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가 제주4.3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건 발생 76년만이다. 이에 대한 책임규명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간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선 미국에 학살 주범 책임을 묻지 않고는 진상규명은 끝나지 않는다고 도내 시민사회는 입을 모은 바 있다.언론사 한겨례는 최근 미 국무부에 '제주4.3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무엇이냐'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결과, 이에 대한 답변을 받았다고 지난 2일 단독 보도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1948년의 제주사건은 참혹한 비극(terrible tragedy)이었다. 우리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읽는 다양한 관점과 틀이 있다. 그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중심이 필요하다. 제주투데이는 정부가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와 수차례 동행한 4·3시민사회단체 답사 기록을 토대로 4·3의 핵심적인 인물 10명을 함께 읽고자 한다. 다만, 제주4·3이라는 비극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해결 과정을 살필 때 제주도민을 역사 인식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관점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한다.영화 에 김상사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여성을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읽는 다양한 관점과 틀이 있다. 그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중심이 필요하다. 제주투데이는 정부가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와 수차례 동행한 4·3시민사회단체 답사 기록을 토대로 4·3의 핵심적인 인물 10명을 함께 읽고자 한다. 다만, 제주4·3이라는 비극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해결 과정을 살필 때 제주도민을 역사 인식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관점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한다.1948년 9월 23일, 당시 경기도 수색의 한 산기슭(고양시 망월산으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읽는 다양한 관점과 틀이 있다. 그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중심이 필요하다. 제주투데이는 정부가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와 수차례 동행한 4·3시민사회단체 답사 기록을 토대로 4·3의 핵심적인 인물 10명을 함께 읽고자 한다. 다만, 제주4·3이라는 비극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해결 과정을 살필 때 제주도민을 역사 인식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관점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한다.조병옥이 경찰총수가 됐다...친일 경찰은 기세등등했다제주4·3 당시 민간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읽는 다양한 관점과 틀이 있다. 그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중심이 필요하다. 제주투데이는 정부가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와 수차례 동행한 4·3시민사회단체 답사 기록을 토대로 4·3의 핵심적인 인물 10명을 함께 읽고자 한다. 다만, 제주4·3이라는 비극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해결 과정을 살필 때 제주도민을 역사 인식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관점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한다.1948년 8월 23일. 국방경비대 9연대의 순찰대가 이동 중 홍로(서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읽는 다양한 관점과 틀이 있다. 그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중심이 필요하다. 제주투데이는 정부가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와 수차례 동행한 4·3시민사회단체 답사 기록을 토대로 4·3의 핵심적인 인물 10명을 함께 읽고자 한다. 다만, 제주4·3이라는 비극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해결 과정을 살필 때 제주도민을 역사 인식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관점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한다.도민은 왜 분개했는가1947년 3·1절, 친일파 처단과 통일독립 의지를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읽는 다양한 관점과 틀이 있다. 그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중심이 필요하다. 제주투데이는 정부가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와 수차례 동행한 4·3시민사회단체 답사 기록을 토대로 4·3의 핵심적인 인물 10명을 함께 읽고자 한다. 다만, 제주4·3이라는 비극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해결 과정을 살필 때 제주도민을 역사 인식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관점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한다.“제주도민 30만을 희생해도 무방하다.”일본군 출신 박진경 국방경비대 연
4·3 당시 제주도민을 상대로 무차별 체포작전을 펼쳤던 박진경 대령. 이는 지난 2003년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4·3진상조사보고서에서도 여러 페이지에 걸쳐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제주특별자치도가 이에 대해 반론이 존재한다며 사실상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 전망이다. 박진경은 1948년 5월 연대장 취임사에서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밝힐 만큼 적극적으로 4·3 진압을 지휘했다. 그러한 인물의 죽음을 기리는 추도비가 아이러니하게도 제주시가 훤히 내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자
냉전 체제라는 시대적 배경과 뗄 수 없는 역사인 4·3. 해방 직후 제주를 비롯한 남한을 점령했던 미군의 책임을 묻는 일은 4·3의 진상을 밝히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이를 위해 당시 미군정이 작성한 보고서를 연구·분석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하지만 미국 정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진상규명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 정부가 4·3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외교적인 노력을 해야한다는 법률이 발의됐다. 29일 양정숙 국회의원(무소속·비례대표)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
㈔제주4·3범국민위원회(이하 범국민위)와 재경4·3유족청년회가 서울 현충원에서 4·3 역사기행을 마련한다. 역사 기행은 오는 30일 오전 11시 서울 현충원에서 진행되며 김익렬 장군 묘역 참배 행사도 함께 열린다. 행사 순서는 오전 11시 김학규 동작문제연구소장의 해설로 현충원 역사 산책을 시작으로 오후 12시 김익렬 장군 묘역 참배, 오후 1시 현충원 식당에서 식사 등으로 구성됐다. 김학규 소장은 지난 2018년 제주4·3 70주년 4·3 전국화를 계기로 현충원 내 제주4·3길을 조명하는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김익렬 장군(192
