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8일 오사카지검 특수부는 니시무라 신고(西村 眞悟.57) 국회의원을 구속했다. 변호사법 위반 이었다.극우적인 과격한 돌출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지만 그것이 또 인기를 끌었던 민주당 소속 의원이었다.민족주의자임을 자임하고 1997년도에 일본과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센카구제도의 섬에 상륙하여 당시 수상이었던
이번 제주도의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 입법예고와 관련 도민의견 정부제출안을 보면 적이 실망스럽다. 아직도 도민의 삶과 정서와는 거리감이 있는 중앙정부의 비위 맞추기식 일정에 맞게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하려는 권위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여러 가지 일련의 일들의 일정을 놓고 급박하게 돌아가야 할 사항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제주군의회는 침체된 지역경제와 농어촌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고 1차산업을 안정적인 소득산업으로 육성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2004년 11월 15일부터 2005년 11월 24일까지 1년여에 걸쳐 “1차산업발전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 운영했다.그동안 6차에 걸쳐 특별위원회 회의를 개최한 것을 비롯하여 친환경농법 재배농가를 비롯한 감귤원 폐
바람이 제법 매서움을 더하는 이즈음에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주변을 둘러보곤 한다“사랑의 열매”로 널리 알려진 공동모금회는 희망2006이웃사랑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전개할 준비에 일손이 모자라다12월1일 부터 내년 1월말까지 62일간의 모금운동을 통하여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것이며 또한 나눔을 통해 행복해지는 기부문화 조성과
지난 11월12일 오사카에서 열린 오사카후 결승전에서 조총련 조선 고교가 우승했다.5년만의 쾌거였다.이날 오후 한시 반부터 요미우리 TV는 생중계를 했다. 상대팀은 오사카서 진학 학교로 유명한 세이후우(淸風)사립 고교였다.5년전의 결승전에도 세이후우 고교였다. 그들에게는 다시 질수 없는 설욕전이었다.그러나 경기 내용은 조
“열흘 남짓 이지만 아들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지난달 19일 탑동. 사람이 바다에 빠졌다는 다급한 무선지령을 받은 제주경찰서 북부지구대 이길형 경사는 현장에 도착해 지체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약 20m 가량을 혼자서 헤엄쳐간 이 경사는 호흡이 없는 익수자를 물 밖으로 옮겼다.당시 맥박이 멈춘 익수자를 살리기 위해 이 경사는 인공호흡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에 ‘제한적 토지 수용권’이란 게 있다. 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비롯한 관계법령에 근거를 둔 제주투자진흥지구와 관광단지, 유원지에 대해 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사업자에게 제한적으로 토지 수용권을 부여하는 것이다.원안대로 통과되면 기존의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 외에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도 제한적
어제 저녁 중앙로 한 지하상가 매점.여중생들로 보이는 학생이 친구와 함께 빼빼로를 고르고 있었다. 그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내일이 빼빼로 데이가 아니고 농업인의 날' 아니냐고. 그러자 그 학생은 '그게 뭔데요. 그거 우리와 별 상관 없어요'하며 자리를 떠났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내 자신이 민망하기까지 했다.11월 11일은 "키 크고 날씬하게 예뻐지
지난 11월5일 오사카에서 작가 김석범 작품집 출판 기념 파티가 열렸다.이외의 김석범 작품을 전2권으로 헤이본샤(平凡杜)에서 발간했다.추천의 말에서 작가 양석일 씨는 "김석범 문학은 오랫동안 험한 시련을 견디고 형성돼왔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 밑에서 재일문학만이 아니고 일본어 문학으로서의 언어 표현은 엄밀함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도청 기자실은 아무나 사용하나?"제주도 행정체제 등에 관한 특별법 입법예고에 반발한 김영훈 제주시장과 강상주 서귀포시장이 7일 오전 10시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앞두고 도청 공보실이 한차례 술렁거렸다.제주도청 공보실측은 이날 사전 양해 없이 기자실에서 김영훈 제주시장과 강상주 서귀포시장이 기자회견을 한다고한 데 대해 "시군 기자실에 도지사가 불쑥
그 인자스러운 사진이 어찌하여 이 성스러운 교회의 영결식전에 놓여 있습니까?11월 1일 이른 새벽에 울린 회장님의 부음에 온 몸이 떨렸습니다.아무리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하지만 이 자리에서 회장님과의 이별이라니 정말 믿을 수가 없습니다.고인호 회장님. 50년 전에 약관 20세에 한라산을 뒤로하고 좁쌀 두말을 짊어지고 고향산천을 나오셨는데,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