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누가 지켜주나. 두말이 필요 없다. 정부다. 국민안전과 안녕에 대한 무한 책임은 바로 정부에 있다. 그래서 박근혜정부는 ‘안전’을 핵심적 국정운영 목표로 삼아 출범했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꾼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안전제일’ 키워드가 ‘말짱 헛구호’였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준 셈이다.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정부 기능 곳곳 뼛속 깊이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세상에 이런 나라, 이런 얼치기 정부가 또 어디 있을 것인가.

한창 희망찬 꿈을 엮어가는 생때같은 아이들이 수장(水葬)되었는데도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댄 정부, 그들의 주검 앞에 온 나라가 가슴치며 피울음을 토하는데도 우왕좌왕 갈짓자 걸음으로 비틀대는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국민들은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세월호 참사’ 소용돌이 속에 접하게 된 1만2000톤급 스페인 여객선 화재사건 수습 전말(顚末)은 또 한 번 우리가 너무도 부끄러운 나라에 살고 있다는 자괴감(自塊感)을 느끼게 했다.

항해 중 화재가 발생하자 승무원과 구조당국의 완벽한 대응으로 여객과 승무원 등 334명 전원이 무사히 구조됐다는 외신이었다.

‘세월호’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무분별과 무소신, 국가경영의 총체적 일탈(逸脫)에 처연해 질 수밖에 없었다. 국격(國格)이 추락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문명세계의 손가락질이 눈가에 어른 거렸다. 쿡쿡거리며 히죽되는 숨죽인 조롱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나 다름없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드는 산과 들

우리의 마음속에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를 수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아 아 우리대한민국
아 아 우리조국

아 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정수라가 불렀던 ‘아, 대한민국’은 참담하게도 세월호와 함께 캄캄한 바다속으로 침몰해버린 것이다.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있고, 마음속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고, 원하는 것 뜻하는 것 뭐든지 얻을 수 있는 은혜로운 대한민국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탑승자 476명 중, 가까스로 생명을 구한 사람은 174명 뿐, 189명이 주검으로 돌아왔고 113명은 실종된채 아직도 캄캄하고 차가운 바다밑에 버려진채다. 사고발생 보름이 가까운데도 그렇다.

그런데도 사고 수습에 책임져야 할 정흥원 총리가 사의(辭意)를 표했다. 박대통령은 ‘사태 수습 후’를 전제로 ‘시한부 사표 수리’의사를 밝혔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태수습이 한창 진행중인 와중에 정총리의 사의 표명은 팬티 바람에 세월호를 제일먼저 빠져나간 참 못된 선장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정총리가 진정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느꼈다면 사태 수습중에 뜬금없는 사의 표명이 아니라 돌팔매를 맡더라도 국민 앞에 엎드려 “온몸을 던져 사태를 수습한 후 책임을 지고 물러나가겠다“는 뜻을 밝혔어야 했다. 사의표명이 아니라 사태수습이 먼저인 것이다.

총리의 사의표명은 그래서 앞뒤 순서가 바뀌었다. 무한책임을 져야 할 책임자가 무책임하게 사표를 내던져버리고 침몰하는 대한민국호를 탈출하겠다는 것은 국가에 대한 배임이며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대통령의 ‘시한부 사표 수리’ 천명 역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총리는
분명 사의 표명 전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총리의 서두른 사의표명 처리에 진지한 고민을 했어야 했다.

총리를 뒤로 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향후 대책을 밝혔어야 했다. 대한민국호 운명에 대한 무한책임의 정점이 대통령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사태수습에 만전을 기하고 어느 정도 수습이 진행된 후 총리든, 장관이든 책임지게 할 것이라고 설득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책임만 따질때가 아니니 대통령을 포함해 총리든, 장관이든, 공무원이든, 온 국민이 하나되어 이 난국을 극복하자고 호소하는 것이 정답이다. “시한부 총리 사표 수리는 국면 호도용”라는 비난을 살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현실적으로도 ‘시한부 총리’가 무슨 힘이 있는가. 사태수습에 영(令)이 설 수 없다. 누가 시한부 총리, 시한부 장관의 통솔에 따르겠는가. 대통령의 ‘총리 시한부 사표 수리’가 상책이 될 수 없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인정한다고 해도 현재로서는 정부가 내밀 카드는 마땅치가 않다. 그렇다면 이왕지사 정총리 카드를 쓸 수밖에 없다면 정총리는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사태수습에 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이다. 총리직은 이미 내놓은 상태다. 미련이있을 수 없다. 이를 악물고 무서운 각오로 수습에 매진하여 시한부를 넘긴다면 그나마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을지 모른다.

물론 총리가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일은 대통령 몫이다. 국민의 목구멍에 차오르는 분노의 담즙(膽汁)을 제거하고 가슴속에 맺혀 멍든 혈전(血栓)을 풀어줄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대통령이다. 세월호에 세월만 보낼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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