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쏟아붓던 장맛비가 잠시 주춤하자 아침부터 시끄러운 예초기 엔진 소리가 마을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여름 시골은 풀들과의 전쟁이다. 잠시 해가 얼굴을 내밀 때 곧바로 풀을 제거하지 않으면 긴 장마에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주저하는 사이 풀씨라도 생기면 예초 후 곧바로 다시 올라오기 때문에 그 전에 얼른 제거하는 게 상책이다.풀들이 자라는 걸 보면 정말 경이롭다. 코딱지 만한 우영팟에 쪼그려 앉아 이른 봄부터 열심히 검질을 맸지만 흘렸던 땀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올라오는 풀들 때문에 허리가 부러진다. 요즘처럼 매일 비가
1. 메역은 비단이랏쥬제주시 내도동 해안에 두리빌렛당이 있습니다. 이 당의 주인은 용녀부인입니다. 내도동 웃당에 좌정하던 용녀부인은 매 년 음력 2월, 해녀의 숨비소리를 듣기 위해 두리빌렛당으로 내려옵니다. 동짓달에 되면 겨울 바람을 피해 다시 웃당으로 올라갑니다. 용녀부인은 왜 2월에 두리빌렛당으로 내려올까요? 해녀의 숨비소리는 1년 내내 들리는데 말입니다.용녀부인은 음력 2월부터 동짓달까지 열일하지만, 내도동 해녀들은 음력 2월이 지나면 기도빨이 떨어진다고 조용히 귀뜀해줍니다. 이는 아마도 음력 2월이 한 해 첫물질이 시작되는
터키에 있는 두 번째로 큰 도시, 이스탄불. 2022년 1600만 사람이 산다. 서울보단 인구밀도가 높진 않다. 이스탄불은 지난날엔 콘스탄티노플로 불렸다. 지금부터 천 년 전 지구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했지만, 상업으로 얻은 이득이 상인들의 손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타로홀릭 블로그 글 ‘비잔틴과 콘스탄티노플’)“13~14세기 오스만족은 마침내 서부 아나톨리아와 남동부 유럽의 비잔틴 영토를 차지하고 그리도교를 신봉하는 발칸 국가들을 속국으로 삼았으며, 동부 아나톨리
육지와 제주도라는 섬 사이에 벽처럼 가로막고 있는 물리적인 거리. 따지고 보면 육지 공항에서 제주도에 도착까지 한시간 안에 이뤄진다는 시간의 이점이 있다. 하지만 외지인들에게 제주도는 큰맘 먹고 가야만 품을 수 있는 이국의 먼 곳처럼 느껴진다. 처음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글솜씨 없는 내가 글을 쓰게 된 여러 이유들 중에 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육지와 제주도 사이에서 발생한 거리라는 편견 때문에 육지부 뮤지션들이 제주에서 공연하는 기회가 좀처럼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이었다.그런데 최근 들어 미묘한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아름다운 한천, 숲 따라 걷는 오라올레 방선문 가는 숲길은 전설과 옛이야기를 품은 도심 속 산책로이다.오라동을 가로지르는 제주시에서 가장 긴 하천인 '한천'은 용연을 지나 바다로 간다.시내 중심을 흐르는 한천 따라 형성된 계곡을 걷다 보면 제주의 멋과 맛, 그리고 영구춘화로 알려진 방선문은 덤으로 만나게 된다.제주시민복지타운 광장에 주차를 하고 고지교를 출발하여 연북 3교~한라도서관~제주아트센터~한북교~정실오거리~제주교도소~방선문으로 이어지는 약 5km의 숲길은 올레를 형성하고 있다.푹푹 찌는 더위지만 도심 속 그늘진 길이니 무조건
자귀낭, 자구낭, 자골낭. 모두가 자귀나무를 가리키는 제주말이다. 자귀낭은 콩과식물 낙엽 활엽 소교목으로 키는 5미터 내외로 자란다. 수형은 옆으로 가지를 뻗어 맨 위 부분이 수평을 이룬다. 한국에는 제주에서 개마고원 밑에까지 자생하는 전국 분포식물이나 그중에도 제주에서 가장 많이볼수있는 식물이다.완연한 연두빛이 생동하는 4월 하순까지도 죽은나무처럼 빈 가지만 남아 눈치를 보다가 늦추위가 완전히 지나간 시기에 맞춰 5월쯤에야 여린 잎을 조심스럽게 내민다. 파란하늘 태양이 활짝 웃으며 나뭇잎을 따뜻하게 쓸어 내리면 간밤에 포개어 잠들
코로나19가 해소되면서 많은 관광객이 제주를 찾고 있다. 그만큼 제주공항을 찾는 이용객도 많이 증가했다. 그래서 제주공항 내에는 여러 가지 홍보 시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그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국내선 2층 출발 대합실에 설치된 제주도에 서식하는 새를 캐릭터화해서 전시한 홍보공간이다.이 홍보공간에는 제주도의 상징 새인 큰오색딱따구리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여름 철새 팔색조, 주로 남부지방에 서식하는 텃새인 동박새 이렇게 3종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이 검색대를 통과한 공항 이용객을 맞이하고 있다.이번 전시를 추진한 제주공
