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궤’라는 제주말이 있습니다. ‘궤’는 자연적 ‘굴’, 특히 바위틈에 생긴 빈 공간을 말합니다. 주먹만 한 것에서부터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것까지, 크기와 상관없이 ‘궤’라고 부릅니다. 딸이 시집갈 때 아버지가 만들어주는 ‘반닫이장’ 또한 ‘궤’라고 합니다. 정성과 여유가 있는 집은 값 비싼 굴무기(느티나무)나 사오기(산벚나무)로 ‘궤’를 만들었고, 정성은 많지만 어려운 집은 마당에 심어놓은 먹쿠실낭(먹구슬나무)으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굴무기로 만든 ‘궤’를 높이 쳤지만, 사오기로 만든 ‘궤’ 또한 고급이었습니다. 제주 ‘궤
한 해 동안 새로운 책 7만 종이 생산된다고 한다. 한 달에 200종의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1종당 100권이 생산된다고 해도 700만 권이다. 그렇다면 이 책들은 모두 소비가 될까? 잘 알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선택받지 못한 책들은 어디로 갈까? 언젠가 누군가 대화를 하던 중 ‘책들의 무덤’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생산과정에서 착오가 있던 책, 재고로 쌓인 책들이 모이고 쌓여 있는 걸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이곳으로 모인 책들은 다시는 그곳 밖으로 나올 일이 없다. ‘쓸모’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쓸모를 상실한 비운의
[키워드뉴스]는 제주MBC 에서 제주투데이 기자들이 키워드로 정리한 한 주의 주요 뉴스를 전하는 라디오 방송 코너로,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5분부터 7시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보이는 라디오’로 제작한 '키워드 뉴스' 영상을 제주투데이에 함께 싣고 있다.
자정이 가까워져 가는데 남편의 행방이 알 수 없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결국 112에 실종신고를 했다.“남편이 집에서 낮 1시쯤에 나간 것 같은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핸드폰도 카드도 가져가지 않았어요. 예? 마지막 모습요? 방에서 낮잠 자고 있었어요. 술? 술은 일 년에 두세 번쯤 저랑 같이 만나는 친구들 모임 제외하고는 술 안 마셔요. 우울증요? 그런 건 없어요. 아픈 데요? 없어요. 오늘도 비 오는데 조기축구에 다녀왔어요.”112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만 해도 설마 안 들어올까 싶었다. 혹시 편지라도 있을까 싶어 침대
지난 10월, 제5회 제주혼듸독립영화제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10월 1일부터 9일까지 50편의 장·단편 독립영화를 감상한 관객은 700여명에 이른다. 팬데믹 이전이었던 2019년의 관객수를 회복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도민들이 직접 시상에 참여하는 관객심사단(혼듸피플) 제도도 부활한 해였다. 영화제는 끝났지만 더 많은 제주도민이 독립영화의 매력을 접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관객심사단과 집행위원들의 글을 4차례 나눠 보낸다.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해 짓는 건물
지난 10월, 제5회 제주혼듸독립영화제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10월 1일부터 9일까지 50편의 장·단편 독립영화를 감상한 관객은 700여명에 이른다. 팬데믹 이전이었던 2019년의 관객수를 회복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도민들이 직접 시상에 참여하는 관객심사단(혼듸피플) 제도도 부활한 해였다. 영화제는 끝났지만 더 많은 제주도민이 독립영화의 매력을 접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관객심사단과 집행위원들의 글을 4차례 나눠 보낸다. 가족의 정의를 찾아보니 주로 부부로 시작돼 혈연으로 묶인 관계를 말한단다. 이에 따라
초겨울 후두둑 인도에 떨어진 낙엽들을 키 작은 중년여성이 일일이 쓸어 담고 있다. 아마 공공근로를 하시는 분으로 보인다. 정성껏 낙엽을 모아 비닐에 담아두면 시간 약속이나 한 듯 트럭 한 대가 바로 다가와 훌쩍 싣고 떠난다. 길 가 양편으로는 몇 장의 현수막이 각자의 사연을 담아 바람을 맞으며 앞뒤로 흔들리고 있다.방금 업무보고를 마친 듯한 공무원들이 한 손에 두꺼운 수첩을 들고 성큼성큼 지나친다. 민원 보러 왔다가 잘 안 풀렸는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지나가던 행인들이 이건 무슨 일이지 궁금해하며 곁눈질로 힐끗 쳐다본다. 2022년
