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동에 사시는 김씨 어르신도 찾아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아이고. 니는 모르면 말도 마라. 그 집은 개가 하도 짖어서 들어가지도 못한다. 김씨는 우리양반 갑장이라 내가 챙겨보는데 요즘 얼굴도 못봤다. 니가 가도 절대 못본다.”“형님. 근데 올해는 마을대청소 안하냐고 누가 물어보던데?”“지난해 대청소한다고 방송을 그렇게 해도 나오지도 않는데... 이 무슨!”“며칠전에 청년회가 마을길에 풀을 깎았는데, 풀을 깎았으면 훅 부는 걸로 치우면 되는데 저렇게 그냥 어지럽혀 놓고 갔다.”벌써 2시간째다. 50대 막내부터 70대 어르신까지
틀낭은 산딸나무, 고장은 꽃의 제주말이다. 층층나무과의 틀낭(산딸나무)는 초록빛 나뭇잎이 활력을 더해가는 5월과 6월의 산야에 하얀 나비떼가 나무위에 앉은듯 긴 꽃자루를 뽑아올려 화사하게 꽃을 피운다. 제주 한라에서 북상하는 여름을 따라 남과 북의 황해도까지 녹색숲이 우거지면 하늘로 향하는 나무위에는 하얗게 하얗게 무리지어 앉은 나비와 같이 화사하다. 이것은 초록색에 가려지는 녹색꽃에 매개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눈에 띄는 색을 가진 가짜꽃이 꽃받침을 대신해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이렇게 색깔에 홀려 날아온 곤충들은 하얀 십자화의 가운데
제주 한림읍 금릉리에 ‘수릉콪’이라는 해안지대가 있습니다. ‘콪’의 면적은 대략 5000평으로 작고 아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작은 ‘콪’에서 제주 돌담의 다양한 면모를 만날 수 있습니다.‘수릉콪’의 풍경을 한 번 살펴볼까요? 먼저 ‘집담’이 마을의 집들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집담’ 사이로 길을 튼 ‘올래담’이 크고 작은 ‘밭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밭담’과 ‘밭담’ 사이에 ‘산담’이 여럿 자리하고 있네요. ‘밭담’의 끝에는 크고 건장한 ‘잣담’이 서 있습니다. ‘잣담’은 해변가의 곡식들을 지켜내기 위해 땅의 끝자락에서
지난 13일 아침 8시 구좌읍 평대리 바다, 나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서명용지를 들고 해녀 탈의장을 찾았다. 요즘 제주 해녀들은 제철인 성게를 채취하는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해녀들이 탄 오토바이들이 하나, 둘씩 해녀 탈의장으로 모였다. 다들 물질 준비 채비로 분주하다. 쑥도 좀 뜯어 챙기고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며,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고 뇌선약 도 챙겨 먹으며 고무옷을 입었다. 빡빡한 고무옷을 꾸역 꾸역 말아 입고 수경, 오리발을 챙기고 생명줄과도 같은 테왁을 들고 해녀들은 거친 바다 앞에 섰다.물질에 나서기 앞
이명옥 책방지기가 오름을 소유(?)하게 된 것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벽화 작업을 의뢰받아 제주시 구좌읍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3월이라고 해도 겨울처럼 매서운 날이었다. 그 구부정한 돌담길로 들어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작업 장소로 가는 길이 익지 않아 다른 길로 빠지게 됐다. 수확을 마친 당근밭에서 하얀 것들이 보였다. 강아지였다! 막 젖을 뗀 것 같은 작디작은 강아지 2마리가 명옥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주의했더라면 자칫 차로 꼬물이들을 칠 뻔했다. 아찔한 마음을 쓸어내리니 이 꼬물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장면들#1. 제주에서 열린 국제포럼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주제로 하는 세션에 현직 해녀들이 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석한다. 해녀들은 사회자로부터 제주어를 사용하고 바다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도록 요청받는다.#2. TV 방송 시사토론회해루질의 문제를 지적하고 레저동호회와 해녀들의 갈등을 함께 다룬 토론회였지만 정작 패널에는 해녀를 찾아볼 수 없다. 해녀들의 경험은 어촌계를 대표하는 남성에 의해 대변된다. #3. 월정리 해녀 투쟁 현장며칠 전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반대를 위해 해녀들이 투쟁을 이어나가는 현장에 여러 남성들이 찾아
농부의 바쁜 오월이 지나가고 연둣빛, 유월의 시작을 알리는 수국이 거리마다 곱게 피었다.몇 해 동안 보지 못한 '금강애기나리'를 만나기 위해 관음사 탐방로를 예약 했지만...젖어있는 아침, 일기예보와 다르게 옷을 적시는 비에 '우의를 꺼낼까?' 잠시 망설였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에 내리던 비님은 멈췄다.백록담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한라산탐방로 예약시스템에서 탐방 일자를 예약하면 카카오톡 메시지로 OR코드를 알려준다.2021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한라산탐방로 예약시스템이 2022년 4월 탐방 예약부터 예약 부도를 줄이기 위해 일부
그는 부자다. 무려, 오름을 가졌다! 제주 360여 개의 오름 가운데 그것도 꽤나 이름이 알려진 오름을 말이다. 용눈이, 거문, 사라, 백약이, 새별까지!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오름을 가질 계획은 없었다. 그가 걸어온 삶이 그를 그렇게 이끌었다. 그는 부자다. 섬을 가졌다! 그런데 이 섬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란 이름으로 불려서 책이면 책, 사람이면 사람, 물건이면 물건 그 모든 것이 ‘취향의 섬’의 범주 안에 든다. 그러므로 그는 엄청난 부자가 아닐 수 없다. 이 절대적 부자의 이름은 이명옥.
