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가을
억새꽃 피는
가을에는 천천히 걸어가자
한라산 기슭
중산간
온 들판에
슬픈 눈빛을 하고
하늘에 호소하는 몸짓으로
울고있는
수만 수수천만의
젖은 눈빛들을
눈여겨 보며
우리 되도록 천천히
천천히 생각에 잠겨 걸어가자

……………<후  략>……………

<지은이>  강통원(1935~   ) : 서귀포시 대포동 출생. 제주대학교 영문과 졸업.  1977년 <시문학>으로 등단.  한국 예총 및 한국문협제주도지부장 역임. 제주대   학교 인문대학장·제주도교육위원회 의장 등을 지냄. 시집으로 ‘하늘과 땅’외 여러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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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섬의 가을은 억새의 흔들림에서부터 시작된다. 억새는 섬의 어느 곳에든 지천으로 널려있고 계절을 한발 앞서 긴 꽃대궁을 말아올린다. 억새꽃은 흡사 먼지털이처럼 허공을 흔들어대고 가을이 지날 때쯤 작은 깃털같은 꽃씨를 사방에 날려보낸다. 입으로 약간만 불어대어도 펄펄 날리는 억새풀 꽃씨-.

저 미약하고 하찮은 풀씨가 메마른 땅에 박혀 뿌리를 내리우고 억세게 자라 억새가 된다. 억새는 제주도의 원초적인 상징의 풀이다. 제주도의 통한의 역사와 끈질긴 민초들의 삶의 아픔을 같이해온 풀이다. 모질게 밟히고 불살라 태워내도 일어서는 재생의 힘과 끈질긴 인내는 바로 우리 선조들의 삶의 모습이다.

‘하늘에 호소하는 몸짓으로/울고 있는/수만 수수천만의/젖은 눈빛들’을 이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생각하며 바라볼 일이다.<글=김용길 시인, 그림=강부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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