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갔다 오는 아홉시간의 비행기 속에서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 걸려서 10여일간의 일상이 망가지고 있는데 아직도 진행 중이다.
 
언제나 찾아가는 이쿠노 제일의원 선배 의사는 ”요아소비:よあそび:夜遊び” 탓이라고 약간 걱정하면서 반농담조로 빈정거린다.
 
요아소비는 밤놀이라는 뜻인데 밤마다 술집이나 유흥가를 기웃거리며 놀러 다니는 것을 말한다.
 
그게 천만의 말씀인데 긍정도 부정도 않고 히죽이 웃으면서 주사 맞고 약 갖고 나왔다. 그래야 대화는 재미있게 돌아가니 말이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요리집 경애관:京愛館에 가서 집에 가서  먹을테니 자리물회 날림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서 먹었지만 마찬가지이다.
 
누이동생 친구가 하는 제주향토 요리집인데 갈 적마다 제주산 자리라고 힘주어 말하는데 어쩌면 일본 와카야마산일지도 모르겠다.
 
제주산 자리물회 먹었다고 감기가 안개 걷히 듯 싹 나을리 없지만, 그래도 신토불이 이니까 제주 떠나 40년이지만 넋두리처럼 해보는 말이다.
 
이런 와중에 제주에서 보내 준 향토시집 ”정드리 문학회” 동인지 제4집을 읽고 또 읽었다.

소설을 쓰는 필자지만 소설이면 단편이라도 길어서 좀 힘이 들고 피곤하지만 시는 이럴 때 참 좋은 독서의 대상이다.

정드리 문학 4집 "노을에 놓다"에는 회원이 18명인데 그들의 작품과 "특집2 정드리 창에 비친 좋은 시, 시조"에 20명의 비회원과 "지역 동인순례"의 "다층동인"과 "한라산동인" 회원 6명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었다.
 
정드리문학회 회원 18명보다 8명이 더 많은 비회원 26명의 작품이 게재된 점에 대해서는 정드리 문학회의 정성에는 머리 숙이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원 작품 중에 편집위원을 담당한 강경훈, 강영란, 문순자, 윤행순 시인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강경훈 시인의 "별똥별2"이다.
      
                   별똥별 2
 
 
이승과 저승을 합쳐 온누리라 이를까
지상에 내가 온 날은 어머니 가신 날
단 한 번
못 안겨 보고
놓쳐버린 별똥별
 
어머니 빈 자리를 무엇이라 부를까
인천 앞 바다에서 물질 끝낸 해녀가
상가리
어느 골목에
상륙작전 하던 봄밤
 
그것이 원죄였나, 별 총총 곰보자국
처녀성 간직해도 어머닌 어머니라서
별 총총 나의 어머니
그 너머 뜬
그 별자리

 
인생의 삶 속에서 문득이 아니라 옹이처럼 박혀져 한시도 잊을 수없는 일들을 모두가 제 나름대로 갖고 있다. 별똥별2는 강경훈 시인에게 있어서 순결과 순교로 승화된 사모곡이다.
 
다음은 강영란 시인의 "마당에 나무 한 그루"이다. 

                         마당에 나무 한 그루
 
 
마당에 나무 한 그루에게서
영혼을 위로 받아 본 사람은
그 나무 한 그루 사라지는 일이
태양과 달과 별의 세계가
어떻게 캄캄하게 저물어 버리는지 아는 사람이어서
몸속에 적멸 하나씩 들여놓고 사네
 
태풍에 부러진 가장귀는
따뜻한 밤을 짓는 부지깽이가 되기도 하는
그 부지깽이가 지은 밥을 먹어본 사람은
부러진 것들이 어떻게 불꽃을 다스리는지
 내 안에 불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불 비린내 가득한 정지깐에서
매운 눈물로 배우는기도 하는데
 
어느 날 베어진 나무 한 그루
운다고 찾아오지 않는 옛사랑처럼
애수의 소야곡이 새벽별에 걸린다
참! 이리 지극도 하였는가
세상 모든 초록이 깊어질 때
잃어버린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생 손을 앓으니
그 곁에 놓아둔다
너여서 다 못했던 사랑
 
떠나 온 고향 이야기를 할 때나 옛고향 모습을 얘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나무 이야기이다.

