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9일 밤 여의도 당사를 방문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뉴시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제 18대 대통령 당선인으로 확정됨에 따라 그를 승리로 이끈 핵심인사들의 면면에 관심이 쏠린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그의 주변에는 그림자처럼 보좌하던 측근 그룹과 공식 규모로만 20만명의 회원들이 결집돼 있는 국민희망포럼·대한민국 박사모·청산회 등 10여개의 외곽조직 등 숨은 일등공신들이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원로부터 중진 인사들까지 풍부한 인맥을 자랑한다. 살아온 과정 대부분을 청와대와 국회에서 보내면서 정치권은 물론 학계, 경제계까지 두루 인맥을 쌓았다.

이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장본인은 바로 박근혜 자신이다. 그는 '불통'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여기에 박 당선인의 측근 인사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그 만의 '용인술'이 이자리까지 오게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핵심 인물을 꼽으라면 막상 특정인을 딱 집어서 언급할 수 있는 인물이 마땅치 않다. 그는 어린 시절 청와대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를 대신 해오며 정치권의 핵심에 있었지만, 정권 몰락 후에는 배신을 겪으면서 사람의 변심을 가장 경계했다.

때문에 박 당선인은 몇사람만을 중용하는 '한정된 측근'을 두지 않고 포괄적으로 활용하는 인사 스타일을 나타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일등 공신이 누구냐는 질문에 친박(親朴)계 누구도 손쉽게 손을 들지 못하는 이유다.

그래도 경선 캠프를 중심으로 한 원로와 중진 인사 등 측근 그룹이 '박근혜 대세론'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 이견은 없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비롯해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 김용준·김성주 중앙선거대책위원장,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 이정현 공보단장, 권영세 종합상활실장 등 '원외 7인'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박 당선자가 지난 8월 당내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결정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김종인 위원장은 한때 '안철수 전 대선 후보'의 멘토로 알려졌을 만큼 야권에 가까운 인물이었지만, 안 전 후보의 '여러 멘토 중 한명' 발언과 관련 둘 사이가 나빠져 등을 돌린 후 박 후보와 뜻을 맞췄다.

이후 지난해 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당시 정강·정책 개혁 및 경제민주화 도입을 주도하면서 경선 캠프에 합류했다. 김 위원장은 캠프에서 박근혜 후보의 핵심 공약인 '경제 민주화'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4선 의원·장관·교수 등을 지내면서 느낀 체험을 토대로 박 후보의 조언자 역할을 해왔다.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았던 안대희 위원장은 서울고검장 출신으로 2002년 '차떼기 한나라'를 파헤친 장본인이다. 당시 성역없는 수사로 실체를 파헤치며 당시 한나라당을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얻게해 국민들 사이에서 '안짱'으로 불리며 검사로는 최초로 팬클럽이 결성되기도 했다.

안 위원장은 부정부패, 권력비, 공천 등 전반적이고 실질적인 개혁에 초점을 맞춘 이른바 '박근혜 式' 정치쇄신안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김용준·김성주 공동 선대위원장은 최일선에 서서 박 후보 당선에 힘을 보탰다.

헌재소장을 역임한 김용준 위원장은 박 후보가 공을 들인 외부 인사로서,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지만 모든 걸 이겨내고 19살인 1960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법조계에 입문해 헌법재판소 소장까지 지냈던 인물이다.

대표적 여성 CEO로 꼽히는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박 후보가 취약 연령층인 2030세대, 특히 여성 표심을 노리고 영입한 인물이다.

이들은 정치 초년생이었지만 정책 보좌는 물론 고비 때마다 뛰어난 순발력을 발휘해 박 후보의 변함없는 신뢰를 확인했다.

지난 2007년 경선 당시 친박계의 좌장 역할을 하던 김무성 전 원내대표가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으면서 새누리당은 '보수대연합'이라는 새판을 짜게 됐다.

김 선대본부장은 선거를 보름가량 남겨두고 이회창-이인제-동교동계 인사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사실상 보수대연합이라는 '빅 텐트'를 완성했다.

그는 1985년 상도동계(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르던 인물들)에 합류한 이래 줄 곧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 선봉에 섰고, 1992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40대의 나이에 사정비서관과 내무부 차관을 거치며 정치권의 거물로 이름을 올렸다.

박 후보의 '입'으로 불리는 이정현 공보단장도 빼놓을 수 없다. 새누리당의 논객으로 불렸던 이 단장은 각종 의혹과 검증공세에 대해 논리적이고 차분하게 대응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박 후보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의 한 가운데서 차분한 논리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권영세 전 사무총장은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아 전략기획을 비롯해 홍보, 네거티브 대응 등 거의 모든 실무를 지휘했다. 권 실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박 후보의 '복심(腹心)'이다.

이어 기존 친박그룹도 박 후보에게는 공기같은 존재였다. 외부 세력들이 선대위에 합류해 박 후보를 돕고 있지만 이들의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 중 박 후보 비서실장을 지내다 사퇴한 최경환 의원을 비롯해 수행단장을 맡고 있는 윤상현 의원, 비서실장 이학재 의원, 직능본부장 유정복 의원, 조직본부장 홍문종 의원이 24시간 박 후보를 보좌했다.

선대위에서 부위원장을 맡았던 유승민 의원과 '정책 브레인'으로 대선 공약 개발 업무를 해오던 안종범·강석훈 의원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큰 힘이 됐다.

서병수 사무총장은 당 살림을 책임지며 버팀목 역할을 했고 이상일 대변인과 조윤선 대변인도 박 당선인의 입과 발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이다.

강창희 국회의장,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 김용환·최병렬·김용갑·김기춘 상임고문,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이 주축이 된 '7인회' 원로그룹도 드러나진 않았지만 박 당선인을 도왔다. '7인회'는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 등을 계기로 결성됐다.

이밖에 박 후보는 지난 2007년에도 대선 후보 경선을 치렀던 만큼 외곽 조직도 규모가 크고 조직화됐다. 특히 국민희망포럼이 핵심조직으로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럼은 사회봉사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상 박 후보 지원 단체다.

국민희망포럼은 지난 2008년 박 후보의 최측근인 이성헌 전 의원의 주도로 만들어진 포럼으로 공식 등록회원만 2만5000여명에 달한다. 실제로는 전국적으로 40만명에 육박하는 회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전국 16개 시도 지부의 조직까지 구성해 박 후보를 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규모로만 보면 박근혜 팬클럽인 '박사모'를 빼놓을 수 없다. 2004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박사모는 등록 회원수만 8만여명에 달한 데다 시도별로 30개의 본부와 본부 산하에 10여개의 지부가 결성돼 박 후보를 도왔다.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 대표가 주도해 만든 '청산회'도 박 후보의 주요 지원 조직으로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청산회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도우면서 '친박'(親朴)으로 유명해졌고, 그후 박 후보가 직접 산행에 함께 하면서 힘을 실었다.

박 후보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미래연구원과 현경대 전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 밝은사회실천전국연합회도 대표적인 외곽 조직으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일조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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