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해방전선] 흔들리는 당근 속에서 장범준을 보게 된 거야에서 이어집니다.)“사북이다!”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던 그의 목소리와 표정은 급격하게 불행해졌다. 믿거나 말거나 장범준이 썼다던 드럼이 주인공인 그 드라마에는 어떤 반전도 없었다. 제주의 옛날 사람이 포착한 드럼을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할 리 없었다. 사북 인근에서 남편보다 한 발 빠른 구매자가 나타난 것. 그럼 그렇지. 다시 말하지만, 나에게는 그 드럼을 허락할 의사가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제풀에 지치기를 바랐다.하지만 그는 자꾸
올해 개관 10주년 맞는 왈종 미술관 조선백자를 닮은 왈종 미술관은 자연의 빛과 바람이 그대로 전달된다.30여 년간 화가에게 행복을 주었던 서귀포에 작은 선물이 될 수 있는 공간으로 자신이 살던 집을 헐고 그곳에 300평 규모의 3층 건물로대형 백자 찻잔처럼 생긴 모습으로 왈종 미술관을 지난 2013년 5월에 문을 열었다.1층에는 수장고와 도예실,2층에는 작가의 회화, 도예 및 판화작품 등을 모아놓은 전시실, 3층은 작가의 작업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계단을 따라 옥상 전시실(2016년 완공)에 오르면등지고 있는 한라산과 제주의 남
족낭은 종낭이라고도 하는 때죽나무를 가리키는 제주말이다. 때죽나무과의 낙엽 교목이며 줄기는 갈색이다. 우리나라에는 중부지방 남쪽으로 산야나 계곡 주변에서 자생한다. 수피는 매끄러우며 곧게 자라는 성질이 있다.5월 중순부터 6월 상순까지 해발 고도가 낮은 산야에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차츰 높은산까지 작은 종모양의 꽃들을 잎 겨드랑이마다 흐드러지게 피운다. 귀여운 꽃방울들이 나무밑을 향하여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을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아리따운 소녀들이 은방울 귀고리를 달고 있는 듯하여 매우 귀엽다.때죽나무라는 이름은 작은 열매 속에
‘도시는 누가 만드는가’하는 질문은 ‘어떤 관점에서 도시를 만드는가’하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소수의 정책 입안자 및 집행자의 능력과 관점도 중요하지만, 성별, 연령, 지역, 계층 등 다양한 사람들의 정책 참여와 요구 반영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정책행위자들이 시민들의 다양한 위치와 요구를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인 작업으로, 이는 무엇보다 정책에서 편견과 선입견을 제거할 수 있게 한다. 한 예로 도시 제설작업을 들어보자.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 제설작업의 우선순위는 어디인가? 보통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주요도로에
지난달 4월 26일, 대전정부종합청사 문화재청 앞. 월정리 해녀들은 서러움의 울분을 토했다.세계유네스코 등재 제주 용천동굴이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증설사업 전 제대로 조사조차 되지 않고 밀어붙이기식 공사강행으로 위협에 빠져 있다. 그 현장을 밤낮으로 지키는 해녀들. 기자회견 사회를 보고 있던 나와 현장에서 연대하고 있던 사람들도 함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문화재청 관계자들은 그들이 어떤 불찰을 저질렀는지 민원을 제기하겠다는 해녀들을 문전박대했다. 결국 긴 실랑이 끝에 겨우 공식적인 민원을 넣을 수 있었다. 세계자연유산을 지키고 있
남편이 새벽부터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떠보니 5시쯤 되었나. “사고 싶은 드럼이 당근에 나왔어!” 이 남자가 밤을 샌 건가? 그러고도 남을 자이긴 하다. 직장인 오케스트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J부부를 만났는데, 그들 덕분에 엉뚱하게 그의 ‘음악인 로망 버튼’이 눌려버렸다. 게다가 그 부부 동반 모임에는, 데뷔 30년 차인 우리나라 최고 밴드의 베이시스트까지 있었다. 다 음악을 하는데, 우리 부부만 아니었던 것이다.그의 단순한 사고 회로가 작동했다. 그는 우리 부부만(혹은 나는 빼더라도 자기만이라도) 뭐든 연주하면 일 년에 한
느려서 행복한 섬 '청산도' 모든 풍경이 작품이 되는 느림은 채움, 곧 쉼이다.푸른 섬 청산도의 관문 '청산도항' 맑고 푸른 다도해와 조화를 이루는 절경이 엽서 속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섬길은 청산도의 관문인 청산도항에서 시작된다.여기저기 ‘슬로길’을 알리는 안내판, 슬로길은 말 그대로 천천히 걷는 길로 시간에 쫓겨 바삐 걷다 보면 슬로길의 참 의미를 놓쳐버린다.빨간색과 하얀색 등대를 지나 청산도항에 발을 디디면 처음으로 만나는 청산도에서 가장 붐비는 도청리 그 중심지인 도청 2리 파시거리는 활발했던 최대의 상업거리이자 청산도
1270년 6월. 삼별초가 난을 일으켰다. 멀고 먼 강화도에서 벌어진 일은 탐라국을 뒤흔들었다.무신정권이 마침내 무너지고 개경으로 고려정부가 환도를 결정하자 삼별초는 말하자면 초개와 같이 버려졌다. 초개란 제사에서 신의 모형으로 만들어 받들어지지만 제의가 끝나면 버려져서 아무나 짓밟는 존재란 뜻이다. 고려 유일의 엘리트 군사집단으로서의 자부심이 땅바닥에 떨어졌으니 고려정부가 원하는 대로 고분고분 해체할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대몽항쟁의 유일한 정예군으로서 탄력을 받아 나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결과는 역사가 알려주는 것과 같다.