‘바람은 모두의 것이다’10여년 전 풍력발전단지 건설을 둘러싸고, 사업자와 지역주민 사이에 갈등이 자주 발생하고 환경훼손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되자, 당시 환경단체 등이 ‘풍력자원 공유화운동’을 펼치면서 내걸었던 모토다.제주도의 생명줄인 지하수와 마찬가지로 제주도의 자연적 특성인 ‘바람’도 소수 사(私)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활용되어서는 안되는 ‘공공자원’이어야 한다는 취지다.‘풍력자원 공유화운동’의 성과로 2012년 제주에너지공사가 설립되어 풍력발전단지 개발 및 운영을 전담하고 있으며, 풍력발전에 참여하는 민간사업자는 매출액의 7%
제주에서 4.3 관련 행사가 열리는 날, 비가 내리는 경우가 유난히 많은 느낌이다. 4.3평화공원에서 4.3 예술축제가 열린 지난 5월 13일 역시 그랬다. 야외에서 열리는 행사라 아침부터 쏟아진 세찬 장대비에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막상 개막 시간이 되자 적당히 분위기를 맞춰주는 부슬비로 바뀌었다. 이내 물안개가 자욱한 풍경은 일부러 꾸밀래도 꾸밀 수 없는 무대 장치가 되었다. 행사의 분위기를 돋우어 주었다. 사실 우리 단체에서 4.3 예술축제에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활동가들 사이에 약간의 설왕설래가 있었다. 현재진
새연교로 가는 신기한 공간 서귀포층이 있는 해안 제주도의 기반 '서귀포패류화석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서귀포층은 서귀포시 서홍동에 속한 제주 형성과정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지층으로 화산활동과 환경변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지층과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조개를 주로 한 패류화석들이 드러난 모습을 볼 수 있다.서귀포항과 무인도인 새섬을 이어주는 다리 '새연교' 서귀포 바다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는 다리 다리를 건너면 새연교와의 또 다른 인연이 만들어진다.서귀포항의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는 새섬은 서귀포항
제주말로 '도채비고장'이라 하면 표준어는 산수국을 말한다. 수국이나 산수국은 꽃이 국화처럼 무더기로 모여서 핀다. 하지만 국화가 아니라 장미목 범의귀과 식물이다.일반적으로 국화과 식물들은 그늘을 싫어하고 햇볕을 좋아한다. 그에 반해 범의귀과 식물인 산수국은 햇볕을 싫어한다. 물기가 촉촉한 땅과 촉촉한 공기가 흐르는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흔히 원예용으로 가꾸는 대형 수국은 꽃모양이 인조화같은 인상을 준다. 반면, 산수국은 꽃이 자연적인 이미지를 풍긴다.특히 산수국은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직감할수있는 표본식물이기도 하다. 여
끝나지 않은 시간올봄, 4‧3 75주년 추념일 행사가 있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권력에 의해 무력탄압이었음을 사과한 바가 있다. 하지만 올해는 대통령도 참석하지 않은 추념행사였다. 대통령이 참석하든 안하든 그게 본질은 아니다. 아직도 묻힌 진실은 많을 것이라는 게 본질이다. 한 번도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목소리를 드러내는 일은 절박하고 시급해졌다. 4‧3과 여성의 기억을 드러내 표현한 것은 아마도 현기영 소설 『순이삼촌』(1978)이 처음일 것이다. 이 소설은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주
하늘이 예쁜 오월~비자림으로 가는 가로수길에는 연둣빛 독특한 잎과 튤립을 닮은 만개한 백합나무, 담장에 걸린 탐스럽게 핀 장미, 검은 밭담 안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한 아름다움을 가진 하얀 감자꽃, 그리고 맑고 향기로운 바람까지 진정한 계절의 여왕이다.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위치한 비자림은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옛날에는 비자림을 '비자곶'이라 하였는데 곶자왈 용암에 의해서 형성된 곳으로 세화·송당 곶자왈에 속한다.비자림은 제주에서 처음 생긴 삼림욕장이면서 세계 최대규모의 단일수종 숲으로 알
