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김명희<金明姬> 화가로부터 한권의 책이 우편으로 왔다.
호기심 속에서 우편물을 열어보니 일어 번역 "농부로부터"였다.
 
번역자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김명희 화가 본인과 그녀의 지인, 후다바 마유미<二葉 眞弓>씨였다.
 
김명희 화가는 작년에 새로 집을 지어 쿄토에서 후쿠이현<福井県> 타카하마쵸<高浜町>로 이사를 가고 지난 5월과 6월에는 코베와 오사카에서 2인전을 열고 있었다
 
어느 사이에 번역할 시간이 있었는지 또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던 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하필 책 이름이 "농부로부터"라는 단순성인가에 대해 더욱 놀랐다.
 
서로의 안부는 그런대로 이메일이나 전화로 주고 받았었는데, 쿄토에서 타카하마쵸로 이사를 간 이후에는 멀리 이사 간 거리만큼 소원해 지고 있었다. 
 
"농부로부터"의 책을 받기 전까지 필자는 "쌈지" 브랜드와 "흙살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쌈지"라든가 "흙살림"을 번역책에서 찾을려고 해도 일본어 표기에 한계가 있어서 정확한 한국 표기를 몰라서 처음에는 약간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한국어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쌈지"와 "훍살림"에 대한 정보가 흘러 넘치고 있었다.
 
"농사가 예술이다."라는 "쌈지농부" 대표 천호균씨의 명함을 받고 남다른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흙살림" 대표 이태근씨의 발언으로 시작되는 대담집이었다.
 
2011년 10월 궁리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인데 김명희씨는 서울에 갔다가 교보문고에서 막 나온 이 책을 샀다고 번역집 첫머리에 쓰고 있다.
 
김명희씨 역시 이 책에 대한 예비 지식이 있어서 산 것도 아니고  "농부로부터"란 소박한 제목에 끌려서 샀다고 한다. 

필자 역시 책 이름에 대한 하필이면이라는 어눌함은 김명희씨가 처음 느낀  소박성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내용은 하필이면이라든가 어눌함이라든가 소박성 등을 한 순간에 이,삼차원으로 융해 시켜버리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폭발력이라면 너무 과격한 동적 현상으로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고 내용이 충격적이고 신선함을 뜻하고 있다.
 
천호균씨는 "농사는 예술이다"라는 명함을 갖고 있다지만 예술만이 아니고 대담에서는 농사는 철학까지 포함할 수 있는 오묘함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농사 짓는 일이 곧 예술 행위라고 여기면 논밭에 나가는 일이 조금은 덜 고될 듯 한데요. 5년 전 헤이리에 이사 오면서부터 텃밭에 이런저런 작물을 키워보고 있는데 농사만큼 힘든 일 없어요.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은 건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진도가 나가지를 않습니다.
 
날씨에 따라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고, 작물마다 성격도 다르고 조금 알듯 하다가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려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고요. 농사는 정말 아무나 짓는게 아니구나 하면서 낙심했는데, 그 순간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나 혼자가 아니라 햇빛, 물, 바람 등 자연의 모든 주체들이 힘을 모아야 하는 공동작업이라는 걸 잊고 있었던 거죠. 그런 점에서 농사는 예술, 종합 예술이 맞습니다."
 
누구나가 긍정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논리이다.
 
밀레의 "만종"이 그것을 입증한다.
 
어스름이 짙어 가는 밭 가운데서 하루의 농사 일을 무사히 마친 부부가 두 손을 모아 비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런데 아늑함을 주는 이 "만종"만이 뛰어난  예술이 아니다.
 
부부가 하루 종일 일궈내는 밭 농사들이야말로, 바로 그것이 예술이고 종교이다.
 
그들은 그것을 되풀이되는 일상들 속에서 날마다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농사를 짓다 보면 왜 자식 농사라는 말이 나왔는지를 알게 되죠.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나 야속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일수록 무조건 믿어아 합니다.
 
믿어 주는게 아니라 믿는 거예요. 남들보다 더디게 클 수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뻗을 수도 있지만 끝내 튼튼하게 잘 자랄 거라는 믿음이죠.
 
가지치기를 하잖아요. 이때 신기한 것이 가지를 지나치게 쳐낸다 싶으면 나무는 엉뚱하게 다른 곳으로 가지를 냅니다.
 
마치 강압적으로 가르치려고만 드는 부모님들께 반항하면서 아이들이 곁길로 새듯이 말이지요."
 
1984년부터 농민운동을 이르킨 이태근씨의 자신에 넘치는 경험담이다.
 
"농부로부터"에는 이러한 대담이 5부로 나눠져 실려 있다.
 
5월과 6월에 코베와 오사카에서 열린 2인전에는 "농부로부터"의 번역 책도 같이 진열됐는데 책 표지를 장식한 작품과 전시된 실제 작품들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김명희 화가는 서울 출생으로서 1975년 도일. 일본 국내외 개인전. 그룹전. 워크숍 등 수 십회 개최. 2002년 한일공동 월드 컵 개최를 기념하여 '한일 라이프 마스크 2002' 프로젝트를 3년에 걸쳐 달성. 이후 피스 마스크 프로젝트를 라이후 워크로서 진행 중.
 
2인전의 또 한 사람은 메트카. 베르니온 여류 사진가로서 슬로베니아 출신. 스위스 제네바에 거주. 사진가의 아버지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사진 지도를 받음. 세계 각지에서 개인전 및 그룹전 개최.
 
갈이 번역한 후다바 마유미씨는 효고현<兵庫県> 출신. 주부. 센프란시스코대학 다문화교관학부 수사과정 수료. 8년의 재미생활을 거쳐 1995년부터 쿄토 거주. 재봉 취미를 살려 친구들과 함께 헌 천을 사용한 젓가락 주머니를 만들어 '나의 젓가락' 운동을 전개 중.

일어 번역 "농부로부터"는 2013년 5월 20일 소진샤<素人社> 발행. 가격은 일화 2천엔이다.<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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