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 음악을 소비만 하는 곳이 아니라 특유의 토속정서로 건강한 음악을 생산하는 곳이 돼야 한다"

지금이야 꽤 보편화된 현상이지만 노래운동이 문화운동의 일환으로서 제주지역에 뿌리내림작업을 편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80년대 초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몇몇 젊은이들이 노래마당을 펼쳐 보였지만 노래운동차원의 활동을 전개하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다.

일정한 틀도 없이 고립분산 혹은 이합집산으로 평가되던 이 같은 개별 움직임들은 86·87년 ‘건강한 노래문화 정착’을 기치로 내건 ‘숨비소리’와 ‘우리노래 연구회’의 결성을 통해 비로소 구체화된 양상을 띠게 된다.

지금의 386세대 대부분이 그랬듯이 80년대라는 시대적 열병을 앓았고, 결국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라는 판단이 노래운동의 발단이 됐다. 

86년 3월 결성된 ‘숨비소리’는 제주지역 노래운동의 선발주자다. 숨비소리는 결성 취지에서 “남을 유혹하거나 뽐내듯이 부르는 음악을 버리고 함께 나눌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런 노래야말로 진짜 노래다”라고 밝혔듯이 ‘동네북 이야기’, ‘서울의 예수’, ‘바다꽃 이야기’ 등의 노래마당을 통해 자연과 보통사람들의 일상정서를 바탕으로 실천적 의미를 부여해왔다.

‘숨비소리’는 특히 91년 3월 제주문화예술운동연합 건설 준비위가 결성되자 ‘거듭남’의 의미를 부여하고 노래분과로 참여함으로써, 다른 부문과의 상설적인 연대의 틀을 모색하게 된다.

‘숨비소리’는 그해 6월 제주문화운동협의회 건설 준비위 소속의 풍물·춤분과인 ‘새날’과의 연합공연, ‘함성’을 선보인 데 이어 9월에는 도내 14개 문예단체가 대거 참여한 가운데 펼쳐졌던 집체극 ‘새날을 향하여’에 참여했다.

‘숨비소리’는 또 종래의 틀에서 탈피, 지역사회 현안문제에 보다 면밀히 접근함으로써 이들의 노래가 사회적 발언이나 힘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해줬다.

당시 ‘숨비소리’ 멤버들은 “이른 바 순수한 노래는 있을 수 없다”고 전제하고 “우리들의 노래가 사회변혁의 무기 내지 도구로 활용된다면 더 없는 보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숨비소리’는 ‘개발바람에 시달리는 제주의 모습’ ‘특별법 저항의지’ ‘노동자들의 건강함 삶’ 등을 노래로 엮어냈다. 때로는 이들의 노래가 거칠게 느껴지지만, 일터나 모임현장에서는 공동체적 연대감을 창출해냈다.

‘우리노래연구회’는 87년 8월 우리노래의 이론적 검증과 보급을 통해 기존 대중가요의 상업적·퇴폐적 성향을 극복하고 건강한 노래문화의 정립을 위해 결성된 모임이다.

이들은 대중가요의 상투적 사랑 타령이 저속했고 그래서 이들은 천박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노래들이면 주체적인 시각에서 자신들의 것으로 수용하는 한편, 민족적 정서와 민중적 삶에 기초한 노래 보급에도 힘써 다섯 차례에 걸쳐 카세트 음반을 제작해 내기도 했다.

‘우리노래연구회’는 출범당시 가요분과·민요분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역량결집 차원에서 91년 12월 기존 가요분과를 ‘섬 하나, 산 하나’로의 틀 바꿈 작업을 시도하는 한편 노래운동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모색한다.

이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실천적 의미로서의 문화는 이 땅의 치열한 삶을 ‘내용’으로 하고, 삶을 억압하는 그 모든 것들과 싸워나가는 몸부림을 그 ‘형식’으로 삼는다”며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당시 도내 대학 노래패들의 활동도 꽤 활발하게 전개됐다. 제주대의 경우 동아리연합회 소속의 노래패 ‘소리얼’을 비롯해 ‘불뫼’(인문대), ‘터울림’(경상대), ‘한소리’(법정대), ‘참소리’(사범대), ‘토래’(공과대), ‘소리바당’(해양대), ‘소리로 크는 나무’(야간 강좌부) 등이 구성돼 노래운동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대학 노래운동이 이처럼 활발히 전개된 이면에는 기존의 ‘숨비소리’‘우리노래연구회’의 영향도 컸지만, 88년부터 전대협이 마련한 전국대학생 통일노래한마당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통일노래한마당은 88년 8·15남북학생회담 계획을 위한 연세대집회에서 제기됐던 ‘대학문화의 창조상과 현실상의 반영’이라는 취지에서 매년 마련됐다. 제주지역에선 90년을 제외하고 제주대의 ‘소리얼’(88년), ‘불뫼’(89년), ‘단대 문화패협의회 노래분과’(91년)가 참가해 열띤 호응을 얻어냈다.

또 이같은 노래운동은 현재 제주민예총 음악위원회 소속의 노래빛 ‘사월', 노래패 ‘섬하나 산하나', 민요패 ‘소리왓’을 통해 보다 구체화된 양상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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