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익히 알려진 돈키호테의 명언이다. 돈키호테는 세레판테스의 소설이다. 주인공이 돈키호테다. 지난 2002년 노벨연구소가 세계 최고의 작가 10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선정됐던 작품이다.

소설에서 돈키호테는 황당무계한 인간형으로 묘사된다. 생각은 무모하고 행동은 저돌적이다. 발상은 엉뚱하다. 허황된 꿈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인간형이다.

그러나 상상력을 동원한 문학적 분석틀은 다르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냉철하고 심도있게 묘사한 걸작이라는 분석이 많다.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비리를 비웃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돈키호테의 모습은 꿈이 사라져버린 현실 세계에 대한 이상주의자의 치열한 투쟁을 희화한 것이다. 돈키호테가 주는 메시지는, 그리고 투쟁은, 현실주의 물질만능주의와의 싸움이다. 불굴의 의지로 달려가는 도전 정신이다. 무모한 저돌성은 내면의 의지를 상징하는 외투일 뿐이다.

주위의 싸늘한 시선과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상을 향해 뜻을 굽히지 않고 도전하는 인물이 바로 저돌적 돈키호테 형 인간이다.

왜 뜬금없는 돈키호테 이야기인가. 새정치민주연합이 6.4 지방선거 제주도지사 후보로 추대한 신구범후보의 이미지가 고약(?)하게도 돈키호테의 그것과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오해 마시라. 신후보를 폄훼하기 위한 말장난이 아니다. 그의 신념과 철학과 도전정신이 일반의 동의여부에 관계없이 돈키호테적이라 느껴져서다.

아직도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지사 후보 합의추대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비밀스런 내막을 엿보기가 쉽지 않다. 온갖 잡설만 무성할 뿐이다. “도민과 유권자를 우롱하고 엿 먹인 비겁한 정치 쇼”라는 비판은 모닥불처럼 뜨겁다.

‘아름다움’으로 포장된 후보 합의추대가 도민적 공감이나 감동을 주지 못하고 냉소를 받고 있는 이유다. 당으로서든 후보 개인으로서든 여간 곤혹스럽고 겸연쩍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과 신후보를 향한 돈키호테적 상상력은 별개다. 그의 희망과 도전과 성공과 실패와 시련을 지켜본 바로는 그렇다.

신후보의 도전 정신은 한마디로 가히 돈키호테적이다. 경쟁 상대들과의 당내 경쟁력에서 비교 열세였던 그가 내막이야 어떻든 정치민주연합 제주도지사 후보 자리를 꿰찬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몰아낸 격이다. 돈키호테적 도전정신의 승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93년 제29대 도지사를 지낸 후 1995년 첫 민선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여당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러나 1998년과 2002년 두 번의 도지사 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이후 친환경 농업회사 설립과 좌절, 지사재직 시절의 뇌물수수 사건에 휘말려 2년여의 수감생활 등 등 거듭된 실패와 좌절과 역경을 딛고 일어나 또다시 도지사 선거에 도전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봇물이다. “4년간 절치부심 해온 후배를 짓밟고 올라섰다“느니, 양보의 미덕과 배려심 부족에 대한 질타도 아프다. ”노욕(老慾)이 지나쳐 추해졌다“는 욕(辱)바가지도 요란하다. 저간의 사정도 모르고 남의 험담을 즐기는 사람들의 공격적 독설이다. 그래도 아랑곳없다. 정상을 향한 그의 도전 정신은 거칠게 없는 ‘고 고 마운틴’이다.

신후보의 끊임없는 돈키호테적 도전 정신의 열정은 ‘뜨거운 제주사랑’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그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주변부의 시 각이 그렇다.

그는 지난해 7월 출간한 회고록 ‘신구범의 삶, 그리고 제주비전- ’삼다수 하르방, 길을 묻다‘에서 제주에의 집착을 이야기 했다. ’그동안 제주도와 도민에게 범했던 과오와 독선 뿐만 아니라 나를 향한 비난, 거부, 오해, 냉소까지도 녹여 고향 제주를 위한 내 열정과 집념이 여전히 왕성하게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는 뜻일 터이다. 그러므로 ‘제주의 역사적 유토피아’를 가꾸고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사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는 안티가 많다. 미래를 보는 정책비전과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하면서도 주는 게 없이 그저 미운 것일까. 주홍글씨처럼 그의 이미지에 새겨진 ‘독선과 아집’은 그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부정적 꼬리표다. 민심과 여론관리에 실패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그에게 또 다른 도전이 가로 막고 있다. 소위 ‘제주판 3김 청산론’과 ‘세대 교체론“이다.

이에 대해 그를 옹호하고 그의 능력과 정책적 비전을 긍정하는 쪽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청산론은 흘러간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며 축적된 경험과 능력과 지혜는 세대교체의 표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생물학적 나이의 늙음은 문제가 아니다. 정신적 낡음이 문제인 것이다. 물론 젊다는 것은 축복받을 일이다. 그렇다고 늙었다고 저주 받을 일은 아니다.

불의한 현실에 맞서 아름다운 이상을 꿈꾸는 돈키호테 정신, 신후보의 도전정신을 조용한 눈으로 지켜보고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에 대한 사회적 냉소와 손가락질에 관계없이 그렇다. 황혼의 아름다운 도전이 눈물겹기 때문이다.

‘고통을 받는다고 절망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며 그 고통이 아무리 심하다 하더라도 절망에 몸을 맡기는 것은 가장 소심하고 한심한 일이다’. 그러기에 돈키호테가 남긴 명언은 오늘에도 유효한 삶의 교훈이다. 세상의 모든 도전자에게 ‘화이팅’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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