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원<嚴基元> 시인님으로부터 두권의 동시집을 받았다.
 
2011년과 2013년에 발간한 "삼월의 기차 여행"과 "팔랑개비"였다.
 
"삼월의 기차 여행" 속의 작품이다.
 
     일학년 동시 짓기
 
"엄마, 일루 와 바."
학교에서 돌아온
일학년 용수
공책을 펴들고 엄마를 불렀다
 
"선생님이 동시 지어 오랬어.
엄마 동시 알어?"
"알지"
"그럼, 가르쳐 줘."
 
-산골짜기 다람쥐
  아기 다람쥐-
"이런 노래 알지?"
"응 알어"
"그런 게 동시야."
일학년 용수는 대번에 썼다.
 
-산골짜기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동시는 웃긴다.
내가 아는 노래다. 
 
산골짜기 다람쥐만이 아니다. "고향의 봄" "은하수" 등 어른과 어린이가 즐겨 부르는 주옥 같은 동요가 무척 많다. 이것은 모두 동시이다.
 
"팔랑개비" 동시집을 내면서 엄기원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詩 앞에 동童자가 붙은 동시는 어린이만 읽는 시가 아닙니다.
어린이부터 어른,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시입니다.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유아들도 읽을 수 있고, 초등학교 어린이, 중고등학생 청소년, 어린아들 딸들을 키우는 젊은 아빠 엄마, 어린 손자 손녀를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동시를 읽으면서 때묻지 않은 어린이 마음을 생각하는 시입니다.
 
동시는 나이와 직업과 빈부 계층을 떠나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두 권의 동시집에 실린 작품 몇 편을 소개한다.
 
다음은 "내 수첩은"이다.
 
내 수첩은
날마다 몇 차례씩
나와 눈맞춤한다
 
그 속에 적혀 있는
온갖 기록은
내 눈이 되고 귀가 되고
손발이 된다
 
수첩은
나의 상관
나는 수첩의 졸병이다
 
몇 날 몇 시
어느 모임에 가라면
나는 시간 맞춰
그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수첩 앞에
꼼짝 못하는 나.
 
필자도 누구 못지 않은 수첩 애용자이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이미지에, 그것도 동심에서 느끼는 감성에 가슴 뜨끔했다.
 
이것은 다음에 소개하는 "신문에게"에서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문에게
 
네 목숨은
하루살이인데
언제 그렇게 많은 걸 배웠니?
 
그 어려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르는 게 없잖아

온 세상 소식 모두 듣고
수많은 사람 이름까지
줄줄 외우다니!
 
더 놀랐어
하루살이가
온 세계
내일 날씨까지 알다니......
 
 
다음은 금년 1월 1일에 발행한 "팔랑개비" 속의 작품이다.
 
       바다는 그 많은 물을
 
바다는 그 많은 물을
한데 모아
상하지 않게 짭짤하게
간을 해 두고
 
그래도 상할까 봐
시원한 바람으로
출렁 출렁 흔들면서
 
그래도 걱정되어
물고기떼 키우고
물풀을 키우면서
잘도 간수하고 있네.
 
바다는
그 많은 물을......
 
바다에 사는 물고기나 해초 등을 예를 들면서 "바다는 살아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바다 그 자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물체로서 상징화 시킨 예는 드물다.
권영상 시인은 작품 해설에서 "자연의 크신 손길"이라고 평했다.
 
 
다음은 "흙"이다.
 
가진 거라곤
한 가지밖에 없다고
겸손해하면서
 
누구에게라도
자리를 내어 주고
터를 그냥 주는
흙!
 
너로 하여금
자연이 생기고
뭍 생물이 살아간단다
 
치장을 모르고
거짓을 모르는
너에게서
우리는 감사를 배운단다.
 
다음은 "멀리서 보면"이다.
 
큰 산도
넓은 들도
멀리서 보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지구보다 더 큰
화성도
금성도
아주 아주 멀리서 보면
반짝이는 작은 별이 되듯이
 
멀리서 보면
멀리서 보면
지난 날 어린 시절
나의 모습도
그림처럼 멸처럼
아름다울 거야
 
우리는 어린 시절을 회상힐 때 미화 시키는 경향이 있다.
고생했던 군대시절 얘기 속에서도 그렇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멀리서, 멀리서 보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지푸라기"이다.
 
'지푸라기'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서도
별 대접 받지 못하는
 
'지푸라기'
시골 농삿집 마당이나 뒤란에
혹은 길거리 개똥밭에
밟히고 날리고
 
그렇게
그렇게
대접 받지 못하는데
 
사람들은
마지막 위급한 지경이면
꼭 찾는 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지."
 
"마지막 잎새"와 "경찰관과 찬송가" 작가인 오.헨리를 연상 시키는 이외성 속에서 정곡을 찌르는 마지막 일연이었다.
 
 
다음은 "책꽂이 책들은"이다.
 
책꽂이 책들은
군대처럼 줄맞춰 서 있다
모두 고만고만
키를 맞추어 서 있다
 
얼마나 힘들까?
단체 기합을 받고 있으니......
 
책상 위에 몇 권
거실 탁자 위에 멏 권
그들은 나처럼
 편안히 누워 쉬고 있는데
 
책꽂이 책들은
너무 오래 서 있어
다리에 쥐가 나겠다.
 
깔끔히 정돈된 서재를 가끔 볼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위화감에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동심의 눈은 날카롭기만 하다.
 
다음은 "몸과 마음"이다.
 
몸은 보이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네
 
몸은 팔다리도 있고
얼굴도 있지만 
 
마음은
아무 것도 없어. 

그런데
보이지 않는 마음이
몸을 움직이네.
 
마음이
몸 속에
꽁꽁 숨어 있나 봐? 
 
필자가 작품마다 일일이 주석을 달지 않아도 한 여름이 소나기처럼 청량감을 안겨 주는 작품들이다.
 
엄기원 시인은 1937년 강릉에서 태어났다.

교직생활 25년을 마쳤고, 한국아동문학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로 문단 진출. 동시집 17권. 동화집 15권. 시집 "가을에 띄우는 편지"와 다수의 수필집을 냈다. 1975년 한정동아문학상을 수상 후, 방정환문학상 등 다수 수상했다. <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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