4·3의 기억을 가진 장소는 제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육지부로 끌려가 옥살이를 하거나 어떤 이는 타지에서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되기도 했다. 또 4·3 당시 한반도의 자주독립을 위해 저항했던 인물,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지시에 따라 제주 사회를 탄압했던 인물과 관련된 장소도 여럿 있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이하 기념사업위)는 지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2년간 도외 4·3유적지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벌이고 이를 기록한 보고서 ‘바다너머 4·3 기억의 장소’를 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는 기존에 알
“국군이 (유격대하고) 싸워서 승리했다고 해서 승지골이라는 말도 있고 이승진이 총탄 맞아 죽었다고 해서 승진골이라 부르다가 나중에 승지골이 됐다는 말도 있고 그래요.”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봉정리에 있는 승지(勝地)골. 봉정리 마을 주민 윤봉열(77)씨의 설명처럼 이 골짜기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모두 1950년 초 북한에서 내려온 유격 부대와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투입된 국군 간 전투에서 비롯했다. 여량면이 발간한 에선 조선시대 예언서인 중 ‘전쟁이나 기근 등 많은 사람들이 죽는 상황에
4·3의 ‘전국화·국제화’가 다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전국화·국제화’라는 구호에는 제주 4.3 진상규명 운동이 그동안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역이라는 한계를 온전히 넘지 못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는 2000년 제주 4·3특별법 제정 이후 진상규명운동과 명예회복의 법제화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동시에 그것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최근 발족한 ‘4·3 진실과 정의를 위한 국제네트워크’는 제주를 비롯한 일본, 미국, 유럽, 대만의 4·3단체들의 국제적 연대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4·3의
잘못된 탄생애당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물건이었다. 박진경 추도비를 말함이다. 1948년 5월 6일 부임하여 불과 한 달 열흘 뒤인 6월 18일, 부하들의 총에 맞아 숨진 연대장을 추도하는 비석이다.널리 알려진 그의 폭언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는 전임 연대장 김익렬 회고록에 나온다. 박진경의 참모였던 임부택 대위의 법정 증언에서도 이 섬뜩한 취임사는 반복 소개된다.작전 한 달 만에 6000 명을 체포했다는 당시 언론 보도(, 1948년 6월 12일) 역시 그의 진압이 무차별적이었음을 암시한다. 미군정
“재작년에 제주에 가서 작은아버지가 했던 일을 쭉 봤는데…. 이분이 정말 훌륭하시더라고. ‘진짜 군인이다’했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친해서 국회의원을 하라는 제안도 받았는데 ‘군인으로 남겠다’ 했던 분이었어. ‘참군인’이셨지.”지난 18일 오후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송문리 금오산 끝자락에 위치한 붉은 슬레이트 지붕 집. 제주4·3 당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지 않겠다”며 대규모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했던 김익렬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이날 제주4·3 도외 유적지 조사단 동부팀(팀장 오화선)은 김 장군이 송문리에서 태어났다는
앞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뒤편으로는 관악산 기슭 공작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144만㎡(약 44만평)에 이르는 서울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엔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기여한 인물 18만1000여명이 안장돼 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현충원. 아이러니하게도 제주4·3 당시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주도해온 인물과 국가폭력에 의한 무고한 피해를 막으려는 데 앞장선 인물이 함께 묻혀있다. 지난 12일 오전 제주4·3 도외 유적지 조사단이 현충원을 찾았다. 조사단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올해 4·3
미군정에 제주4‧3의 책임을 묻는 작업이 진행중인 가운데 4‧3과 미국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연구서가 출간되었다. 제주4‧3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딴 허호준 한겨레신문 기자가 「4‧3, 미국에 묻다」(도서출판 선인)를 펴냈다. 「4‧3, 미국에 묻다」는 4‧3의 전개과정에 있어 미국의 직‧간접적 개입 수준을 밝히려는 시도를 보여준다.저자는 세계적 냉전이 제주도에까지 영향을 끼쳤고, 이는 미군정과 미군사고문단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이 4‧3의 전개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된 이유로 본다. 저자는 이를 규명하기 위해 사료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지 21년 만에 전부 개정이 이뤄지고, 최근 3년간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이 재심에서 연이어 무죄 또는 공소기각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완전한 해결’을 향해 이제야 단 몇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4·3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선 70여 년 전 제주도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주체에 대해 책임을 묻고 규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시 남한 지역을 통치했던 미군정이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통일을 외치던 시민들을 강경하게 탄압하며 제주를 대학살의
요즘 출퇴근 길이 즐겁습니다. 사무실이 벚꽃길로 유명한 전농로에 있기 때문입니다. 퇴근길은 일부러 벚나무가 많은 길을 따라 빙 둘러서 걸어갑니다. 벚꽃이 만개한 하늘을 보며 걷다 보면 자질구레한 걱정거리는 생각나지도 않습니다.벚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도로의 직선 구조를 양보한 씀씀이도 마음에 듭니다. 운전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표지판을 살펴보면 “70살 넘은 왕벚나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어쩌면 제주4·3 당시에도 이 자리에 이 나무가 자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지금은 벚꽃 명소가 된 전농로에도 제주4·3과 관련한
정권이 바뀌고 대통령이 4.3추념식에 참가해 제주도민에게 사과하고, 위로하면서 제주4.3에 대해 훈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수형인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유족 신고 상설화, 지속적인 유해발굴, 4.3 책임규명 등 아직도 갈길이 멀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제주4.3 72주년을 맞아 5회에 걸쳐 4.3 기획보도를 싣는다. 지난해 6월 20일 미국 유엔 본부. 미국 현지 시간으로 오후 3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