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북초등학교 동쪽, 조선 시대 객사 대청이었던 영주관 터.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놓고 왕명을 받들고 오는 관리들을 접대하고 묵게 하였던 곳이다. 영주관의 설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89년(숙종15) 이우항 목사가 다시 고쳐 지었고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고 한다. 제주공립보통학교(제주북초등학교 전신)가 1908년 이곳으로 옮겨져 영주관을 교실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영주관 터에는 교사(校舍)가 있었지만, 그 후 철거되어 전매청(KT&G 전신)건물이 세워졌다. 전매청 이전 후 2013년~20
“뭐라고? 형님 세대는 이제 끝났으니 나보고 물러나라고? 지금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곧 험한 꼴을 보게 될 거라고?”삐리용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죽기 살기로 조직을 이만큼 키우고 만들어놨는데, 이제는 조직에서 나가란다! 용퇴 어쩌고저쩌고 한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인생무상도 이런 인생무상이 있을 수가 없다.삐리용의 눈앞으로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이팔청춘에 시작해 어언 30년. 이 바닥에서는 나름 ‘혁명가’로 추앙받아왔다. 맨날 싸움이나 일삼고 감옥이나 들락거리던 조직폭력배 세계를 그야말로 완
지난 6월11일 국토교통부는 제2공항 건설 관련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다시 보완하여 환경부에 제출하였다. 알다시피 지난 3월 제주도지사 원씨가 제주민의 반대 결정을 뒤집고 국토부에 제주도정의 찬성 입장을 전한 뒤 이제 현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제2공항 건설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발표에 다름 아니다.이에 대하여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이하 비상도민회의라 씀)’는 지난 토요일 제주시청 앞에서 ‘제2공항 백지화 결정 촉구 도민결의대회’를 열었다. 한마디로 참담하였다. 주차장 한 귀퉁이에 급조한 행사장에 시민들이 주차장 바닥에 쪼그리
1801년, 순조가 11살로 조선 왕일 때 일이다. 순조 나이가 어리다고 순조 증조할머니 정순왕후가 나라를 다스렸다.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 100명 넘게 죽이고 400명 넘는 사람들이 유배를 당했다. ‘신유박해’다. 소설 《난주》는 이때를 그린다.소설 주인공 '정난주'는 유배 당한 정약용 조카다. 정난주 남편 황사영도 천주교를 믿다가 온몸에 수많은 칼질을 하는 끔찍한 아픔을 느끼며 서서히 죽었다. 정난주는 제주도로 유배를 당해서 노비생활을 한다. 젓먹이 아들은 제주도로 오기 앞서 노비생활에서 벗어나라고 추자도에 몰래 떨군다. 어머니
볍씨학교에는 '지기'라는 역할이 있다. 지기는 우리가 함께 일상에 지내며 필요한 공동의 일들을 나눠 맡는 역할을 말한다. 안청소 지기, 화장실 지기, 하루 일정을 책임지고 조율하는 하루지기 등 여러 지기가 있다. 지기는 광명에 있는 본교 볍씨학교에서부터 해왔다. 그러나 우리 제주학사에만 있는 특별한 지기가 있다. 바로 밥지기 이다.본교에도 같은 이름의 밥지기가 있지만 학교에 있는 점심 한끼의 밥을 압력밥솥에다 밥을 짓는다. 제주학사 밥지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기밥솥, 압력밥솥이 아닌 가마솥 밥을 짓는 것이다.제주의 밥지기는 하루에
유엔 산하 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발간한 ‘2021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5점으로 조사대상 149개국 가운데 62위다. 핀란드가 7.84점으로 1위이고, 덴마크, 스위스 등 북유럽 국가들이 그 뒤를 이었다. 경제 대국인 미국은 18위, 중국은 84위, 일본은 56위였다. 이 지수는 지난 3년 동안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 사회적 지원, 건강수명, 삶 선택의 자유, 관용, 부정부패에 대한 인식 등 6개 항목으로 점수가 집계된다.한국의 1인당 GNI(국민총소득)는 2020년 3만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조천'조천 지역에는 현재 30개 이상의 용천수가 남아 있다.조천 '용천수 탐방로'는 조천리 일대 20여 개소의 용천수들로 이어진 탐방로로 과거 제주민들의 삶과 지혜를 엿볼 수 있고 용천수의 역사와 전설을 알아갈 수 있는 아기자기한 돌담길, 잔잔한 바다와 용천수 등을 만날 수 있는 탐방로이다.제주의 마을은 저마다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제주 정신과 문화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신흥리와 조천리의 경계를 이루는 바다가 높은 언덕, 바닷가에서 묘한 기운을 뿜어내는 '엄장매(엉장매)'설문대할망이 육지로