이제 며칠 후면 나이롱 책방 탄생 2주년이다. 정확히 나이롱 책방 중앙성당점 개점 2주년이다. 처음 문을 열었던 삼양점은 임대 재계약이 불발됐다. 이런 이유로 2022년 5월 15일 지금의 자리에서 책방 문을 다시 열었다. 이 장소는 우연 같은 필연의 힘에 이끌려 정착하게 됐다. 처음 책방 자리를 알아볼 때처럼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하루는 제주시 서문시장 뒤쪽에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터덜터덜. 발이 이끄는 대로 한참을 걸었다.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골목 하나가 그
“인류가 얇은 얼음 위에 서 있고, 그 얼음은 빠르게 녹고 있다. 기후 시한폭탄이 똑딱이고 있다.”현재 기후위기 현실에 대한 유엔사무총장의 경고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이하 IPCC)가 올해 3월에 열린 58차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한 ‘제6차 평가 종합보고서’를 두고서 한 말이다.이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전 지구 지표 온도는 1850~1900년 대비 현재(2011~2020년) 1.1℃ 상승하였고, 지구온난화가 심화되어 거의 모든 시나리오에서 가까운 미래(2021~2040년)에 1.5℃에 도달할 것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반달을 닮은 마을 '월정리' 구좌읍 월정리는 행원리, 한동리와 마을이 인접해 있고, 서쪽으로 모래동산, 임야지, 잡종지를 형성하고 있는 지대를 사이에 두고 김녕리와 경계를 이루고, 북쪽은 모래로 이루어진 청정해안을 끼고 있는 해안마을이다.바다에서 바라보면 반달 같다고 해서 '월정리(月汀里)' 물가에 있는 반달모양의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월정리는 농경지가 부족한 탓에 일찍이 바다를 밭과 같이 여겨서 '바당밭'이라 불렀고 어업활동과 함께 돌과 바위를 깨서 밭을 일구며 밭담을 쌓고 농사를 지었던 반농반어의 생활
4월은 잔인한 달. 시인 T.S.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에 나오는 표현이다. 시인은 어찌하여 계절 중 으뜸이라는 봄의 4월을 잔인하다 했을까? 까닭을 찾아보니 제1차 세계대전 후 정신적으로 황폐한 유럽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봄은 축복과 소생의 기쁨을 만끽하는 계절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잔인한 봄의 역설로 인해 아파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4월은 여러가지 이유로 잔인했다. ‘잔인한 4월’의 아픔을 치유해 줄 특효의 약이 필요했다.다행히도 4월의 마지막 토요일 제주시청 인근에 있는 라이브클럽 ‘인
창밖 너머로 오래된 성당이 보인다. 그 창문과 성당 사이에는 파란 하늘과 초록 나뭇잎이 펼쳐져 있다. 늘 푸른 5월 같은 풍경. 보는 것만으로도 코끝에 상쾌함이 밀려들고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 이 책방을 알게 된 요인이다. SNS를 통해서 책방 정보를 얻는 편인데 이 한 장의 사진에 마음이 요동쳤다. 하지만, 바로 이곳을 취재하지는 못했다. 반년 정도 마음에 품고 있던 때, 취재에 나서게 됐다. 때는 바야흐로 동장군이 떠나지 않고 질척이던 3월. 제주중앙로상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약 5분. 오래된 건물들 사이의 좁은 도로를 걷는다
뉴밀레니엄을 맞아 전 세계가 떠들썩하던 1999년이었다. 10여년을 함께 했던 메탈 밴드의 드러머가 갑작스런 탈퇴를 선언했다. 밤을 새워가며 새로운 경향의 메탈 음악들을 연구하고 녹음하던 중이었다. 충격이 컸다. 도저히 납득이 안돼 이유를 물었다.- 음...이제는 재즈가 하고 싶어서.뭐? 재즈? 저녁이 되고 나는 용두암 근처의 음악전문 감상실 '파블로'로 향했다. 새우깡에 맥주 두어 병을 마시고는 사장님을 향해 외쳤다."가장 유명한 재즈 뮤지션 영상 좀 틀어주세요!"멋드러진 백발을 자랑하는 사장님은 빙그레 웃으며 당시로선 희귀한 L
