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난초를 아시나요? 찰스 다윈은 28㎝가 넘는 거(距·꽃에서 꽃받침의 일부가 길게 돌출한 부분)가 달린 마다가스카르섬에서 자생하는 난초를 선물로 받습니다. 다윈은 거의 끝에 꿀샘이 있는 것을 보고, 그 난초의 화분 매개충은 주등이의 길이가 30㎝가 될 거라고 추론합니다. 곤충학자들은 그렇게 긴 주둥이를 가진 곤충이 있을 리 없다고 비웃습니다. 하지만 40년 뒤에 마다가스카르섬에서 30㎝가 넘는 주둥이를 가진 나방이 발견되어 크산토판 박각시나방이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다윈난초의 기다란 거 밑의 꿀을 얻기 위해 크산토판 박각시나방의
지난 6월11일 국토교통부는 제2공항 건설 관련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다시 보완하여 환경부에 제출하였다. 알다시피 지난 3월 제주도지사 원씨가 제주민의 반대 결정을 뒤집고 국토부에 제주도정의 찬성 입장을 전한 뒤 이제 현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제2공항 건설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발표에 다름 아니다.이에 대하여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이하 비상도민회의라 씀)’는 지난 토요일 제주시청 앞에서 ‘제2공항 백지화 결정 촉구 도민결의대회’를 열었다. 한마디로 참담하였다. 주차장 한 귀퉁이에 급조한 행사장에 시민들이 주차장 바닥에 쪼그리
유엔 산하 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발간한 ‘2021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5점으로 조사대상 149개국 가운데 62위다. 핀란드가 7.84점으로 1위이고, 덴마크, 스위스 등 북유럽 국가들이 그 뒤를 이었다. 경제 대국인 미국은 18위, 중국은 84위, 일본은 56위였다. 이 지수는 지난 3년 동안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 사회적 지원, 건강수명, 삶 선택의 자유, 관용, 부정부패에 대한 인식 등 6개 항목으로 점수가 집계된다.한국의 1인당 GNI(국민총소득)는 2020년 3만
제주의 장마철은 산수국이 빛나는 계절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검은 숲속에 다발로 피어나는 산수국을 보노라면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퉁이 도체비꽃이 낮에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라는 정지용 시인의 ‘백록담’이란 시가 떠오른다.이어서 열 살 때, 아버지 따라 모슬포에 갔다가 필자를 빨아들일 것 같은 미 여군의 파란 눈동자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 손을 잡았던 기억이 떠오르고,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온다. “키가 작든 크든, 눈동자가 검든 파랗든, 어떻게 보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겉모습은 도체비
지난달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농가경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농가소득은 4503만원으로 전년대비 9.3%로 증가하여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 농가소득은 4912만원으로 전년대비 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농업소득은 감귤 및 마늘 등 월동채소 가격의 하락으로 319만원이 감소한 1209만원이었다.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농가소득 변화를 살펴보면, 첫째, 농업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농가소득이 2000년 2390만7000원에서 2020년 4503만원으로 증가하는 동안
두부는 희고 무르다. 안을 보호하는 가죽도 없고 자신을 세우는 뼈도 없다. 그래서 95% 이상 소화되는 완전식품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른 두부가 여덟 개의 각을 잡아 모나게 존재한다. 무른 놈마저도 깨지지 않기 위해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모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니 세상은 참으로 무섭다. 두부 중에서도 어머님의 노련한 손으로 만지지 않으면 문드러진다는 연두부를 페이스북 친구로부터 받았다. 연두부 100g의 시장가격은 1000원 내외다. 하지만 직접 콩을 골라 물에 불리고, 갈아서 끓인 뒤, 베주머니로 짜서 나온 콩물에 바닷물을 넣어
