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제주군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옛 가시초등학교. 2001년 폐교돼 삭막한  바람만 휑하니 불던 이곳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아직도 교사(校舍)로 사용됐던 건물은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운동장 한켠에는 쓰러진 나무들이 보이는 등 2년간 폐교로 지냈던  흔적들이 군데군데 남아있지만 학교 건물 한 가운데 쓰여진 ‘유리주의’라는 글은 이곳이 변화의 몸부림을 겪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문화공간 조성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건물안으로 들어가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못을 박고, 톱질을 하는 등 내부공사가 한창이다.

그중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이러한 모든 과정을 지시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50대 중반의 사람이 있다.

이곳을 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키는 일을 맡아하고 있는 사진작가 서재철씨(57·제주사랑 대표). 그는 올해 여름, 지역 주민들로부터 제의를 받아 이곳에 사람 냄새나는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허름한 폐교에 부는 변화 바람=서씨가 이곳에 마련하고자 하는 공간은 사진전시관. 30년을 넘게 사진을 일로 삼아 살아온 그에게 폐교를 이용해 사진전시관을 만들려는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가시리 주민들이 그에게 사진전시관  설치 제의를 해온 것이다.

지난 9월말부터 공사를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는 서씨는 그렇지만 평범한 전시관은 만들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이곳을 사진을 보러오는 전시관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오는 겸용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 노인, 초등학생 등 지역주민 뿐만아니라 관광객 등 누구라도 편히 와서 사진을 보면서 쉬다 갈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래서 그는 전시공간 만큼이나 편안한 휴식공간을 만드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 서씨는 “전시공간이 넓다 보니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휴식공간까지  마련했다"며 “야외에는 야영장과 캠프파이어 장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연과 조화된 열린 문화공간=일반적으로 전시공간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으로 설치되는 것과는 달리 서씨는 이곳 전시관에 유리창을 달고 있다. 사진을 보면서 바깥 풍경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인데 이는 전시관은 닫힌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서씨의 평소 소신 때문이다.

서씨는 이 폐교 건물에 전시관 2개를 준비하고 있다. 제1전시관은 제주의 4계절이라는 테마에 맞는 사진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서씨는 “특정계절에 제주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방문 때의 계절만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건 너무 아쉬운 것 같다. 그래서 제주의 4계절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자신의 전시와 관련된 구상을 말했다.

또한 제2전시관은 제주의 중산간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는 360여개 오름을 테마로 한 오름전시관을 만들 계획이다.

▲서씨와 사진과의 인연=서씨의 사진에 대한 인연은 우연히 찾아왔다. 그는 “1966년께 한라산에 갔다가 안개 사이로 보이는 영산홍이 너무 아름다워 그 모습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때 같이 산에 올라갔던 사람 중에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처음으로 사진을 찍게 됐다”고 사진과의 첫 인연을 설명했다.

그 후 서씨는 사진에 맹목적으로 빠져들었고 1972년에 신문사 사진기자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본업으로 도내 구석구석을 누비게 된다.

바람이 불거나, 눈이 내리거나, 비가 오거나 그의 어깨에는 늘 카메라가 걸려 있었고  한라산은 그의 사진의 보고(寶庫)가 됐다.

서씨는 “30년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보람되고 남은 것이라면 이런 기록들을 해 두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1974년부터 제주 포구를 찍었지만  찍는 동안 다 없어져 버려 제주포구를 모두 담지 못한 것, 무명옷 입은 해녀들을 찍지 못한 것은 아쉽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학교 없어져도 역사는 사진으로 남길 것"=서씨는 가시초등학교 졸업생들을 위한 공간도 구상 중이다. “복도에 1회부터 40회까지 가시초등학교 졸업생들의 사진을 걸어 전시할 계획”이라는 서씨는 학교는 폐교됐지만 이 학교의 역사는 사진으로 남겨놓겠단다.

서씨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지역 주민들의 사진도 찍어 주민들을 위한 사진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서씨는 최근 새벽에 이곳에 와 별을 보며 집에 들어갈 정도로 이곳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몸은 괴롭고 피곤하지만 마음은 즐겁다. 아직 공사를 해온 날보다 앞으로 해야할 날이 더 많지만 서씨의 머릿속엔 이미 완성된 전시관이 들어있는 듯하다. “내년 3월에 문을 열 예정”이라며 “그때는 꼭 초청할테니 방문해 달라”는 서씨를 보며 하는 일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즐겁게 하는지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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