안녕하세요! 요행입니다. 요즘 이 좀 뜸해졌지요. 이 칼럼을 쓰면서 귀한 인연을 많이 만났고, 또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책방들을 소개할 수 있어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그런데 근 1년 사이 제 삶에 여러 변화가 찾아왔고 을 꾸준히 연재하기가 어렵게 되어서 긴 휴재 공지를 올립니다.몇 달간 은 좀 쉬고 재정비한 후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제주 책방 소식을 기다렸을 독자님! 다시 다양한 내용으로 돌아올 을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무덥고 습한 계절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
이제는 여름 계절의 덥고 습하기가 열대 나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게릴라처럼 숨바꼭질하다가 어느 순간 장대 같은 물 폭탄을 뿌리고 홀연 사라지는 비는 어떠한가? 이는 영락없는 열대 나라의 스콜이다. 7월 15일의 토요일의 제주 날씨가 그러했다. 덥고 습했다. 예측할 수 없는 비가 수시로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라는 영화를 보면 '맑음 소녀'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영화 속에서 '맑음 소녀'가 비 내리는 날 하늘에 소원을 빌면 비가 그치고 햇살 가득한 맑은 날씨로 변한다. 나는 그녀
용천수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서귀포시 예래동은 자연경관과 해안절경이 빼어난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해안을 따라 마을이 조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농어촌마을이다.제주올레 8코스의 길목에 있는 예래동의 아름다운 해안길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예래마을은 가볼 만한 관광명소로 10선을 선정했다.1) 군산 2) 애기업은 돌 3) 구시물 4) 대왕수천 5) 반딧불이(불란지) 예래천 6) 갯깍주상절리대 7) 선사시대동굴유적지(들렁궤, 다람쥐굴) 8) 논짓물담수욕장 9) 하예포구와 진황등대 10) 진모살(중문색달해변) 아무
우연한 계기로 고시연님과 인연을 맺게 됐다. 처음 알게 된 것은 SNS를 비롯한 주변의 추천이었다. 창업을 비롯한 청년-제주를 연결하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주변을 빛나게 해주는 사람. 창업 스토리, 활동 이야기를 들었을 때 떠오른 문장이다. 주변을 빛나게 함으로써 함께 쌓아가는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그는 제주에서 청년들이 각자의 답을 찾고,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함께 걸어가는, 자신의 제주를 그려가는 청년이었다.▶시연님을 표현하는 세 가지 키워드를 말해주세요.#로컬 :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둘러싼 환
덥고, 습했던 지난 8일. 농도 짙은 안개가 유령처럼 출몰했다가 사라졌다. 제주섬만이 가질 수 있는 여름 날씨의 특색이 모두 드러난 날이었다.더움과 습함, 그리고 안개라는 불리한 날씨 조건이 뒤섞인 고약한 날에 공연 날짜를 잡은 용기 있는 밴드가 있다. 그 주인공은 '파초선'이다.나는 그들의 공연을 수차례 관람했던 터라 멤버들과 서로 어색하지 않은 인사와 안부를 묻는 사이다. 하지만 나름 친하다는 밴드가 불리한 날씨 조건 아래서 공연을 한다고 하니 걱정이 됐다. 특히 이날의 걱정은 날씨 말고도 한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공연장소였다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로 인해 삼중수소를 포함한 방사능물질이 포함된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내려는 일본정부 방침을 두고 논란이 한참이다.지난 4일에는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보고서는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이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하며 ‘방류에 따른 인체, 환경적 방사능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한다. 동시에 ‘방류 방침을 권장하거나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해양 방류 방침이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 우려를 제기했다’라는 내용도 담았다. ‘방류 결정은 일본정부의
한여름으로 가는 길목 파란 하늘, 숲 속 산딸나무가 유난히 아름다운 계절...숲으로 들어서자 조금은 어두컴컴하지만 숲이 뿜어내는 서늘한 싱그러움, 그리고 고목 아래 이미 꽃잎을 떨구고 흔적을 남긴 '박새'의 도도한 모습에 눈길이 간다.연초록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는 오래된 나무가 있는 숲 속 풍경 새들의 고운 노랫소리, 나뭇잎 스치는 바람소리, 흙을 밟을 때마다 느껴지는 푹신 거리는 자연의 소리, 연둣빛 나뭇잎 사이로 햇살 쏟아지는 소리, 나무냄새, 꽃냄새, 풀냄새 맡으며 쉬엄쉬엄 여름의 숲을 걸어본다.숲 가장자리에는 이미 시들어