5월 중순이 되면 내 고향은 청순했던 녹색 들판이 누런 갈색으로 바뀐다. 그러면 종이에 싼 개역을 보릿대로 빨다가 사레들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아버지와 같이 마셨던 시큼한 순다리가 그리워진다. ‘개역’은 볶은 보리를 갈아 물에 타 먹거나 밥에 비며 먹는 제주 음식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보통 쌀이나 찹쌀가루에 콩가루 등을 섞어 미숫가루를 만들지만 쌀이 귀한 제주에서는 보리로 미숫가루를 만들었다. 하지만 보리조차도 조냥(오늘보다 내일을 생각하며 절약하는 것) 허명 살아야 했던 제주에서는 “한 달에 개역 세 번, 조배기(수제비) 세
요즘 제주 북부·서부지역은 마늘 수확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우리 기관에서도 일손 돕기에 나섰다. 생전 처음 마늘밭을 밟은 신입직원을 옆에 앉히고, 정신없이 마늘을 뽑다 보니 손이 아리다. 마늘에 들어있었던 알리인(alliin)이 알리신(allicin)으로 변해 상처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이 알리신이 바로 마늘의 매운맛과 독특한 향을 내는 성분이다. 알리신은 페니실린보다도 항균력이 강해 감기와 식중독 등 세균성 질병에 효과가 있고, 혈전 분해 기능이 있어 고지혈증과 동맥경화증 등 심혈관 질환에 효과가 있다.미국영양학회지에 따
쑥을 캔다. 아니 낫으로 벤다. 올해 처음 유기질 비료를 주어서인지 너풀거리는 잎들이 실하다. 아내가 감귤나무까지 가린 쑥들을 보며 “감귤밭에 쑥이 아니라 쑥밭에 감귤나무”라고 핀잔을 한다. 뱀에 놀란 적이 두 번이나 있어서 감귤 딸 때가 아니면 과수원에 오지 않는 아내가 이번에 따라나선 건 조카가 곧 아이를 낳기 때문이다. 첫딸이 태어나자 형수님이 쑥 한 포대를 가져다주었다. 어머님 지시로 쑥을 헌 스타킹에 한 움큼씩 담아 창고 천장에 매달았다. 쑥이 마르면서 늘어진 스타킹 240개가 바람 불 때마다 흔들렸다. 스타킹 개수가 줄어
아버님 제사 뒷날 어머님을 고향에 모셔다드리면서 같은 골목에 사는 청년 부부에게 제사 퇴물을 가져다주었다. 귀농 5년 차인 부부는 친환경 농사를 짓고, 직거래를 하는 등 우리 마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33세인 남편은 50대가 주축인 청년회 총무를 하고, 이십 대 후반인 아내도 부녀회 활동을 하는 등 서울깍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마을일도 열심히 한다. 그래서 필자는 조금이라도 힘이 될까 하여 어머님 댁에 갈 때마다 그들 집에 들른다.청년부부가 “땅은 정직해서 노력한 만큼 되돌려 준다는 믿음으로 귀농했는데, 올해 양배추를 갈아엎
봄비가 내려 백곡이 기름지게 된다는 곡우가 막 지났다. 단색이었던 자연은 천연색으로 찬란하게 물들어 간다. 새싹을 내고 꽃을 피우려고 온 힘을 집중하는 식물들의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영원히 푸를 것 같았던 보리밭도 누렇게 변하면서 알곡이 영글어간다. 나의 고갱이는 무엇으로 남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딸과 과수원 빈터에 찰옥수수 한 판을 심었다. 한 판이 128공이니 120여개의 잘 익은 옥수수가 눈에 보인다. 먼저 유별나게 옥수수를 좋아하는 둘째 딸에게 스무 개를 배당하고, 어머니에게 열 개, 형제자매에도 스무 개씩, 농사도 못
햇빛이 흐드러진 날, 작은딸과 풀을 뽑았다. 작은딸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크게 벌린 광대나물꽃에 휴대폰을 들이대며 “이렇게 예쁜 꽃을 왜 뽑아요?”라고 묻는다. 어머님이 답한다. “곡식이 먹을 양식을 검질(‘잡초’의 제주어)이 먹어부난(먹으니까) 뽑아야지. 다른 풀들은 아맹 곱닥해도 다 검질이라(아무리 곱다고 해도 다 잡초다)”고. 같은 광대나물이 딸에겐 꽃이고 어머니에겐 잡초다.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딸에게 사람 인(人)자의 아래 획은 스스로 서는 것을 뜻하고, 위 획은 더불어 사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
제사상에 빵을 올리게 된 유래를 찾아 올라가면 고려가요 에 ‘상화(霜花)’가 판매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상화는 밀가루를 삭임이란 술로 반죽하여 채소 등의 소를 넣고 둥글게 빚은 빵이다. 예빈시(禮賓寺)에서 상화를 만들어 사신을 영접했다고 하고, 양반가 부인이 쓴 과 에 조리법이 기록된 것을 보면 상화는 고급음식이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은 이문열의 소설 의 주인공 정부인 장씨가 1670년경에 쓴 한글로 된 가장 오래된 조리서이고, 는 180