여름의 길목이다. 봄이 언제 왔냐싶지만 바로 무더위와 싸워야하는 여름이 와버렸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심각한 상황이기도 하거니와 날씨는 극단을 달린다. 6월로 접어든 요즘 아직도 밤 기온은 서늘하다 못해 춥다 느낄 정도로 낮고 낮에는 한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기온이 높기도 하다.게다가 올 해는 잦은 비가 말썽이다. 밤 기온이 오르지 않아 익어야 할 보리가 익지 않고 비가 잦아 수확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보리수확을 하고나서 6월 하순경 장마 즈음에 콩을 파종해야 할 텐데 현재의 기상상태로는 보리수확을 언제쯤 할 수 있을
기타나 드럼, 피아노와 같은 악기를 배우는 사연과 이유가 있다. 부모의 권유에 의해, 또는 즐겨 듣는 음악을 직접 연주해 보고 싶은 사람들. 이들이 악기를 배우는 보편적인 방식은 음악학원에 등록하거나, 서점에서 관련 서적을 사서 독학으로 악기 연주를 공부하는 사례일 것이다.내 경우는 독학으로 악기공부를 했던 케이스다. 서점에서 좋아한 밴드의 밴드스코어 책을 구매하고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공부를 했었다. 하지만 독학 공부의 한계인지 아니면 재능의 부족인지 연주 레벨이 높은 곡들은 그 단계를 넘기지 못했다.밴드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아침에 부랴부랴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일찍 법원에 도착했다. 재판이 열리는 302호 법정은 아직 안내 모니터조차 켜지지 않았고, 한 법원 직원은 덜 마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황급히 사무실로 들어갔다. 법정 앞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잠시 후, 제주사회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이번 사건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서 대표가 여유롭게 4층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선고를 앞둔 피고인임에도 연신 웃으며 일일이 호화 변호인단과 서로 덕담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니 화가 치밀어 올라 잠시 호흡이 가빠졌다.제주지방법원 302호 법정 앞 의
1995년, 그 해엔 기억할 만한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군대 영장이 날아들었고 다니던 대학은 휴학했다. 활동하던 밴드는 잠정 해체를 했다. 새 일렉 기타를 갖게 됐고 멋드러진 태광 오디오가 생겼다.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자 하루종일 기타를 쳤다. 그러다 지루해 지면 오디오로 음악을 틀었다. 평범하고 수수한 날들이 계속 됐다.주방을 개조한 나의 방은 낮에는 죽은 듯 늘어졌다 밤이 오면 갑자기 활기를 띄었다. 옅은 조명과 빨간색 촛불, 진득한 블루스 음악이 흐르는 뮤직바로 바뀌는 것이었다. 그러면 기타를 놓고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고
이 책은 2002년에 나왔다. 우리나라에는 2004년에 옮겨서 나왔다. 지금부터 21년 앞서 나온 책이다. 지금에 와서야 더욱 뜻이 깊다. 우리나라는 젊은 사람들이 혼례를 치루지 않고, 혼례를 치룬 사람들도 아기를 하나 낳거나 아예 낳지 않는다. 또 아기는 대부분 병원에서 낫는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반 넘게 배를 갈라서 아기를 낳는다. 유럽에 있는 많은 나라들은 점점 배를 가르며 아기를 낳는 일이 줄어든다.글쓴이는 말한다. 아기를 낳을 때 기계를 쓰면 아기가 자라면서 거칠어진다고. 또 아기가 서둘러 나오도록 약을 먹으면 아이가 자라
제주의 5월은 아름답습니다. 온갖 꽃들이 아름답고, 새순과 묵은순이 어우러진 나무의 녹색 향연이 아름답습니다. 제주의 5월은 분주합니다. 아름다운 제주를 즐기러 방문하는 사람과, 맞이하는 사람으로 분주합니다. 관광객들이 싱그러운 표정으로 제주의 5월을 향해 첫발을 떼는 곳, 제주공항입니다.하지만 관광객들에겐 낯선 제주민중의 역사가 제주공항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재수의 난으로 대표되는 제주민중 저항의 역사가 새겨진 ‘진터왓’, 일만팔천 신을 영접하던 ‘오리정’, 일제의 정드르비행장 건설 이후 세 번의 철거로 지도에서 사라진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