2023년 4·3항쟁 75주년을 앞둔 최근에 여러 의미 있는 일들이 있었다. 우선, 4·3 당시 억울하게 유죄 선고를 받았던 많은 생존 수형인들이 재심을 통하여 무죄판결을 받았다. 물론 이는 지난 2017년부터 최근까지 무려 5년 6개월에 걸쳐 점차적으로 이루어져 온 일이다. 둘째, 4·3 희생자 300명에 대한 첫 국가보상금 지급이 이뤄진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할 과제이고, 후유장애등급에 따른 차등지급이라는 문제도 남겼다. 셋째, 4·3연구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위한 석·박사 과정이 운영될 예정이다. 여전히 우려되는 지점
‘그래 좀 헤매면 어때. 잘 도착했잖아?’길을 헤맸다. 나는 이미 건입동에 도착했는데 다시금 주소를 확인하니 내가 가야 할 곳은 제주시 노형동이었다. 아뿔싸. 어디서부터 잘못된 정보를 진실로 여겼는지 나는 이 원도심에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책방은 집과 생각보다 꽤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굳이 먼 길을 돌아온 것이었다. 약속시간에 늦지는 않을까 조금 초조해졌다. 건입동에서 노형동으로 가는 길이 왜 이리 멀담. 그래도 처음 집을 나설 때 여유롭게 출발한 덕에 약속 시간은 맞출 수 있었다. 약속을 맞추니 안도감이 들
만장굴 미디어아트 정말 문화재청과 제주도는 괜찮은 걸까?문화재청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천연기념물이자 세계자연유산인 만장굴 내부에서 '대형 빔 스크린'을 활용한 미디어아트쇼를 진행하고 있다. 무려 한 달간이나 진행되는 이 행사를 두고 문화재청과 제주도는 옛 만장굴의 신비한 모습을 지리학적 환경적 가치로 계승한다고 홍보한다. 자연·생태적 요소와 친환경적 미디어맵핑 기술을 융합했다며 열을 올리고 있다. 미디어아트와 친환경이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지 이해해가 어렵지만 어째든 문화재청과 제주도는 친환경적 행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름 내내 맹위를 떨쳤던 초록의 잎들이 낙엽으로 떨어져 거름으로 돌아가고 있다. 검붉게 익은 열매들은 새들의 입과 똥구멍을 거쳐 씨앗으로 뿌려지고 있다. 나무는 이렇게 스스로 떨구고 스스로 먹힘으로써 생명을 이어간다. 단풍잎도 생명을 잇기 위한 몸부림의 산물이다. 갈잎나무들은 추운 겨울에 대사활동을 왕성하게 하면 잎과 줄기가 지닌 수분 때문에 얼어 죽게 된다. 그래서 갈잎나무들은 최저기온이 5℃ 이하로 내려가면 겨울을 날 준비를 시작한다. 갈잎나무는 먼저 잎자루와 가지 사이에 떨켜층을 만들어 수분과 양분의 이동통로를 막는다. 그러면
세계유산동굴 가치 알리기 위해 동굴에 해를 끼치겠다고?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11월 12일 토요일부터 한 달 동안 만장굴에서 미디어맵핑(Media Mapping) 쇼를 선보일 것이라는 뉴스를 봤다. 이번 행사는 만장굴 내 공개구간에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소재로 미디어맵핑 공연을 열고 시민들이 표를 구매해서 관람하는 프로그램인 것으로 보도됐다.미디어맵핑은 프로젝터를 이용해 건물 외벽 등을 스크린으로 사용하는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의 일종이다. 지형 오브제 등에 세밀한 가상현실성을 구현하기
제주 어딜가나 돌담을 보게 된다. 제주의 돌담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규칙도 없으며 무한한 곡선의 향연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색채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흑룡만리’라는 멋진 이름이 있다. 까만 용이 1만 리에 걸쳐 이어져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어떤 이들은 불멍 바다멍처럼 하나의 힐링용어으로서 '돌담멍'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무질서해 보이는 제주 돌담은 자연재해가 강력한 제주에서도 어지간해선 무너지지 않는다.'그렝이 공법'이라는 한국의 전통건축기법으로 지어 태풍에도 끄떡없다. 돌들을 반
