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이 모자란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공연예술가들이 부쩍 자주 하는 말이다. 음악의 경우 젊고 기량 있는 음악인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지만 무대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연극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용극장이 없는 각 극단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극장대관이다.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며 한 극장에서 장기공연을 하는 극단은 다른 극단의 부러움을 사게 된다.

제주도문예회관을 보자. 문예회관은 분기별 대관 접수가 불합리한 절차로 때마다 전쟁을 방불케 하면서 공연단체들의 불만이 높게 일고 있다. 지난 7월7일 제주도문예회관.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 제4분기 대관 예약접수지만, 새벽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연말 공연장 대관을 위해 30여개 단체 관계자들이 전날 자정부터 줄을 서는 경이(?)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80년대의 경우에는 공연장 대관에 따른 어려움이 더 극심했다. 재야 문화운동단체들의 경우에는 더 심각했다.

특히 문화운동단체와 행정당국과의 실랑이는 89년 4·3 추모제 개최 이후 감정싸움까지 치달았다.

▲ 공연장 대관난에 숨통을 터준 한라아트홀.
당시 도내 공연시설 여건이 빈약했기 때문에 그럴듯한 공간을 갖춘 문예회관 혹은 제주시민회관 등의 시설에 대한 사용이 빈번했고, 경우에 따라 충분히 예상될 수도 있는 사안이기도 했지만, 매년 연례행사 마냥 반복되다보니 서로 불신의 골만 깊어져 버렸다.

1991년 9월 ‘특별법’반대의 목소리를 담은 집체극 ‘새날을 향하여’ 공연의 경우 문예회관과 ‘제주도개발 특별법제정반대 범도민회'(이하 범도민회)가 맞서 한차례 공방을 벌인 바 있다.

범도민회 측은 특별법을 반도민적 특별악법으로 규정,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특별법 저지를 위한 연합공연 ‘새날을 향하여’란 작품을 무대화, 이를 재조명키로 했던 것이다.

당시 양측 쟁점 사안의 발단은 사용 신청상의 내용문제로 모아졌다.

제주도문화진흥원은 노래패 ‘숨비소리’의 노래공연을 목적으로 문예회관 공연장 사용허가를 내줬음에도 범도민회 측이 같은 시간 동시 사용을 목적으로 회원권을 시중에 검인 없이 발매하고 있음을 들어 대관을 취소 조치했다.

이에 대해 범도민회는 “신청서에 기재된 대로 검인 및 기존 발행 티켓 회수 등의 방안을 강구해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범도민회는 “그러나 잘못된 부분의 시정 또는 수정을 통한 사후 조치를 취했는 데도, 문화진흥원 측이 무조건 대관 취소를 주장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범도민회 측은 또 “외부 입김이 작용, 특별법 제정 반대의 불씨를 조금이라도 꺼보자는 발상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새날을 향하여’는 결국 공연 시일에 쫓겨 제주대 체육관으로 옮겨 치러졌고, 당시 썰렁했던 감정은 아직도 남아있는 상태다. 놀이패 ‘한라산’의 경우 4·3추모제의 일환으로 마련됐던 ‘백조일손'(1990년) ‘헛묘-시신도 어선 헛산이라'(1991년) 등의 작품들도 연이어 대관 취소의 비운(?)을 맛 봤다.

이들 작품은 4·3에 대한 문화적 진상규명차원에서 기획된 것인데 당초 제주시민회관에서 무대화될 계획이었으나 자체 장기 보수공사에 밀려 사강문화센터(백조일손)와 제주적십자회관(헛묘-시신도 어선 헛산이라) 등지로 옮겨 무대화됐다.

놀이패 ‘한라산’은 이에 대해 “비단 4·3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시민회관은 평소에도 도내 일부 재야단체나 대학생들이 대관을 신청할 경우 보수공사나 여러 가지 이유를 들먹이며 휴관하기 일쑤였고, 이로 인해 가뜩이나 문화공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내 문화단체들의 공연활동이 크게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부당성을 지적했다.

이에 앞서 89년 4·3 추모제 행사를 통해 선보인 바 있는 ‘사월굿 한라산’은 뒤늦게 경찰의 제동을 받기도 했다.

문제가 된 마당굿의 내용은 셋째·넷째마당에 나오는 ‘빨치산가(歌)'와 ‘4·3 무장대 선언문’부분으로, 이 같은 내용을 의도적으로 올린 것은 ‘입산공비’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놀이패 ‘한라산’은 이에 반박, 성명서를 빌어 “‘빨치산가’는 당시 제주지역 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불렸던 노래이며, ‘무장대선언문’ 또한 4·3 무렵 일본으로 피신한 김봉현(金奉鉉)·김민주(金民柱)가 쓴 ‘제주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에 기록된 것으로 이 슬로건은 무장투쟁지도부의 상징적인 구호였으며, 여러 책자에 인용된 바 있다”고 밝혔다.

제주문화운동협의회는 당시 당국의 제동은 이후 ‘백조일손', ‘헛묘-시신도 어선 헛산이라' ‘새날을 향하여’ 등의 작품으로 이어졌고, 1992년 12월 고(故) 양용찬씨 추모행사 일환으로 마련된 ‘개발바람 오름너머’의 계획을 취소해가며 공연장을 제주시민회관에서 제주YMCA 소극장으로 옮겨 치른 것도 당국의 입김 때문이었다고 골 깊은 감정을 토로했다.

물론 지금이야 공연장 대관의 폭을 넓힌 상황이다. 그러나 공연장 부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공연활동은 예술을 창조하고 형상화하는 작업이며, 지역주민이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창구이기 때문에 중·소형 전문 공연장은 계속 확충돼야 한다.

연말 정기공연을 앞두고 문예회관 대극장을 어렵게 잡은 공연단체 관계자는 “인터넷으로도 공연장 대관을 하는 요즘에 언제까지 밤새 줄을 서며 예약을 해야 하느냐”며 공연장 확보난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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