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지난달 29일부터 홈페이지에 미 국무부 외교 전문을 공개하기 시작한 뒤 미국 정부 뿐 만 아니라 전문에 민감한 내용이 언급된 국가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자국 외교관들을 이용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포함한 유엔 직원들과 각국 지도자들의 신상정보를 취합해 왔다는 내용의 문서 유출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윌리엄 크로스비 주 아프가니스탄 캐나다 대사는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사임했으며, 필립 머피 주독 미국 대사는 미-독 간의 갈등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사퇴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정부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외교통상부 차관일때 우다웨이 중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를 '무능하고 오만한 관리'라고 평가한 사실 등 민감한 내용이 공개되자 청와대를 비롯한 각 부처들은 사태 수습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가 보유한 전체 25만여 건의 문서 중 극히 일부만 공개됐다는 것이 각국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11월 29일부터 매일 수십건에서 수백건의 문서를 공개 중이다.

이에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 각국 정부는 성명을 통해 "비밀문서 공개는 불법이며 많은 생명을 위험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라며 위키리크스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곤경에 빠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 2일 강연을 통해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거기에는 일정한 규칙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방부는 위키리크스 대표인 줄리언 어샌지에 대해 간첩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미 의회는 민감한 사항의 외부 유출을 막는 법안을 입법화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닷컴은 2일 위키리크스에 대한 서버 제공을 중지했으며 에브리DNS닷넷은 도메인을 삭제했다. 위키리크스는 이후 수차례 새 도메인을 개설하며 버티고 있지만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 등으로 접속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같은 외부의 압력에도 위키리크스 측은 언론 자유와 알 권리를 강조하며 문서 공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어센지는 4일 가디언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는 세계를 보다 올바르게 만든다. 역사는 승리할 것이고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도 "외교 전문들은 여러 보관소에 나뉘어 있으며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경우 자동적으로 여러 언론들에 전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위키리크스도 "한 시간에 전문을 한 개씩만 공개해도 28.6년이나 걸린다. 당신들이 위키리크스를 강하게 만들 수 있다"며 온라인을 통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정보 은폐 시도에 맞서고 있는 위키리크스에 대한 지지세도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뉴욕 타임즈는 외교 전문을 공개하며 "이 문건들은 다른 어떤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다"며 "막대한 인적, 물적 희생을 요구하는 정부의 결정들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르몽드와 독일 슈피겔 등 유럽 언론들도 문건 공개는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어샌지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정당한 비밀이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미국 정부는 당국에 의한 심각한 인권침해와 여러 범죄들의 증거들까지도 은폐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위키리크스는 3일 유튜브에 게시된 존.F.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1961년 연설 영상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 영상에서 케네디는 "비밀이란 단어는 자유롭고 개방된 나라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정부는 국가 안보에 관한 최소한의 내용을 제외하고 가능한 많은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샌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반체제인사나 무책임한 폭로자가 아니며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완전한 경쟁이 이뤄지는 자유 시장경제를 위해서도 정보의 평등한 공개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이 같은 신념에 따라 위키리크스의 향후 폭로 대상은 정부 권력에서 시장 권력 쪽으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미국의 거대 은행에 관한 수만 건의 자료들을 내년 초 공개할 것"이라는 예고를 이미 해놓은 상황이다.

그는 이 자료들에 대해 "대형 은행의 운영 및 간부진들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은행 내부의 불법과 비윤리적 관행 등은 부패의 생태계로 부를 만하다"고 설명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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