초여름 들어 퇴근길 나서도들판 저녁놀 감상할 정도로 해가 길어졌다비가 잦아든 저녁 먹장구름 살피며 들판으로 들었다이맘때 들판에는 만삭의 말보다햇망아지 붙어다니는 어미말 많아진다봄날에 꽃피고 가을에 열매 맺듯 여름과 가을에 걸쳐 부지런히 자라야혹독한 겨울을 견뎌낼 테이니망아지들도 이맘때 꽃처럼 피어난다가랑비에 젖은 수풀 헤치며 햇망아지들을 따라 다니다누워있는 만삭의 어미말과어미를 지켜보는 해지난 망아지를 만났다순간 전율이 일었다.아! 결정적 순간이구나!어미말이 놀라지 않게 서서히 다가가숭고한 현장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가랑비를 맞으며몸
몇 년째 맨해튼의 이민자들의 음식에 대한 인식의 흐름에 대해 인류학 논문을 쓰고 있다는 그녀가 뉴욕에서 사는 동안 도대체 무엇을 보고 다녀야 할지 묻는 나에게 일단 맨해튼 곳곳에 있는 100년이 넘은 가게들을 가보아야 한다며 데리고 간 곳은 게이 문화로 유명한 그리니치빌리지의 크리스토퍼 스트리트에 있는 찻가게였다. , 오래된 초록색 칠 입구의 가게였다. 126년동안 맨해튼 사람들에게 세계 곳곳에서 온 고급 차들과 커피를 공급해 온 자부심의 이 가게는 직원이었던 웡형제가 1980년에 주인에게
브라이언 딜의 《쓰레기》는 이상한 책이다. 제목이 단도직입적이고 구체적이다. 내용은 정신을 다소 혼미하게 만든다. 책의 판형은 크지 않다. 페이지도 150쪽이 채 안 된다. 그런데 쓰레기에 대한 오만가지 상념을 만들어낸다. 쓰레기를 우리 삶에서 분리해내어 폐기처분할 무엇으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책의 목차를 소개하면 이렇다. 해변이 건네는 말, 친숙한 쓰레기/군살처럼 불어나는 탭들, 우주의 돼지들, 백만 년의 공포, 폐허주의, 가시-파편-돌, 호더의 세계, 카르바마제핀 호수. 역자 한유주는 책 맨 뒤에 옮긴이의 말을
초등학생 때,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판사는 정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고 올곧은 품격이 기대되는 존경의 대상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린 마음에 근사해 보이는 답을 하고 싶었다.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등 85명이 일본 전범 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우리나라 법원에서 각하했다. 판결문 내용이 기막혔다. "당시 대한민국이 청구권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에 기록되는 눈부신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라니! “분단국의 현
# 몬드라곤을 그리며90년대 초로 기억한다. 우연찮게 친구한테서 책 하나를 건네받곤 날밤 지새웠던 때가. '해고 없는 기업이 만든 세상'이란 부제를 단 책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는 스페인 변방 바스크에서 시작해 반세기만에 100여 개 기업, 수만 명의 조합원이 일하는 몬드라곤협동복합체(Mondragon Corperation Cooperative・MCC/ 스페인 기푸스코아주 몬드라곤시에 본부를 둔 MCC는 시민들이 꾸린 조합 100여개가 모여 글로벌 기업처럼 운영하는 조직)에 대한 기록. 한때 제주에서 '하늘버스협동조합'을 부르짖던
요즘 우리는 선흘분교에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위해 주1회 수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가 배우는 입장이 아니라 선생님의 역할을 맡고 있다. 영어, 국어, 과학 등 지식 교과 위주의 수업이 아닌 우리가 아이들에게 잘 알려줄 수 있는 활동으로 진행한다. 매일 하는 농사, 어릴 때부터 재미있게 했던 마당놀이, 손 놀이, 바느질, 요리, 목공 등 아이들과 하고 싶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과 농사, 요리, 바느질 등 앞으로 살아가며 필요한 경험을 아이들이 가져갈 수 있는 의미를 담아 열심히 준
제주의 장마철은 산수국이 빛나는 계절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검은 숲속에 다발로 피어나는 산수국을 보노라면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퉁이 도체비꽃이 낮에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라는 정지용 시인의 ‘백록담’이란 시가 떠오른다.이어서 열 살 때, 아버지 따라 모슬포에 갔다가 필자를 빨아들일 것 같은 미 여군의 파란 눈동자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 손을 잡았던 기억이 떠오르고,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온다. “키가 작든 크든, 눈동자가 검든 파랗든, 어떻게 보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겉모습은 도체비
