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도 개인전을 많이 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팔순 나이의 여류화가의 개인전은 처음 보고 있다면서 대단하시다는 필자의 말에 현정자<玄靜子> 화가가 손을 저으면서 겸손히 말했다.
 
개인전은 1월 28일부터 2월 2일까지 일본 "나라현<奈良縣>문화회관"에서 열렸었다.
 
만 83세이신 현정자 화가의 대단함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개인전을 여는데 전시 작품이 120점이었고 4호에서 50호의 작품이 즐비하게 선보이고 있었다.
 
그룹전도 아니고 개인전으로 120점의 작품 수에 필자는 작품 내용도 그렇지만 우선 작품 수와 그 스케일에  압도 당했다.
 
작품 속에는 인물화가 44점으로 가장 많았고 정물화와 고전적 탈과 마스크의 작품과 추상화가 주류였다.
 
인물화 속에는 가족의 초상화가 인상적이었는데 치마저고리와 색동저고리 작품 각각 두개와 바느질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자화상들이 있었다.
 
인물화가 많아서 세어보니 44점이라는 필자의 말에 자신은 전혀 몰랐다면서 인물화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가족 초상화에 대해서 덧붙였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피아노 치는 소녀는 딸이 어릴 때 모습이고 다른 치마저고리 그림은 김시종 시인의 조카입니다." 모델의 뒷 얘기도 자상하게 들려주어서 작품에 대한 친근감을 더해 주었다.
 
"오늘 전시된 작품 속의 인물화는 오누이 작품 이외는 모두 단독의 작품이지만 앞으로의 작품에서는 군상의 인물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저는 인물화 작품을 좋아합니다."
 
고령을 느낄 수 없는 작품에 대한 정열과 포부를 들었을 때 필자는 남 모르는 즐거움이 마음에서 일어났다. 
 
추상화 속에 비숫하면서 돋보이는 "우골:牛骨" 작품이 두개 있었다. 소의 머리골을 그린 작품이었다.
"이것은 도축장에서 일부러 소의 머리를 사다가 삶아서 뼈만 남게 해서 우리 클럽회원들과 모두 같이 제각기 그린 그림입니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소재들도 있지만 그러한 것을 떠나서 의외성의 소재를 택했을 때 어떻게 작품속에 형상화될 수 있을까를 서로 그려 본 것입니다."
 
발상의 신선함에 수긍하면서 전시회장을 돌아보는데 120점의 작품 속에 풍경화가 하나도 없었다.
필자의 궁금한 물음에 현정자 씨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다른 관람객들로부터도 가끔 받은 질문이었습니다. 풍경화는 있는 사실 그대로 그리는 작품이이어서 저 자신이 그렇게 마음에 끌리지 않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인물화도 사실 그대로 그리지만 다른 차원의 그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추상적인 작품에 흥미기 있습니다."
 
오사카시 이쿠노에 거주하는 우화미<60> 씨는 전시회를 보고 나서 "조화와 깊이가 있는 아름다운 색상들이었습니다. 순수하고 투명감이 있는 작품에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인물화는 자연적이고 작품 속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현정자 씨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감상을 말했다.  
 
1월 30일 마이니치신문은 "현정자 씨 첫 회화전"이라는 타이틀 속에 인터뷰 기사를 다음과 같이 게재했었다.
 
정자 씨는 20대부터 회화에 친근감을 갖고 중학교 교사와 자녀들을 키우면서 피아노를 치는 가야 씨와 가족들의 초상과 정물, 인물을 그려왔다.
 
남편인 성악가 한재숙 씨도 "색채에 뛰어나서 투명감이 좋다."면서 계속 격려한 결과 여러 전람회에서 상을 수여했다.
 
"이 나이에."라고 망설이는 정자 씨를 가야 씨들이 "많은 고령자들의 기운을 북돋울 수 있다."면서 등을 밀어주어서 이제 실현됐다.
 
"많은 분들이 감상해 주셔서 충실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리겠습니다."고 했다.
 
현정자 씨의 남편은 조천읍 출신 1세 음악가 한재숙<韓在淑> 씨이며 1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녀 한가야<韓伽倻> 씨는 피아니스트이며 독일 칼스루에 국립음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장남도 독일에서 음악대학을 졸업하여 일본 음악 전문지 출판사에 근무하는 예술인 가족이다.  
 
한가야 씨는 2월 25일부터 3월 2일까지 나라현 이코마<生駒>시에서 "제4회 이코마국제음악제" 음악 감독을 맡고 준비 중에 있으며 일본과 유럽에서 연주회도 개최하고 있다.
 
2004년 9월 13일 <제주투데이>에 필자가 쓴 기사도 있다. 참고로 첨부한다.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8053
 
"기회가 있으면 어머님의 작품 전시회를 꼭 제주에서 열고 싶습니다." 한가야 씨가 취재하는 필자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한가야 씨가 말하지 않드라도 필자도 권하고 싶고 꼭 제주에서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앞에도 썼지만 만 83세이면 한국 나이로는 85세이시다. 그 동안 그렸던 작품들을 소중히 보관했다가
120점을 일거에 전시 공개했다.
 
필자도 여러 개인전을 관람했지만 30점 정도의 전시가 한도이며, 그리고 이렇게 <나라현문화회관>처럼 큰 공간에서의 개인전은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일본의 고도<古都> 나라는 관광도시로서 세계에 알려진 도시이며 경주시와 자매결연도 맺고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고도는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그 역사성에 걸맞는 그 국가와 도시의 독특한 보수성을 갖고 있다. 
 
국제관광 도시이면서도 행정, 혹은 정치면에서는 그 국가를 대표하는 보수 왕국을 자처하는 예가 많다. 필자는 이것을 이율배반적인 의미를 띈 이면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국제관광 도시로서 가장 개방적이어야 할 도시가 표면상은 그렇지만 내부적으로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문화는 많은 부조리 속에서도 유구한 세월을 지킴으로서 창조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선거 때만 되면 "보수 왕국의 나라"에서라는 "보수 왕국"이라는 수식어가 언제나 붙어 다닌다.
 
이러한 나라에서 팔순을 넘으신 재일동포 여류화가가 <나라현문화회관>에서 개인전을 갖었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전시회 6일 동안 팔순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돌아보면서 설명과 해설도 마다하지 않은 현정자 화가의 행동력에 경의를 표하디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오는 10월에 한재숙 음악가가 고향 제주에서 "음악의 밤"을 개최할런지 모른다고 한다.
그 때에는 공연홀 옆에서 "현정자 개인전"도 같이 열려 "부부 예술의 밤"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현정자 화가는 본적이 제주시 화북이고 1930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동포 2세이다.
오사카세이케이<成蹊>단대 졸업 후 교사 역임. <이코마양화협회> 외 3개 클럽의 회원이며 현재 남편과 이코마시에 거주하고 있다.
 
2008년 11월 "요미우리신문사상:요미우리오사카본사"을 비롯하여 여러 상을 수상했으며 여러 예술제 공모전에 출품하고 있다.
 
필자 참고: <서양화의 캔버스 규격은 <호>로 나타내는데 인물화의 경우, 1호는 가로 22.7센치, 세로15,8센치로서 엽서 약 2배의 크기이고 50호는 가로 116,8센치, 가로 91,0센치이다. 50호라고 해서 1호의 반드시 1호의 50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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