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관혁 씨.
지난 3월,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던 법정스님이 입적하셨다. 스님이 남긴 저서 중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법문집이 있다. 이 책에서 스님은 일기일회를 일생의 한번의 기회, 한번의 만남이라 했다. 일생을 살며 단 한번 만나는 마지막 인연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그 만남에는 좋은 인연도 있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연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싫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인생의 종점에서 화해를 청하면 이를 매정하게 뿌리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유는 마지막의 관대함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마지막이란 단어에 너그럽고 관대해 진다. 이젠 끝이라는 두려움이 마음 깊숙한 곳에 깔려있어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공무원은 친절을 강조하고 주기적으로 서비스 교육을 실시한다. 컴퓨터 옆에 스마일 거울을 놓고 아침마다 미소 지으며 오늘도 민원인에게 밝은 얼굴로 대하리라 다짐도 한다. 하지만 험악한 언행으로 막무가내 고집하는 민원인을 대할 때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사라짐을 느낀다. 아직도 친철 정신을 철저하게 무장화 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일기일회라는 말을 알게 되면서부터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혹시 이 사람과 만나는 지금 이 순간이 이번 생에서 만날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부턴 거친 민원인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잠깐 만나는 지금 인연이 내생, 내 후생까지 이어진다는 종교적 관점에서 미뤄볼 때, 좋은 인상을 많이 남겨 둬야 그 때가 언제 일지는 모르지만 다음 선한 인연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이와 같은 마음가짐은 공무원에게만 국한 할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지금 내 가게에 식사를 하러 온 손님, 물건을 구입하러 온 고객,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행인 등 지금 당신과 마주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 이번 일생에서 단 한번 만나는 마지막 인연이라 생각해보자. 아무리 고압적인 고객이라도 귀하게 느껴질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일기일회’라 적은 포스트잇을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 놓고 도서관을 찾아오는 이용객 한사람 한사람을 보며 생각해 본다. 혹시 이 사람과 만나는 지금 이 순간이 일기일회의 순간은 아닐까하고. 갑자기 그 이용자분이 소중한 인연으로 다가온다. <제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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