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고 허탈합니다. 한편으로는 분노가 치밉니다"

7일 오후 11시50분께 광주 북부경찰서 1층 형사과. 영화같은 황당사건의 피해자 60여명이 허탈한 모습과 함께 사무실 곳곳에서 피해진술 조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달 초 생활정보지 구인광고, SNS, 어플 게시 글 등을 통해 '영화 보조출연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광고는 일당 13만원이라는 달콤한 조건과 함께였다.

피해자들은 '6일 오전 8시까지 광주시청 주차장으로 모여달라'는 통보를 믿고 약속장소로 향했으며, 해당 장소에는 관광버스 2대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오른 이들은 모두 64명 이었다. 도착지는 강원도 춘천이었으며, 출발전 신분증과 휴대전화를 수거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에게 서류봉투 한 장 씩이 주어졌다.

신분증은 계약상 필요한 부문이며, 휴대전화의 수거는 촬영장에서 사진 찍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 곁들여 졌다.

아울러 배역에 관한 간단한 이야기도 오고 갔다. 버스는 오전 9시가 조금넘은 시각, 춘천을 향해 떠났다.

도로가 한 식당에서 막국수로 저녁식사를 마친 이들은 오후 5시께 춘천의 한 펜션에 도착했다. 한 방에 많게는 10명 가까운 인원이 배정됐다.

스텝이라 불리던 남성들은 '새벽 1시께 촬영이 있을 것'이라며 그동안 휴식을 주문했다.

이 과정에 휴대전화를 반납하지 않았던 한 남성의 전화기 벨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 당신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하려 하는데 이 사실이 맞느냐, 한 남성이 신분증 수십장을 가져왔는데 당사자들과 통화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휴대전화 판매상점의 확인전화였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이 남성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와 함께 또다른 제보를 받은 경찰은 광주 북구 용봉동 한 지역에서 잠복에 나섰고, 피해자들의 신분증을 이용해 휴대전화 150대를 신규 개통하려던 A(26)씨를 발견, 격투 끝에 붙잡았다.

경찰은 울산에서 휴대전화 상점을 운영한 경력이 있는 A씨가 지난 3일부터 생활정보지 등에 '영화 보조출연자' 모집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 찾아 온 지원자들의 신분증을 이용,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이를 현금화 시키려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스마트폰 50대, 일반 휴대전화 7대, 신분증 37장, 현금 21만6000원, 보조출연 동의서 등을 A씨로부터 확보했다.

또 A씨를 상대로 보조출연자를 모집하게 된 경위, 타인의 신분증을 이용해 휴대전화를 개통하려 한 구체적 목적 등을 집중 추궁중이다.

경찰은 스텝이라 불리던 남성들도 A씨에게 철저히 속아 전날의 행적에 동참한 것으로 보고 이들에 대한 정확한 경위도 조사중이다.

전날 오전에 탔던 관광버스를 타고 밤 늦은 시각 경찰서에 오게 된 피해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이었으며 아르바이트를 위한 20대가 주를 이뤘다.

전남 한 지역에서 어플 게시글을 보고 전날 오전 광주를 찾았다는 20대 후반의 한 피해자는 8일 오전 "아르바이트 꺼리로는 괜찮은 돈벌이라 생각해 지원했었다"며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이 사실을 알았다. 황당하면서도 허탈하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또다른 20대 청년은 "출발에서 도착까지 범죄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면서 "자신의 꿈이나 아르바이트를 위해 단역 모집에 지원한 이들을 이용, 범죄를 시도했다는데 분노가 치민다"고 심정을 밝혔다.

특수절도 혐의로 A씨를 긴급체포한 경찰은 추가 조사를 통해 범행 동기 및 공범 여부 등 정확한 경위를 조사한다는 방침이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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