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정복자'의 저자 한국외국어대 이상준명예교수 특강이 8일 오현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렸다.<김영학기자>

중학교 시절 단 한달만에 영어에 득도했다 말하는 이가 있다. 이후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교수가 되고서는 5개월만에 탈고한 책 한권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놨다.

'영어 정복자(The Conqueror of English)'란 호전적(?) 이름을 내건 이 책은 '영어의 바이블, 한달 만에 영어 완전정복'을 말한다.

가히 파격적이라 할만큼 기존 학습서의 고정틀도 거부했다. 책은 이 교수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속에 영어 학습법을 절묘하게 담아냈다.

그는 대학강단에서도 반말을 일상으로 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주저없이 쌍욕을 쏟아낸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의 강의는 명성만큼이나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란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외대 이상준 교수. 그가 제주를 찾았다. 8일 오현고등학교에서는 '영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이 교수 특유의 열변이 펼쳐졌다.

세상 사람들이 기인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 그를 만나봤다.

▲  '미운오리 새끼' 태어나다
그는 어쩌면 타고난 괴짜다.

나이 쉰이 넘어 신학대학에 진학, 목회자의 길을 걷는가 하면 대학 연구실에서는 목탁을 치며 유행가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그 역시 기인이란 별칭을 당연히 여기거니와 괴짜중의 괴수라 불리길 즐긴다.

그러나 세상사를 초월한 듯한 모습의 그도 친구들의 따돌림과 멸시로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들던 광주서중 재학시절, 그는 '기부금 입학'의 꼬리표를 단 '미운오리 새끼'였다.

그의 부친은 일제시대 최첨단 업종이던 사진관을 운영했다. 고향인 담양에서 '군민증 사진 특수'를 거치는 등 독점적인 사업을 벌이다 보니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을 수 있었단다.

자식농사에 워낙 열정적이었거니와 대단한 부를 쌓은 부친은 그를 국민학교에 조기입학시키게 된다. 이 교수의 인생역정은 여기서 시작된다.

▲  그는 꼴찌였다
첫 발을 디딘 국민학교에는 자기보다 많게는 4살차이가 나는 (당시 늦은 출생신고 탓으로) 동급생들이 학교를 지키고 있었던 것. 나이 많은 학우들에 치이다 보니 꼴찌 성적으로 간신히 졸업, 50명 선발에 51명이 지원한 담양중학교에 기적(?)처럼 합격한다.

이후 부친의 치맛바람(?)에 휩쓸려 편입시험을 거쳐 당시 1류로 평가받던 광주서중에 입학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이 교수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담양중학교에 합격한 것만해도 대단한데 200대1이 넘는 편입시험을 치러서 광주서중에 간다는게 말이되느냐"는 푸념은 "석자 이름하고 수험번호만 적어오라"는 부친의 말 한마디에 봄눈 녹듯 사라졌다.

이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뒷문으로 들어왔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죠. 아주 죽이려 들더라니까. 실력이 처지다 보니 선생님들도 나를 괴롭히더라고..."라며 사춘기 소년의 애환을 떠올렸다.

당시 그의 별명은 '뼈다구 정리'. 하루는 수학시간에 피타고라스 정리를 설명해보라는 말에 "뭐라구요. 뼈다구 정리하라구요"라고 답한 것이 중학 시절 내내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결국 그는 달랑 보따리 하나 들고 광주를 탈출하기에 이른다. 물론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다시 부친이 나섰다.

"아예 소끌듯이 끌고가서는 하숙집도 아닌 여관에 살면서 등하교길을 지켰다"며 "지금은 아버지를 다시 한번 보는게 꿈이 돼버렸다"고 떠나버린 부정을 그리워했다.

▲  방학동안 '인생 대역전'
이렁저렁 1년반이 다 지나고 마지막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날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발단은 영어 수업시간 받아쓰기 시험.

"내가 뭘 알겠어. 영어의 영자는 커녕 알파벳도 모르니 그저 천정 한번 쳐다보고 고개도 돌려보고 하던 걸 옆자리 친구가 본거야."

이일로 그는 '공부도 못하고 질도 안 좋은 학생'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선생부터 나서서 "이 X만도 못한 놈아 자퇴를 해"라는 등 그를 둘러싸고 무수한 욕짓거리가 쏟아졌다.

"내 강의가 왜 재미있는지 알아요. 욕을 잘해서 그런거예요. 그게 다 이 시절 선생님들한테서 배운거라구요"라며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껄껄 웃는다.

이날의 수모를 겪고서 "반드시 당신보다 영어를 잘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인생 대역전이 시작된 것. 방학을 일주일 남겨놓고 동네에 있는 TG영어학원이란 곳을 찾았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영어 정복에 대한 결의에 금상첨화격으로 좋은 강사를 만난 것이다. 이곳에서 한달이 채 되기도 전 영문법에 도를 통했다.

영문법에 눈을 뜨니 이제 유창한 발음이 아쉬웠다. "청소라도 할 테니 회화반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졸라 미군 통역관 출신의 강사에게서 본토 발음을 전수받았다. 실로 '영어 정복자'의 탄생이었다.

▲  '괴짜'이자 '정복자'
'영문법이 바로 영어'라고 말하는 이 교수는 "단어마다 낱말마다 문법을 가지고 있어 문법을 모르고선 영어를 할 수 없다"며 "10년 공부를 하고도 말한마디 못한다는 주장은 사실은 말하기.듣기 훈련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물체의 낙하법칙을 치자면 만유인력의 법칙 하나 뿐이듯 이 세상의 법칙은 유한하다"고 전제하고 "내가 만든 166개 법칙을 깨우친다면 영문법에 길이 보인다"고도 자신했다.

영어에 미친 듯한 그이기에 제주에서의 영어공용어화에 대해 물었다. 대답은 뜻밖에도 "NO".

"누구나 영어를 잘 한다면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그게 억지로 한다고 될일이냐"며 고개를 저었다.

칠순이 다된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2시간 넘게 열변을 토해낸 그는 근자에 '영어 정복자 그 이후'를 기획중이란다.

인터뷰 말미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게 맞는가 보다라고...

"언젠가 제주 해안가에 궁전같은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그는 세상 사람들의 평마냥 호탕한 '괴짜'이자 '정복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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