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곡동 사저 부지 고가매입 의혹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정치권으로부터 특검 또는 국정조사 실시 요구가 불거지자 청와대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창살에 가려진 청와대의 모습이 당혹스러움을 대변하는 듯하다.
헌정 사상 초유의 청와대 압수수색이 단행됐지만 실패로 끝났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수사기간 연장을 거부키로 결정하면서 남은 기간 수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12일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을 수사 중인 특검은 이날 오후 청와대 경호처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청와대의 거절로 강제 집행이 무산됐다.

특검 관계자는 "압수수색 절차를 진행하기에 앞서 임의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제출받았다"며 "임의제출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고 영장에 따른 집행 실시를 통지했지만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이 승낙할 수 없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로써 집행절차가 종료됐다"며 "청와대측 거부로 강제집행은 더이상 못한다. 현재 자료로만 수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靑, 특검 압수수색 거절…法 해석 논란 일듯

특검은 이날 오후 청와대 대신 '제3의 장소'인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청와대 측에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기에 앞서 관련자료를 먼저 임의제출 방식으로 넘겨받았다.

이헌상 부장검사(파견), 권영빈 특별수사관(변호사) 등 5명이 청와대 측이 준비한 자료를 검토했지만 수사상 필요한 핵심 서류는 누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특검이 임의제출된 자료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 청와대 측에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강제집행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형사사송법 관련 규정을 근거로 강제집행을 저지하면서 청와대에 대한 직접적인 압수수색은 불발에 그쳤다.

이날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거절하기 위한 명분으로 내세운 건 형사소송법이다.

형사소송법 제106조(압수) 및 제109조(수색)에는 사건과 관계있는 것에 한정해 피고인의 신체, 물건 또는 주거, 그 밖의 장소를 수색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증거물 또는 몰수할 것으로 사료하는 물건을 압수할 수 있다.

다만 국가 기밀을 취급하는 기관에 대한 압수수색은 해당 기관의 승낙이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청와대는 일반 압수수색과는 영장 집행 방식이 다르다.

제110조(군사상 비밀과 압수) 및 제111조(공무상 비밀과 압수) 규정에 따라 군사상 비밀이 필요한 장소나 공무원이 소지·보관하는 물건을 직무상 비밀에 관한 것으로 신고할 경우 소속공무소(또는 당해감독관공서)나 책임자의 승낙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

물론 특검이 이런 규정을 모르고 압수수색을 강제집행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110조 및 111조의 2항에 따라 압수수색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에 특검은 압수목록에 기재된 자료가 국가의 이익을 해칠 만한 민감한 자료라고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와대 경호처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검 내부에서는 수사내내 청와대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방해에 따른 여론의 비난을 의식한 청와대 측이 영장 집행을 거부하기 힘들지 않겠냐는 낙관론도 없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형사소송법 제110조 규정을 일종의 방패막이로 삼아 압수수색을 저지함으로써 향후 관련 법률 조항에 대한 해석을 놓고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압수수색 불발, 수사연장 거부…잇따른 악재 영향은?

당초 특검은 청와대가 갖는 상징적 의미를 염두한 듯 압수수색 방침을 묻는 질문에 "수사상 배제하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언급으로 일관하며 수사 내내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반면 청와대 측은 이시형(34)씨의 차용증 원본 파일 제출과 검찰에 낸 서면답변서를 대필한 청와대 행정관 신원 특정을 거부하는 등 협조하지 않거나 김윤옥(65) 여사 조사 방식 등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청와대가 수사를 방해사거나 개입하는 듯한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자, 특검도 정면으로 반박하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카드 역시 특검과 청와대간 치열한 신경전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청와대가 수사에 협조할 뜻이 없는 것으로 보고 특검이 압수수색이라는 강제수사 방식을 동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공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취재진이 브리핑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내곡동 특검팀은 김윤옥 여사에 대한 조사방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특검 주변에서 수사 초반 거론됐던 청와대 경호처 뿐만 아니라 '대통령 관저'에 대해서도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점도 주목할만 하다. 청와대의 수사 방해에 참다 못한 특검 내부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초강수'로 맞불을 놓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검이 이같은 압수수색 카드를 이용해 적극적인 수사의지를 드러내며 가능한 수사기법을 동원해 청와대를 압박한 만큼 향후 부실·눈치보기 수사나 무용론과 같은 '짐'은 덜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청와대 압수수색은 검찰과 특검 수사에서 단 한 번도 전례가 없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지난 2005년 한국철도공사의 사할린 유전개발 의혹 수사를 담당했던 특검팀도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지만, 실제 영장은 집행하지 않고 임의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받았다.

그럼에도 특검이 수사기한을 이틀 앞두고 꺼낸 압수수색 카드가 효력을 상실하면서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을 받고 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특검이 다소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검은 청와대 압수수색을 통해 사건 관련자들의 혐의를 명확히 입증하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자료들을 확보, 이를 토대로 사법처리 여부와 수위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수사에 필요한 핵심 증거물을 수집하지 못하면서 다른 증거자료나 정황, 진술 등에 의존해 법리검토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제한된 상태에서 사법처리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고심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수사기간 연장마저 거부키로 결정하면서 특검에는 또 하나의 악재가 될 수 있다.

특검은 수사기한 연장 사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사저부지 실소유주 논란, 청와대 경호처의 배임·횡령 의혹, 매매자금의 다스 비자금 연계 의혹, 이 대통령 내외의 개입 의혹 등에 대해 집중적인 수사를 벌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수사 거부권'으로 이제 남은 수사기간은 이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특검이 일부 의혹들에 대해선 명확히 규명하지 못한 채 수사를 접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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