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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붕어빵을 먹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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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붕어빵을 먹는 이유
  • 좌승훈 기자
  • 승인 2003.11.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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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막바지다. 겨울의 전령 입동(立冬)이 다녀간 늦가을의 풍경은 스산하다. 가로수 잎이 모두 떨어져버린 휑뎅그렁한 거리. 낙엽이 뒤범벅으로 엉켜있는 게 마치 거친 붓 터치의 현란한 유화와도 같다.

어느 순간, 쓸쓸함이 어두움으로 짙게 채색되어져 가는 거리에서 나는 붕어빵 노점상을 봤다. 그리고 낙엽처럼 한잎 두잎 마음 가득 차 오르는 아련한 기억들과 그리운 얼굴들이 영화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1997년 11월. 그 해, 대한민국의 화두는 외환위기에 따른 경제위기였다.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가 속출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라는 멀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사람들은 몸부림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붕어빵에 얽힌 기억 하나. 어느 날 퇴근길에 집 근처에 있는 붕어빵을 파는 노점에 들렀다. 노점 비닐포장 안에 붕어빵을 먹고있는 주인을 봤다. 생계를 위해 겨울밤 추위를 견디며 붕어빵을 파는 마흔 중반의 A씨다.

그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붕어빵을 얼른 입 속에 넣었다. 순간 "아, 저녁 대신 붕어빵을 먹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0원을 주니, 붕어빵 10개에 덤으로 1개를 더 준다.

왜 이 주인은 이 나이에 이 일을 한 것일까?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잘나가던 은행의 중간 간부였다.

추위를 탔는지, 더듬더듬 붕어빵을 봉지에 넣는 모습이 매우 어색했다. 붕어빵이 꼭 그 주인의 눈물 같았다. 붕어빵이 팔리지 않아 그 날 저녁을 붕어빵으로 때우는 그 주인을 생각하면서 새삼 삶의 엄숙성을 생각했다. 우리 사회의 냉엄한 현실이기도 했다.   

출구 없는 빈곤

2003년 11월. 퇴근길에 다시 붕어빵을 산다. IMF 상황이 극복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주변에는 노점이 많다.

회사 근처에서 붕어빵을 파는 B씨는 30대다. 매상이 어떠냐고 물어보자 "겨울이 되면서 공사판에 일거리가 없어요.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 힘든 세상에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요"라고 말한다. "생계수단"이라는 말에 1000원을 더 줘 3000원어치를 샀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뜻밖에도 '빈곤'이다. 가난은 가난을 낳고 부는 부를 부르고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소득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산층이라고 하더라도 실업자가 되면 한순간에 빈곤층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사회의 빈곤상황이 IMF이전과 다른 새로운 양상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통계를 보면 경기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도내 중·고교 학생가운데 수업료를 못낸 학생이 13%나 된다.

제주시내 어느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전교생의 30%가 매월 3만원 안팎인 급식비(1식당 1450원)를 제때 내지 못하고 있고, 6개월 이상 못내는 경우도 상당수다.

도교육청이 매년 5000명 안팎의 빈곤가정 자녀에게 급식비를 지원하고 있는데도 이 같은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놓은 비정규 노동자는 어떠한가. 제조업체에 몸담고 있는 C씨는 시간당 2000원도 되지 않는 서글픈 삶을 살고 있다. "한달 뼈 빠지게 일해봐도 한달 44만원 밖에 안돼, 병들어 누워있는 남편 뒷바라지를 하다보면 생계가 막막하다"고 한다. 그의 희망은 1만원이라도 월급이 올랐으면 한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경제가 빈곤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확산시키고 있다. 빈곤의 덫에 갇힌 사람들. 이들에게 과연 출구는 없는가.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아직 누가 얼마나 빈곤하며 이들을 위해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 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붕어빵 희망가

다시 붕어빵을 생각한다. 붕어빵은 밤이 깊어야 많이 팔린다. 적당히 추워야 매출이 오른다. 그래서 붕어빵 노점상은 추위가 두려우면서도 반가운 게 현실이다.

사가는 사람에게는 간식거리일 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생계수단이다. 그들과 마음을 나누자. 지금 이 사회는 노점상들이 파는 물건이나 먹거리를 마냥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오늘 퇴근길에도 붕어빵을 사야겠다.<편집국장 직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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