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께 매달 용돈을 보내고 있습니다."
"역시 부모에게는 딸이 좋습니다."
 
지난 8월 15일 제68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민단 오사카본부에서 마치고 귀가 때 식사하면서 주고 받은 대화이다.
 
필자가 박영심<朴榮心> 의장을 알게 된 것은 몇 년이 지났지만 가정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 사이 여러 장소에서 만나면서 단편적으로 듣고 알았지만 그것은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그 장소에서 끝났었다.
 
3남 3녀의 다섯번째라는 박영심씨는 본적지가 제주시 외도이고 1964년에 태어나서 서귀포에서 학교를 다녔다.
 
"지금 83세인 어머니는 혼자 누추한 곳에 살고 있어서 2층 원룸 맨숀에 모실려고 했더니 한사코 반대를 했었습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는데 시력이 약해서 2층 계단을 제대로 올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딸로서 실격입니다."
 
필자만이 아니고 박영심씨도 단골집인 오사카 이쿠노에 있는  한국식당, 경애관<京愛館>에서 점심겸 저녁을 먹으면서 그녀는 실타래처럼 가족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귀포에 혼자 사시는 어머님은 제주 옛날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변소도 떨어진데 있어서 나이 많은 어머니가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오래 살아서 정들고 익숙한 환경의 집이니까 새로운 곳에 이사하는 것보다는 좋을테니까 걱정 말라고 필자가 위로의 말로 거들었다.
 
그에 못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로서 어머니가 화투놀이를 아주 좋아 해서 동네 분들과 매일 재미있게 지내신다고 했다.
 
혹시 좀 먼곳에 이사라도 가서 화투놀이를 못한다면 80대 노인의 취미를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거야말로 어머니의 일상의 리듬을 바꿔버리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제가 보내는 용돈은 화투 값 용돈일런지 모르겠습니다."라면서 밝게 웃는 박영심씨에 말에 괜히 흐뭇해지고 가슴이 찡했다.
 
필자도 제주 삼양에 백살이신 어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다.
 
두살 위인 필자의 형님이 같이 살자고 해도 어머니는 움직일 수 있는 한 혼자 산다면서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박영심씨와 거의 같은 처지이고 아들인 필자지만 솔직히 그녀처럼 어머니를 그처럼 생각하지 못했다.
 
마음에 켕기면서도 필자는 남의 일처럼, 역시 부모에게는 딸이 좋다는 도피형 발언을 그럴 듯하게 하게 늘어놓았다.
 
1987년 일본인과 결혼을 하고 일본에 온 박영심씨는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국제 가이드" 면허를 2001년에 취득했다.
 
그 후 가이드 일을 하면서 한일 양국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한편 2007년부터는 민단 키타가와치<北河內> 사무부장직을 맡았다.
 
이쿠노처럼 동포 밀집지대가 아니어서 7개 도시를 키타가와치 1개 지부가 담당하니 관할 범위는 엄청나게 크다.
 
여러가지 제반문제로 부인회 구성도 어려워서 신년회, 야유회, 경로회, 송년회 등 각종 행사 때도 사무부장인 박영심씨가 총책임자로서 음식 준비까지 전부해야 했다.
 
정말 어느 큰집 종손의 맏며느리 같은 역할까지 다해야 했다.
 
이렇게 스스로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의 의무감이 그녀의 행동력을 더 넓히게했다. 즉 자신감이었다.
 
"언짢게 생각하지 마세요. 박영심씨 혹시 스낵바를 경영하거나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까?"
 
오사카 특히 이쿠노에서 우리가 가는 한국식당, 노래방, 스낵바는 거의 정해져 있다. 일본 식당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곳에 갈 때마다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어리둥절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속칭 "미즈쇼바이"<みずしょうばい。水商売。물장사>를 한 적이 없었느냐고 전에 부터 듣고 싶은 말이었다. 사교성도 좋고 노래도 잘 부르니 더욱 그랬다.   
 
"제가 무엇 때문에 언짢게 생각합니까. 사실 저 보고 그렇게 묻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서 만나는 사람들끼리 서로 얘기도 나누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친해 지고 그렇습니다. 물론 남녀 관계 그런 것은 전혀 없고 말입니다."
 
말을 마치고 호탕하게 웃다가 다시 덧붙인다.
 
"그런 의미에서 전 인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를 아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망설임도 없이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그녀의 말에는 신뢰와 다정함이 진하게 베어 있다.
 
이러한 친근감이 주위 사람들을 끌게 하는 비결일 것이다. 필자도 그것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활동적인 박영심씨는 2013년 4월 민단 키타가와치지부 정기대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됐다.
 
민단 오사카 지방본부 산하에는 31개 지부가 있는데 여성이 의장직을 맡은 지부는 2개 지부 밖에 없으며, 제주 출신은 박 의장이 처음이고 임기는 3년이다.
 
필자도 이쿠노 남지부 의장직을 맡고 있지만 같은 의장으로서 박 의장의 활약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슬하에는 20대의 아들이 하나 있지만 이혼한 전 남편과 살고 있으며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는 얘기도 스스럼없이 들려주었다. <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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