓였다. 함께 나눠야 할 주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제주의 마을 어르신들에게 초점을 맞췄던 『디어 마이 호근동』을 비롯해 ‘독립출판사 인터뷰’에서는 지금까지 모두 3권의 책을 냈다
제주도 어디선가 아코디언 소리가 들리면 그 자리에서 풍경과 함께 흔들리는 음악 소리에 귀를 열면 좋을 것이다.제주도 곳곳을 다니며 자연과 어우러진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모임이 있다. 전직 영어교사, 직장인, 농부, 초등교사, 소방관 등으로 구성된 바숨(바람이 숨결이 될 때)이다.설문대할망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풀어낸 『큰할망이 있었어』를 낸 김영화 작가가 새 책을 출간했다. 동료 예술가들과 동광리 어르신들과 함께 조 농사를 지으며 만든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김영화, 이야기꽃, 2022)이다. 이 책 안에 바숨의 모습이 있다.한해
남편은 오랫동안 백발의 긴 머리였다. 그가 이 연재의 첫 화에서 밝힌 바대로, 그렇게 되기까지 사연이 제법 있었다. 그런 그가 지금 머리를 커트하고 염색도 했다. 이번에는 수염을 기르겠다고 한다. 독자 여러분의 열렬한(?) 응원에 힘입어 그는 한껏 기고만장해졌다.“당신 빼고 세상이 다 나를 응원해.”수염 기른 꼴을 봐야 한다니. 몹시 못마땅했지만 참았다. 실내에서 일하며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얼마간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밤에는? 불을 끄면 되지.그의 수염 프로젝트는 용두사미였다. 두 달쯤 되었던가. 어느 날,
볼레낭은 장미목 보리수나무과 보리수나무를 가리키는 제주말이다. 제주에서는 모든 보리수 종류를 볼레낭이라 하는데 그중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보리수 중에 열매가 팥알같이 잘고 가을에 익는 보리수를 팥볼레라 한다.팥볼레는 가지에 가시가 듬성듬성 있고 5~6월에 꽃이 피어 열매가 익는 시기는 한국 중부지방 쪽은 9~10월, 제주에서는 10월 하순부터 12월 초순까지이다. 열매는 붉은색으로 익으며 익기 전에 열매는 떫고 쓴맛이나 잘 익을수록 단맛이 있고 늦가을 서리맞은 열매는 맛이 더 달다. 열매에는 1개의 쌀알만 한 씨앗이 들어있다.옛날에
서귀포시 호근동은 중산간에서 해안으로 길게 뻗은 마을이다. 북쪽으로는 한라산이 엄마처럼 앉아 있다. 해안가는 돔베낭골이 특히 유명한데, 돔베낭골은 제주올레 7코스의 비경으로 꼽힌다. 지난 2019년에 책방 한곳이 이 마을에 문을 열었다. 강시영, 현순안씨가 꾸리는 ‘인터뷰 책방’이다.호근동은 현순안 책방지기의 고향이다. 책방을 열기 일 년 전쯤 강시영 책방지기가 퇴직하면서 순안씨의 고향에 둥지를 틀었다. 어릴 적 봐왔던 고향의 모습을 지금은 많이 찾기 어렵지만 특유의 편안함은 여전하다. 귀향 무렵,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책으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