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부러워하는 아시아 음식의 특징을 들자면 발효이다. 음식을 조리하는 주요 양념들이 발효된 장류라서 차려내는 음식들이 발효음식일 수밖에 없다. 그 발효 장류의 한쪽 줄기는 콩 발효라고 할 수 있는데, 콩은 다른 작물과 달리 전분질이 적고 단백질이 주여서 식물성 단백질의 공급원이 되어주고 있다. 위지동이전에 따르면 우리는 고구려시대부터 콩을 발효해서 장을 담아 왔다. 제주도도 애월읍 고내리 유적과 종달리 유적에서 출토된 탄화콩과 항아리로 유추해보면 탐라국시대부터 장을 담갔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는 청국장이 없고 된장이 주다. 아
제주는 돌 위에 흙이 쌓인 섬인데, 흙이 얇기도 해, 바람불면 곡식이 쉽게 넘어지고, 비가 오면 휩쓸리기 일쑤, 해가 너무 오래나면 돌밭에서 곡식이 말라붙기 십상이다. 섬에 밭쌀을 키울 수 있는 땅도 귀하지만, 우리집은 그 마저도 없으니 장만해둔 쌀은커녕 보리도 메밀도 바닥이 났다. 한움큼 남은 좁쌀이 떨어지기 전에 환상 곡식을 얻으러 창(倉:관덕정 서편 옛 시청자리)에 간다. 창뒷골(현재 주차장 주변에 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에 다다르니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줄을 섰다. 목사와 현감은 한양에서 내려와 녹봉을 받지만 그 아래 향리들
‘1817년 10월 21일. 관청 창고지기(官廳庫子)를 곤장 9대, 색리(色吏)를 곤장 3대로 다스렸다. 순무씨 기름을 참기름 대신으로 쓴 것이 발각된 죄이다!.’주로 대민행정을 곤장으로 다스린 대정현감 김인택의 관아일기에 등장하는 음식 관련 죄목의 처벌 내용 중 한 가지이다. 다른 날 기록에 남의 말을 훔쳐 팔아버린 죄인에게 내려진 죗값이 곤장 10대인데, 이 참기름 사건을 비롯해 음식 관련 사건에 내려진 곤장의 수가 다른 범죄에 비해 특히 셌던 이유가 뭘까 궁금해졌다. 중국은 땅콩을 비롯한 여러 열매의 기름을 썼지만, 조선의 조
몇 년째 맨해튼의 이민자들의 음식에 대한 인식의 흐름에 대해 인류학 논문을 쓰고 있다는 그녀가 뉴욕에서 사는 동안 도대체 무엇을 보고 다녀야 할지 묻는 나에게 일단 맨해튼 곳곳에 있는 100년이 넘은 가게들을 가보아야 한다며 데리고 간 곳은 게이 문화로 유명한 그리니치빌리지의 크리스토퍼 스트리트에 있는 찻가게였다. , 오래된 초록색 칠 입구의 가게였다. 126년동안 맨해튼 사람들에게 세계 곳곳에서 온 고급 차들과 커피를 공급해 온 자부심의 이 가게는 직원이었던 웡형제가 1980년에 주인에게
과거에 급제하던 해 1775년에 내 나이 25살이었다. 아잇적부터 이상하게도 가본 적도 없는 제주 꿈을 자주 꾸었다. 꿈에 본 제주는 귤나무꽃 향이 가득하고 하늘과 구름 해와 달이 한 빛깔, 날씨는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한번은 내가 방백이 되어 도착하는데, 그곳 사람들이 몰려들어 몸을 솟구치며 구경을 하고 ‘구(舊) 목사는 이제 검은 관이 되었구나!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정조 시해 사건에 연루된 이들의 집안의 몸종이 나의 아내에게 드나들었다는 억울한 누명을 씌워 제주로 유배를 떠난 것은 27세의 일이다. 놀랍게도 배를 타고 도착한
‘짓는다’는 말은 ‘만들다’의 지극한 의미일 것이다. 만드는 행위의 에스키스(esquisse·밑그림, 스케치;편집자) 너머 더 깊은 무엇을 포함한다는 뜻이지 않을까? 밥을 짓고, 집을 짓고, 시를 짓고, 노래를 짓고, 약을 짓고, 옷을 짓는다고 한다. 나는 거의 한국인만 사는 내 나라 안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신이 한국사람이라는 자각을 할 필요가 없었고, 당연히 내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별달리 궁리해 본 적이 없음을 맨해튼에 있는 자연요리학교에서 수업받던 어느 날 깊이 깨달았다. 설마 누군가 너희 나라의 주식이 무엇인
바닷물 1리터에서 35g만 나온다는 소금. 소금을 가리키는 글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소금 결정 형태의 글자 ‘鹵(로)’와 ‘鹽(염)’을 말한다. ‘鹵’가 자연 소금이라면 ‘鹽’은 인간이 만든 소금이다. 후자는 기원전 27년쯤 재상 숙사가 바닷물을 항아리에 넣어 끓였다는 내용이 글자의 기원이라 한다. 정조지에 기록된 우리의 소금은 지역마다 만드는 방법이 달라서 맛과 색이 다양했다는 자염(煮鹽), 곧 끓여 만든 소금이다. 1950년대까지도 간혹 포구에서 소금을 끓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세계의 역사 중에 소금과 관
흔히 알로에처럼 물렁한 맛을 상상하시겠지만 다릅니다. 살짝 단맛과 짠맛, 새콤하고 아삭하며 특유의 싱그러운 향도 있습니다. 뜨거운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찬 성질이 있어서 저민 마늘과 향기 나는 허브에 재어 두었다가 불에 구워 치즈와 곁들여 먹으면 잘 어울립니다.풍석선생님. 월령리에 다녀왔습니다. 선인장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을 하는 분을 만나게 되길 바라면서요.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돌담길을 걷다가 그 위에 덤덤히 뿌리 내린 선인장들을 보고 “왜 문익점같이 일 좋아하는 이가 다시 없는 것인가!” 한탄하신 말씀을 떠올립니다
극도로 단순한 맛의 음식은 사람의 주의를 끌어 음미를 하게 한다. 음미할 수 없다면 이미 미각이 둔화되었거나 혀를 너무 혹사시키진 않았는지 돌아보시길! 우리는 현재에 산다. 그렇지만 현재는 과거에서 발원되어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며, 결국 미래를 향했고 시간이 멈추어진 적이 없다. 끝없는 현재이다, 잊혀가는 일만 가능한. 그 흐름 속에서 음식도 그렇다. 2018년 가을 뉴욕에 있는 자연주의 요리학교에 공부하러 간 적이 있다. 음식과 맛이라는 건 뚜껑이 열린 끓는 냄비 속으로 들어간 민족, 침략, 이민, 전쟁, 계급, 기아, 세금,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