노리자리라 하면 꿀풀과의 1년생 야생초 꽃향유와 좀향유를 이르는 제주도 방언이다. 노리는 노루를 가리키는 제주방언이며 노루가 노닐거나 푹신하게 깔고 앉는 자리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10월부터 11월에 걸쳐 제주도 내 해발 200~700고지 오름이나 자연 목초지의 키 작은 풀밭에서 자주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이삭꽃차례로 흐드러지게 핀다.온 들판에 깊어가는 가을하늘 아래 눈부시도록 꽃방석을 깔아놓고 꿀벌의 노래 신나게 붕붕거리면 양봉농가에서는 양지바른 들판에 벌통들을 줄지어놓고 꿀 수확을 기다린다. 노리자리 꿀은 제주도에서 나오는 모
내가 섬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열세 살 무렵이었다. 별도봉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혼자 빠져나와 산지등대에 갔다. 그곳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는데 처음 느껴보는 고독이 파도처럼 밀려왔다.제주도 주변의 섬들을 모두 돌아다닌 뒤 그 섬들에 관한 책을 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적 있다. 하지만 나는 모험가가 될 수 없는 체질이다. 멀미를 심하게 한다. 마라도 가는 배에서도 속이 울렁거린다. 목포로 가는 배는 치과만큼 곤혹스러웠다. 친구가 해군에 함께 지원하고자 했을 때 멀미 때문에 손사래를 쳤다. 뱃고동 소리만 들려도 멀미가 난
지난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 기념일(학생의 날)을 맞아 중고등학생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고교생이 그린 ‘윤석열차’ 카툰과 중고교생 촛불집회 탄압 논란에 대해 학생들이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고 한다.또 어느 중학교에서는 기후위기에 맞서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어 채식급식을 주1회로 하자는 안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사회에 대한 관심 표명과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위해 직접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반갑기도 하고, 이런 청소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하다
최후통첩 게임, 협동의 유전자를 타고난 인간사람들은 과연 이기적일까? 이타적일까? 보통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이기적이라 못박는다. 진화론은 이를 뒷받침해 왔던 대표적인 도그마. 진화론하면 누구나 적자생존(適者生存), 즉 경쟁과 도태를 떠올린다. 19세기 중반 당시 자본가들은 자유경쟁과 도태를 진화의 원리로 설명한 다윈을 구세주처럼 떠받들었다. 하지만 적자생존이란 용어를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다. 경쟁만 강조한 줄 알았던 다윈마저도 “꿀벌과 같이 서로 협동하는 종이 있다. 협동하는 종은 경쟁하는 종보다 우월하다”
요즘 뉴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천연가스(LNG), 연탄, 석유 등 원자재 수급 불안정 및 가격 상승을 연일 보도하고 있고, EU(유럽연합) 국가들은 가스 사용량을 15% 이상 줄이는 비상체제에 돌입하고 있다.이에 따라 국내 공공기관들도 다가오는 겨울철 전력난을 우려하며 에너지 다이어트를 추진하는 등 2022년 현재 전 세계가 에너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이런 위기 속에서 에너지 취약계층이 조금이나마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전기, 도시가스, 지역난방, 등유, LPG, 연탄 등 구입을 지원하는 ‘에너지바우처’
학교 옆 문방구처럼 없는 것 빼고 있을 것이 다 있는 책방 책가방의 탄생으로 거슬러 가 보자. 때는 2018년도다. 이미 그 전부터 미화씨는 책방을 다니는 걸 좋아했다. 책을 좋아했고, 책방이 풍기는 분위기를 사랑했다. 어떤 책방은 소품을 같이 판매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보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만의 책방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가 책방을 운영하면 어떨까? 어떤 모습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1년여 동안의 깊은 고민 끝에 일단 문을 열기로 결심했다. 결심하기까지가 어렵지 그 후의 일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