기득권 정치에 안주하고 대중을 권력유지의 대상으로만 동원하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준석 신드롬을 극복하기는 난망할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라면 당장 내년 대선 재집권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 않는다.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역사상 최초의 30대 당 대표, 2030세대의 불만을 해결할 새로운 지도자라는 등 상찬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안티 페미니즘, 노동유연화, 경쟁과 능력주의 우선 등 사회인식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최초로 30대에 국회 교섭단체 요건을 갖춘 정당의 대표가 된 것만으로도 정치사에 새
국가지질공원은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우수한 지역으로 이를 보전하고 교육과 관광에 활용하기 위해 환경부 장관이 인증한 공원으로 정의된다. '제주 여행의 백미 지질공원' 화산섬 제주도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우리나라 유일의 세계 지질공원이다.대표적인 지질명소로 제주의 상징 한라산, 동쪽으로 만장굴, 성산일출봉과 우도, 동북쪽으로 선흘곶자왈(동백동산), 교래 삼다수 마을, 서쪽으로는 수월봉과 비양도, 남쪽에는 서귀포층, 천지연폭포,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그리고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등 13개의 대표적인 지질명소가 있다.제주도 서
안나는 자신을 ‘#안나, #긍지, #표퍼플’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소개했다. 먼저 닉네임인 ‘안나’는 어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으로, 성인이 되어 스스로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자신의 삶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사용하고 있다. ‘긍지’는 실명과 연계된 키워드로 자부심, 자존감 등을 내포한다. 인터뷰 내내 긍정적이었던 그의 에너지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마지막으로 ‘표퍼플’은 안나의 퍼스널브랜드를 가장 잘 드러내는 키워드로 어쩌면 그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매니악 기질이 있는 안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표현하
지금 여기에서 폴리아모리가 발화된다는 것은, ‘사랑-혁명 전선’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 사랑이 막 재발명되고 있는 것일까?얼마 전 제주투데이에 실린 한 기사를 아주 재밌게 읽었다. 폴리아모리Polyamory에 관한 기자들의 이야기를 재미있는 형식에 담아 올린 것인데, 읽고 나자 몸과 마음이 근질근질했다. 폴리아모리 혹은 사랑에 대해 무언가 말하고 싶어졌다. 좋은 글이란 이런 게 아닐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뭔가 하게끔 만드는 것! 그래서 이 글은 그 기사(☞[제투수다] 폴리아모리)에 대한 하나의
지난 글(지역선거에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서 밝혔듯이 내가 시청앞 조형물 광장에서 개인적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제2공항 반대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또한 지금 싸움이 제2공항 반대싸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위기를 맞고 있는 제주민의 생존을 위한 싸움의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함을 알리고 그 싸움의 고리를 잇기 위함이다.달리 말하면 지금 제2공항 반대싸움을 지역선거와 어떻게 연결할 것이며 어떠한 동력으로 지역선거까지 이어갈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 주민들을 만나는 장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며 그 선전의 내용을
목요일, 드로잉 수업이 있는 날이다. 원래 수요일 수업이지만, 일정 때문에 하루 미루어졌다. 드로잉 수업에서는 목탄 연필 색연필 등 여러 가지 도구를 써서 그림을 그린다.드로잉 수업에서는 이 도구들을 무기라고 말한다. 우리는 수업마다 이 무기를 들고 동네 삼춘(연장자를 부르는 제주어)들의 창고를 그리고 있다. 창고의 외부를 그리기도 하고 내부를 넓게 그리기도 하고 어떤 물건을 지정해서 그리기도 한다. 그린 그림으로 삼촌의 창고를 갤러리로 변신시키기도 하고 '우리 커뮤니티'라는 큰 건물에 전시하기도 했다.첫날에는 연필 한 자루와 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