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가 시끄럽다.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양국이 선포한 ‘한일우정의 해’지만 봄이 왔지만 봄이 아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배상요구 발언(삼일절)으로 두 나라 관계가 차갑기 만하다.

겨울연가 바람을 탄 ‘용사마’ 열풍이 한류 붐을 일으켰지만 꺾일 기세다.
 
국회 일각에서는 ‘단교(斷交) 불사론’ 까지 나올 정도이니 쉽게 가라앉을 분위기가 아니다.

이런 때에 새 책 한권이 나와 눈길을 끈다. 한일 베테랑 언론인 대담집 ‘한국과 일본국’이 그것이다.

동아일보 사장과 통일부총리를 지낸 권오기 울산대 석좌교수와 아사히 신문의 논설주간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의 대담을 정리한 책인데 양국의 반성을 토대로 미래를 모색하자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지난해 11월 일본 아사히 신문사에서 나왔는데 최근에 우리말로 번역 출간됐다. 이책은 대체로 흐리고 가끔은 맑은 한·일 관계를 양국의 국가관과 민족기질, 문화적 차이가 어떤 것인지부터 거슬러 분석해 풀어보자는 의도로 기획됐다.

양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자인 두 대담자는 두 나라의 차이를 말하되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차이가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파악하려 들고 있다.

권 교수는 “한국은 자기 개혁을 통해 근대화를 쟁취한 것이 아닌데도 오래전부터 이를 해본 듯 착각하면서 상대를 깔보는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일본은 근대화의 물결을 만났을 때 자각적 자기 개혁을 했다”며 차(差)를 인정한다.

권 교수 못지않게 와카미야 주간의 담론은 더욱 솔직하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정당화 주장 등을 겨냥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이 미국의 한 주(州)로 편입됐다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린다하더라도 영어로 미국사를 배우고 이름도 미국식으로 바뀌었을 것이다”고 전제하고 그래도 “미국은 좋은 일도 해줬다”며 미국에 감사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역사인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와카미야 주간은 “한국에서는 매국노가 나라를 망쳤으니 일본에서는 애국자가 나라를 망쳤다”고 단언한다.

왜곡된 애국심이 빚은 폐해가 20세기에서 21세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의 교과서를 관장하는 문부성내에는 문부족(族)이 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

망언(妄言)을 한후 사과를 하고 심하면 교체되기도 하지만 뒤이어 망언과 사과를 되풀이 할 이들이 줄을 이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문부성 뿐만 아니라 다른 정부부처에서도 망언 또는 독도의 영유권 등을 주장 할 수 있는 애국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최근 일련의 일본 내부의 움직임도 이 같은 애국자들의 왜곡된 애국심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와카미야 주간의 주장처럼 이 같은 애국자는 관료조직이나 정치인들 가운데는 많은 것 같지만 대다수 일본 국민들은 또 그렇지 않다.

국민전체의 애국심은 우리 쪽이 훨씬 높다. 일본에 대해 심한공격을 하면 인기가 높은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일부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이를 교묘히 이용, 국민 감정을 자극하는 것도 우리 국민들의 애국심의 도(度)가 높기에 그런 것이다. 필자가 겪은 경험으로도 일반 국민이나 학생들의 애국심, 역사 교육은 우리 쪽이 훨씬 강하고, 잘 되어 있다.

4년 전 일본의 여고생 두 명이 딸 아이와 함께 한·일 학생 교환 프로그램으로 2박3일간 집에서 같이 생활한 적이 있다. 이때 딸 친구들이 일본 학생들의 일상이 궁금해 전화를 걸어 몇 가지를 물어봤다. 일본 학생들에게 던진 처음 질문이 “독도는 어느 나라 땅이냐”는 것이었다.

필자도 사뭇 궁금해 일본 학생들의 답변에 귀를 세웠다. 그런데 이들의 답변은 필자의 예상을 벗어났다. “우리는 그런 섬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당신들의 역사적으로 그렇다면 독도는 한국 땅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되묻는 것이었다.

우리의 역사 교육이 일본에 결코 뒤짐이 없음을 확인한 좋은 기회였으며 그러기에 일본이 역사교과서 왜곡에 혈안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

와카미야의 지적처럼 일본에는 왜곡된 애국심을 가진 애국자가 많다. 그러나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서 진정으로 사죄하는 마음을 가진 진정한 애국자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도 혹 이같은 왜곡된 애국심을 가진 애국자가 사려 깊지 않은 행동으로 한·일관계 만이 아니라 국익에 해(害)를 끼치고 있지는 않은지도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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