'재즈 보컬'하면 루이 암스트롱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가 가진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와 스캣, 선명한 트럼펫 사운드는 '재즈 그 자체'임이 분명하다.하지만 스윙시대인 30년대에는 빅밴드의 화려한 연주에 밀려 보컬은 그다지 부각되지 못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빅밴드가 해체되고 캄보 위주의 소규모밴드가 유행하자 대중들은 가사가 있는 보컬 재즈를 찾기 시작했다.그리곤 재즈계의 3대 디바라 불리우는 빌리 홀리데이와, 엘라 피츠제럴드, 사라 본에 이르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더불어 프랑크 시나트라, 토니 베
권정생. 이름만 불러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살아있을 때 어른들 욕심으로 아파하고 쓰러지는 아이들을 살리려고 애를 썼던 사람. 남북이 갈라진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일에 힘을 썼던 사람. 그는 1980년 초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를 썼다.1951년 1월 북녘에 살던 아홉 살이 된 아이 ‘곰이’는 한국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오다 비행기에서 퍼붓는 폭격으로 죽었다. 그 해 북녘 군인 아저씨 ‘오푼돌이’도 압록강까지 후퇴했던 부대가 중공군 도움으로 다시 서울로 내려오다가 온 산이 흰 눈으로 뒤덮인
어느덧 ‘취향의 섬 북앤띵즈’가 문을 연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18개월의 시간 동안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았다. 책방 근처에 서귀포여자고등학교가 있다. 교복을 입고 책방을 찾은 여고생들이 기억에 남는다. 책을 사려고 동네의 작은 책방을 찾아온 소녀들의 마음을 가늠해 보니 ‘청량감’, ‘수줍음’, ‘설레임’ 등의 단어가 몽실몽실 가슴에 떠오른다. 덕분에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잊지 못할 손님은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겨울에 찾아왔다. 책방지기는 그날 눈보라가 너무 심해 책방 문을 열기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다.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다가온 무더위를 몸소 느낀다. 절정에 다다른 무더위와 이를 견뎌내야 하는 이 계절이 두렵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리쬐는 햇볕, 이로 뚝배기처럼 달궈진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푹푹한 열기 그러다가 지겹도록 매섭게 쏟아지는 폭우들과 습도 등은 이미 지구가 아프고 병들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매년 겪어야 하는 이 여름은 더 무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에 더 두려울 뿐이다.2년 전이었을까. 개인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LP 를 구매했다. 말 그대로 92년 발매
열려있는 파란 하늘 찬비와 거센 바람을 이겨내며 용기를 내주었던 샛노란 봄은 아침마다 색을 달리하며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연둣빛으로 한창 무르익어간다.초록초록이 내려앉은 천의 얼굴을 가진 한라산, 그 멋스러움에 다시 찾게 된다.하원 수로길은 영실 주차장에서 영실 제1교를 지나 영실 등반로 방면으로 500m를 걸어가면 길 오른편에 들머리가 보이고 한라산 둘레길(동백길)로 이어진다.자연림 속에 수로를 따라 걷는 하원 수로길은 편도 4.2km로 왕복 3시간 정도 소요된다.하원 수로길은 한라산 중턱 숲이 가장 울창한 구간에 1950년대 후반
LMO(유전자변형생물체) 주키니호박을 재배한 것은 아니었다.인터넷사이트에 주키니호박 판매 글을 올리고 주문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들어오라는 주문이 들어오기는커녕 판매중지됐다는 메시지가 핸드폰으로 들어왔다.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주키니호박을 판매하는 사이트나 생산자가 있는지 검색했다. 세상에나, 그 어디에서도 그 어떤 생산자도 주키니호박을 판매하고 있지 않았다.올 초 LMO 주키니호박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 봤다. 한 종자회사에서 검역을 거치지 않고 들여온 LMO 종자가 판매됐다. 그 종자가 자라 주키니호박이 생산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