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과 이완용은 친일파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후세에 그들의 의도가 어떠했든 간에 결국 친일을 함으로써 일본이라는 외세에 이용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들은 민족의 앞날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김옥균은 그의 구상이 실패함으로써, 이완용은 그의 구상이 성공함으로써 민족의 앞날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전혀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사람은 혁명가로서, 다른 한 사람은 매국노로서 자리매김이 되고 있다.
다시말해 김옥균은 전근대적 봉건 왕조국가에 근대적 제도의 이식을 시도했던 개혁적 친일파 였고 이완용은 국가와 민족의 이익보다 개인적 영달을 앞세웠던 수구적 친일파였다.

이들의 역사적 평가가 전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옥균은 개혁적 가치(국가의 근대화)의 추구 수단으로서, 이완용은 수구적 가치(사적 기득권)의 추구 수단으로서 일본을 이용하려 했었다.

하지만 역사적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음을 구한말의 시대상은 우리들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외세가 우월적 위치에 있을 때는 의도야 어떻든 결국은 외세를 이용하는 측면보다는 외세에 이용당하는 측면이 크다는 시대적 페이소스를 우리는 이들에게서 얻는다.

시대를 건너뛰어 21세기 제주에서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느껴지고 있다. 물론 구한말 일본이라는 외세와 21세기 중앙정부라는 외부를 같은 역사적 잣대로 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 차이의 크고 작음을 떠나 시대의 흐름에 있어 어떤 유사성 같은 패턴은 조심스럽게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요즘의 제주에 부는 바람은 단연 국제자유도시와 특별자치도 라는 제도적 틀을 바꾸려는 변화의 화두이다. 이러한 변화에의 지향에는 개혁적 성향의 인물이나 수구적 성향의 인물이나 그리 큰 구분이 없는 것 같다. 물론 그 속 의도야 다르겠지만.
어쨌든 오월동주 식 한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메아리 속에 느껴지는 정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구한말 우리나라의 현실을 바라보며 느끼는 정서와 유사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한 개인적 감정은 현실 변화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신중함이 부족한 가운데 외부의 바람에 휩쓸리는 듯한(외부의 바람을 이용한다고 일부분 생각도 되지만), 민주성을 결여한 제주지역의 흐름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물론 제도적 틀의 개혁도 현실적으로 필요하고 미래의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도민들의 자생력을 담아내는 외피에 불과하다.

핵심은 성숙된 민주의식과 경제적 자립의 확대라는 제주지역의 자생력 확충인 것이다. 고민은 여기에 보다 깊이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목적과 수단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긴 하지만 수단은 결국 수단일 뿐인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