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호 제주대 교수

“제주도를 고도의 자치권을 갖는 자치 파라다이스로” 지난 5월 20일 노무현 참여정부(특히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제주특별자치의 밑그림이랄 수 있는 기본구상안을 내놓았다.
 
이 구상은 노무현 참여정부 대내정책의 요체인 분권과 혁신을 구체화하는 향도로서, 지방경쟁력의 총합이 바로 국가경쟁력일 수밖에 없으며 지방의 특화발전 없이는 국민소득 2만불의 시대로 나아갈 수 없다는 기본인식이 깔려있다. 일단 제주도와 같은 특정 지역에 국한해 거의 완벽한 수준에서 분권과 자치, 이에 기반한 특화발전을 시범적으로 실시해보고 성공할 경우 전국으로 확대, 정책오차를 줄이려는 전략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은 세 개의 축 - 지방분권의 선도적 시범지역, 특화발전의 모범지역,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체계 개혁 - 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른바 입법, 조직 및 인사, 재정 등 자치행정 전분야에 걸쳐 파격적인 자치권을 인정하고, 이러한 자치동력을 성장엔진으로 해서 제주도를 특성화된 개발경제도시(국제자유도시)로 발전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자치특별기획은 제주로서는 지역의 백년대계를 향한 주춧돌을 놓는 참으로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출발선상에서 부터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대한 세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 분권과 자치는 지역의 자존을 스스로 관리하기 위한 대표적인 내발적·내생적 사항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기본구상은 중앙정부 주도로(지역의 참여는 거의 배체된 채) 외생적으로 주어지고 있고, 그것도 그 내용조차 지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있어 시작부터 실패가 우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조세구조 조정 등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정부가 지원해야할 일이지만, 지역비전을 새롭게 세우고 이를 추진해나갈 분권구조를 창출하는 것은 지방의 몫일 수밖에 없다. 제주특별자치 추진은 그것이 자치라는 점에서도 중앙정부보다는 궁극적으로 제주사회 스스로가 먼저 나서야 할 사항이다. 

둘째, 최근 제주사회를 뜨겁게 양분하고 있는 행정계층구조 개편논의가 절차와 내용에 있어 거꾸로 되어 있다. 계층과 구역으로 대표되는 행정구조개편은 특별자치 내용물을 담고 갈 그릇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구조 개편은 특별자치의 내용이 확정된 연후에 그것에 맞는 행정구조를 논의하고 선택하는 것이 순서상 맞다. 따라서 지금의 논쟁은 앞뒤가 잘못되어 역량만을 소진하는 측면이 강하다. 내용적 측면에서도 제주도가 주민투표에 부의하려는 ‘혁신안’은 전혀 혁신이지 않은, 오히려 역사의 물결을 뒤로 돌리는 ‘수구안’에 다름 아니다. 시군을 그대로 두면서 시장군수 직선제와 기초의회만을 폐지하는 현행안은 ‘하나의 도’를 만들어내지 못함으로써 효율성을 담보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지방자치 원래의 풀뿌리 민주성도 보장하지 못하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일 수도 있다. 특히 모든 지방권력을 도지사로 집중하는 제왕적 권위주의의 권력구조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분권의 시대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셋째, 제주특별자치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어내려는 제주의 비전이 무규제, 영어공용화, 신산업 창출 등 개방경제적 요소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농업 등 지연산업, 환경보전, 문화정체성, 사회복지 등 정작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지역의 생존적 측면이 도외시 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일의 비전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의 생존을 해결하고 그것이 생존에 연계될 때만이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평생을 촌에 살면서 감귤농사만 지어온 우리 삼촌에게 영어 배워서 외국인관광객 대상으로 사업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역의 주체적 참여가 배제된, 그럼으로써 지역주민의 구체적 삶에 기반하지 않는 정책은 ‘사기극’일 수 있다는 지적을 잘 새길 필요가 있다.


송재호 제주대 교수는 자치분권 전국연대 공동대표, 한국은행(제주본부) 경제자문교수, 지방노동사무소 조정위원, 곶자왈사람들 공동대표, 대통령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제주특위) 위원, 예래동 생태마을 자문위원장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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