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구좌문학회가 발행하는 동인지 <동녘에 이는 바람>이 우편으로 왔다.
 
구좌읍 상도리에 사무실을 두고 2002년 동인 결성 후, 2006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일년마다 발행해서 금년 5호를 냈다.
 
대단한 정열이다. 전원 마을에서 꾸준한 작품 활동과 계속 동인지만 내는 것이 아니고 지역사회에서 전시회도 갖고 있어서 흐뭇했다
 
회원 14명 중 시가 다섯 분이고 수필이 아홉 분이었다.
 
홍 기표 회장의 시 <문어 2>가 눈에 띈다. 몇행을 발췌해 본다.
 
상소문 한번 올리지 못하는 먹통을/간판처럼 달고 다니는 문어/
<중략>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묵향 짙은 선비들은/바른 길 아니면 가지도
않았다 던데/옆으로만 이동하는 문어는/색깔을 변색시키는 교묘한
위장술로/입맛이 당기는 쪽으로만 쩍쩍 달라붙는다/<중략>
세상이 혼탁하고 너절할 때/먹물 한번 뿌리지 못하는 수많은 먹통들/

 
의인화 시킨 문어의 일상을 통하여 사회 부조리를 파헤치고 있다.
 
조 선희의 <상처를 꿰메다>에서는 구두의 애환을 들추고 있다.
 
한 평 남짓 콘테이너 안/휑한 앞니 내보이는 장씨 아저씨/
구두종합병원/<중략>
 
화창한 봄날 어여쁜 여자 품에/지르박을 추었을 저 날렵한 백구두/
초상집에서 모두의 발이 되어 주느라/피로에 절여진 저 낡은 단화도/
<중락>
단단한 희망의 실로/상처를 꿰메고 있는 장씨 아저씨/

 
이와는 내용이 다르지만 박 은희의 <들판의 검은 구두> 역시 일상적인 구두 이야기다.
 
남편의 구두가 현관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검은 얼굴에/밑창은 닳고 닳아/흙먼지 털며 터벅터벅 걸어 다닌
흔적들이/아무렇게나 버려진 들판과도 같아/왈칵, 가슴이 먹먹하다/
 
그늘에서 오직 순종만을 미덕으로 아는 구두의 비애가 구두 주인들과 오버랩된다.
 

구두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시 이어진다.
 
김 원정의 <신발>이다.
 
새로 산 구두를 신으며/어제까지 신었던 신 신발장으로 넣는다./
<중략>
뛰어도 아프다 소리없고 비에 젖어도/볕에 말려 주면 그만이던/
내 발의 보호자들/

 
내용은 다르지만 구두에 대한 연민은 똑 같다.
 
우연인지 아니면 시의 주제로서 작품 발표회가 있었서 구두라는 작품이 겹쳤는지 모르겠다.
 
한편 한편 앍었을 때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지만 세편을 계속 읽었을 때는 매너리즘을 느꼈다.
 
이것은 시만이 아니고 수필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진 해자의 <수의 널기 좋은 날>과 좌 여순의 <시어머니>에서도 죽어서 입을 수의 이야기였다.
 
또 위의 두 분이 쓴 <손길>과 <텃밭을 가꾸며>도 같은 텃밭 이야기를 썼는데 전혀 다른 내용이었지만 이러한 느낌을 주었다.
 
싱싱한 생선 비늘처럼 번뜩일 작품들도 동일 주제로 인해 겹쳐서그 빛이 퇴색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다만 노파심에서 의견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시는 홍 기표, 조 선희, 박 은희, 김 창진, 김 원정, 수필은 진 해자, 좌 여순, 임 백연, 이 혜정, 오 춘미, 김 형주, 김 은숙, 김 여종, 고 여생 동인들이었다.
 
모두의 작품을 필자 나름대로 읽은 감상을 쓰고 싶었지만 지면 관계상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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