올해 유달리 꽃들이 일찍 피었다. 기상청에 의하면 2월이 평년보다 따뜻하였고, 지난 겨울기온 변동 폭이 심해서였다고 한다. 지난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에 따르면 2006∼2015년의 지구 평균온도는 1850∼1900년에 비해 섭씨 0.87도 상승하였고, 최근의 온난화 추세에 따르면 10년에 0.2도씩 상승하여 2030∼2052년에는 1.5도를 초과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또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제출된 국가별 감축목표를 이행하더라도 2030년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520
4월이 되고 벚꽃이 지기 시작하면 고사리가 고개를 삐죽삐죽 내밀기 시작한다. 고사리 장마(4월에서 5월 사이에 내리는 장마;편집자)가 지고 형제가 아홉인 고사리가 여기저기 돋아나면 산과 들엔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고사리를 꺾는 재미는 쏠쏠함을 넘어 중독성이 강하다. 덤불에 숨어 있는 고사리를 찾아서 꺾다 보면 농경시대 이후 봉쇄되었던 수렵채집 DNA가 풀려나와 몰입하게 된다. 고개를 땅에 박고 고사리만 찾다 보면 길을 잃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제주소방안전본부에서는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하고 길 잃은 사람을 구조하기 위
왕벚나무가 하얀 꽃송이를 뻥뻥 튀겨내고 있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라는 그림이 생각난다. 그림의 주인공은 농부다. 씨앗을 움켜쥔 두툼한 손과 옆으로 뻗은 오른팔에서 비장한 의지가 읽힌다. 내딛는 발과 젖혀진 허리에서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풍겨 나온다. 그늘진 농부의 얼굴에서는 그동안 쌓인 피로와 노동의 고단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리고 풀 하나 자라지 않는 황토밭과 잔뜩 흐린 하늘, 씨앗을 먹기 위해 달려들려는 까마귀 떼들이 황량함을 더한다. 이 그림이 지난 1850년부터 1851년까지 ‘프랑스 살롱(Salon·현
코로나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가치소비는 동물복지, 생물다양성과 탄소중립 등의 친환경, 자신을 위해 남의 몫을 빼앗지 않는 정의로운 관계 등 지속가능성의 추구다. 농산물 생산과정과 소비과정이 지속가능한 가치로 연결될 때 우리는 어둡고 단절된 세상에서 나와 환하고 함께하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들의 가장 큰 논쟁거리 중 하나는 ‘태권브이와 마징가 제트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였다. 당시 필자는 접근전을 펼치기 전 마징가 제트가 로봇 펀치 등 첨단 무기로 공격하면 태권브이는 태권 기술을 써보지도 못하고 질 것이
꿩마농 다섯 뿌리에 찌뿌둥했던 몸이 활력을 되찾고, 메말랐던 가슴에 녹색 봄물이 물들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물오르는 달 삼월이다. 어머님이 90세 노구를 이끌고 꿩마농(달래)을 캐다가 겉절이를 하셨다. 어머님이 달래 줄기를 돌돌 말아 내 밥숟가락에 올려놓으신다. 매운바람 맞고 봄빛 머금은 달래 향기가 입 안 가득 퍼진다. 톡 쏘는 매운맛 때문일까, 봄 햇살 같은 어머니의 사랑 때문일까, 코끝이 찡해지고 눈에서 눈물이 번져 나온다. 어머님이 경칩(3월 5일)과 춘분(3월 21일) 사이에 먹는 꿩마농이 제일 맛있다고 하신다. 꿩마농 다
바나나는 부드럽고 달콤하다. 바나나는 낙원의 과실(Musa paradisiace)이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유색인종이나 남자 성기를 상징한다. 그래서 흑인 선수에게 바나나 껍질을 던지면 체포되고, 바나나를 먹는 어린 소녀를 모델로 내세웠던 아우디사는 지탄을 받아 그 광고를 내려야만 했다. 바나나는 연평균 1억 1000만 톤이 생산되고 그중 2100만 톤이 교역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어 가장 많이 거래되는 과일이다. 우리나라도 연간 40만 톤 정도를 수입한다. 우리나라 대형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과일
토양환경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각양각색의 당근들이 개성을 뽐낸다. 그 다양성이 아름답다. 하지만 아름다운 개성들은 상자에 담기는 순간 문제점으로 전락한다. 상품 기준에 맞지 않는 당근들은 가차 없이 버려진다. 인간세계라면 명백한 신체적 차별 행위로 처벌 대상이다. 미나리를 닮은 당근 잎사귀를 잡아당긴다. 홍당무가 검은 흙에서 쑥쑥 올라온다. 배구선수처럼 잘 빠진 놈들도 올라오고, 누구 심보같이 배배 꼬인 놈들도 올라온다. 속 찬 놈들도 올라오고 속 빈 놈들도 올라온다. 산삼과 닮은 흰 놈도 올라오고 순무처럼 보이는 붉은 놈도 올라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