동네 어귀에 감나무 아니면 수양버드나무, 팽나무,  멀구슬나무등인데 이것을 더욱 축소 시키면 뒤뜰이나 마당 구석에 있었던 나무들 이야기이다.
 
그 나무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다는 것은 공생하던 삶의 나이테의 상실을 의미한다. 우리들의 삶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상징이었니까. 
 
문순자 시인의 "골동품 같은"이다.
 
            골동품 같은
 
신구간도 아닌데 이삿짐 꾸린다
작년 이맘때쯤
아들을 따라간 주인
새 봄빛 혼자 남긴 채 돌아오질 않는다
 
어쩔거나,
엘리베이터만 봐도 저승을 느낄 나이
몇 해 전 어머니도 저렇게 놓쳤을까
기어코
놋요강만은
들고 오신 아버지
 
오락가락 치매기, 요양원은 싫은신지
방문조사원 앞에선 외려 더 말짱하다
한 일 년 집을 비워도
골동품 같은
홀아비냄새
 
홀아비 냄새 등 나이 먹은 사람들의 풍기는 체취를 일본에서는  ”카레이슈: かれいしゅう:加齢臭"라고 한다. 나이 드는 것처럼 체취도 더해진다는 의미이다.

연륜과 함께 그 삶의 흔적들이 비빔밥처럼 뒤섞여져서 독특한 성분의 냄새를 발산하지만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본능의 체취이고 본질이다. 골동품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고 온고지신 속의 핵심적 요소이다.  

윤행선 시인의 "왼손잡이"이다. 
                        
                        왼손잡이
 
오랜만에 아들과 저녁상에 앉는다
왼손잡이 젓가락질 내 옛날 첫사랑같다
이제야 그리움 하나 휘파람 흘려본다
 
청주 지나 대전으로 그리고 논산으로
그때도 그 발자국 내 가슴에 찍혔었다
설레는 싸락눈처럼 면회를 가고 있다
 
군사우편 소인 찍힌 그 군바리 이 군바리
오늘은 둘 만의 시간 등 돌리기 참 좋은 밤
어느새 외박의 밤이 저리 훌쩍 자랐다
 
실로 오래만에 들어보는 "군바리" 단어이다.
왜 바로 논산이 아니고 청주 지나 대전으로 그리고 논산일까. 
 
그렇게 넘고 넘어 제대로 물불도 가르지 않던 젊음의 만남은, 왼손잡이 아들과 저녁상을 마주하고 그날 아니 그날 밤을 반추한다.      
 
끝으로 편집위원은 아니지만 열외로 오승철 시인의 "윤동지 영감당"을 소개한다. 
                               
                                     윤동지 영감당
 
-제주로 옮겨지던 안동의 관세음보살상이 풍랑으로 배가 침몰하자,
윤씨 할아버지 낚시에 걸렸다는데   
 
거기, 거기
함덕 조천, 마을 하나 또 건너
돌담 따라 술래처럼 서너 굽이 돌아들면
올레길 꿩마농꽃도
먼저와 비는
거기
 
이 뭐꼬,
돌부처야, 안동부처 체면이 있지
하필 윤동지 영감 옹낚시에 걸려니껴
척 보면 손바닥 안이지, 눌 만나러 왔니껴
 
절 받고 재물 받는 일
그마저 지루해지면
사람팔자 부처팔자 다 터놓는 이 봄날
그 이름 그 허기만은
토해내질 못 하겠네
 
시의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시인은  "-제주로 옮겨지던 안동의 관세음보살상이 풍랑으로... ..."라는 토를 달았다.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필자는 모르지만 풍자를 곁들인 해학적이다.
 
권세 당당한 안동의 관세음보살상이 올레길 구석에서 꿩마농이 비는 부처로 둔갑할 줄이야 누가 알겠는가 말이다.
 
전혀 관계없고 다만 지나가기만 하는 함덕 조천, 마을 이름은 열거하면서 실지로 부처가 놓여 있는 지명은 커녕 마을 이름도 없이 무시 당하고 있다.
 
지루한 봄날 돌부처 자신은 잘 알고 있지만 신세타령 제대로 못하는 "이 뭐꼬"가 있다.
 
그의 시는 "윤동지 영감당" 외 "행기머체" "이윽고" "바람꽃" "낙정불입" 모두 4편이 실렸는데 걸직한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그야말로 풍월을 읊으고 있다.<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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