2021년에 나온 그림책이다. 권정생 쓴 시와 김규정의 그림을 담았다. 시 전문을 보자.“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
밤새 어금니가 심하게 흔들리는 꿈을 꾸었다. 물론 꿈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힘들 바에야 차라리 속 시원히 빠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서울에서 고3 담임을 연속으로 내리 맡으면서 스트레스로 생니가 빠지는 걸 불쌍히 여기신 부인님의 결단으로 제주에 내려오게 된 나에겐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꿈’에 버금가는 악몽 중 하나이다.제작년 봄에 한 업체에서 마을회로 연락이 왔었다. 우리마을에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제주시 담당부서에서 리사무소로 한 번 가보라고 권해서 연락했단다. 며칠 후 음료박스를 들고
세상 어떤 음악이든 쉽다, 어렵다를 논할 수 있으랴마는 악기를 연주하고 배우는 이들에게 끝판왕 같은 장르의 존재가 있고 그 끝판왕의 존재는 바로 재즈 아닐까.여기서 예전 영화 한 편을 소환하여 이야기해볼까? 워쇼스키 자매 감독,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매트릭스 1편. 영화의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적과의 대치 상황 속에서 문뜩 세상의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우리 눈에 투영되는 세상은 ‘0’과 ‘1’로 만들어진 세상이라는 것을, 호흡하는 공기와 사물과 인간 군체 모두가 ‘0’과 ‘1’의 집합체라는 것을 말이다.하필 여기서
. 이진씨가 그림책 작가 양성 과정을 수료하며 세상에 펴낸 책이다. 아이에게 섬의 풍경을 전하는 내용인데 그 섬이 어찌나 아름답고 평화로운지 글과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날섰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씨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성격의 그림책인데 이씨의 고향은 남해의 섬 나로도다. 이 섬에서 태어나 11살까지 살았다. 이 진씨는 고향이 좋았지만 부모님 손에 이끌려 뭍으로 이주해야 했다. 나로도가 그에게 이상을 품게 한 곳이었다면, 제주는 이상을 실현하는 곳이다. 그림책을 펴내는 작가가 됐고, 뛰어난 바느질 솜씨로 작품을 만들
제주 제2공항 건설 추진계획이 발표된 지 벌써 8년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계획에 대해 도민사회가 찬반양론으로 분열되고 있다. 최근의 논쟁과 갈등은 도민사회 안으로 더욱 더 깊이 파고들고 있다.찬성과 반대라는 논리 싸움도 모자라, 도민 개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 뼈아프다. 토론은 사라지고 욕설과 야유, 고성을 넘어 인신공격의 비난과 몸싸움까지 펼쳐졌다. 지난 6일 서귀포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도민경청회 플로어 토론에 나선 고창권 제주제2공항건설촉구범도민연대 위원장은 정모 군의 발언을 두고 반대 주민들에게‘
소비자들의 요구에 토마토가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선호품목은 당근·감자·브로콜리·양배추 등이다. 몇 년 전부터 참외와 수박을 판매하다 보니 토마토 문의도 제법 많아 재배를 해볼까 고민 중이던 참에 비닐하우스를 얻게 되었다. 작년에 노지에 옥발토마토를 심어보았는데 비와 습한 날씨가 이어져 맛보기는커녕 씨앗 한 알도 건지지 못하였다. 비닐하우스 시설을 하여 적어도 비가림을 한다면 가능할 텐데 하는 생각을 줄곧 가지고 있었다. 자연재배 농민임을 자부하면서 비닐하우스 농사는 어림없는 일이라고 혼자 뿌듯해하고 있었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