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중국에 은신초(隱身草) 전설이 있었다. 이 풀을 들고 있으면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이었다. 전설을 믿고 은신초를 구하려는 사내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사내를 놀릴 심산으로 잡초를 은신초라 했다. 사내는 잡초를 들고 시장통으로 내달았다. 그리고 상인들의 동전꾸러미를 냉큼 챙기고 빠져나가려고 했다. 상인들은 그를 붙잡아 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사내는 상인들을 처다보면서 하는 말, “ 마음대로 때려 보라지, 그래도 나는 보이지 않을 걸...”. 중국 소담집(笑談集)에 나오는 우스개다.

부정(不正)을 저지르는 사람은 그것이 남의 눈에 띄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일쑤다. 오늘날에도 은신초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새누리당 제주도당의 비례대표 도의원 후보 선정과정을 지켜보면 그렇다. 어리석은 은신초 사내의 영상을 보는 듯 했다. 그냥 웃어넘겨 버릴 수만은 없는 일이어서 차용해보았다.
 
새누리당 제주도당은 6.4 지방선거 비례대표 도의원 후보 선정 작업을 진행해 왔다. 공모에 14명이 신청했다. 이중 7명을 골라내는 작업이다. 도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8일부터 14명을 대상으로 면접을 실시했다.
 
 
10일 배심원단 회의와 도당 운영위원회를 거쳐 후보를 확정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공식발표가 있기 전 비례 대표 1번부터 7번까지 명단이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탈락자들의 반발을 불렀다.
여기서 후보 선정과정에서의 외압설이 솔솔 냄새를 풍겼다. 모락모락 사전 내정설 의혹의 연기도 피어올랐다.
 
내용은 이렇다. 대통령의 측근 원로로 분류되는 현경대(평통부의장)()’로 알려진 인사들이 당선권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도당위원장 측근으로 거명되는 인사들이 당선권 앞 순위를 독식(獨食)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앙당 고위인사 개입설도 피어났다.
 
친박계 실세(實勢)로 분류되는 서청원의원 부인과 새누리당 중앙여성위원회 산하 중앙차세대 여성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월 제주에 내려와 특정인을 당선권에 넣어 달라고 은근한 외압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중앙 개입설은 대통령 측근인 현경대 계와 친박 실세인 서청원 계쪼가리 권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일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말 만들기 좋아하고 입방아 찧기에 이골이 난 사람들은 제철 메뚜기처럼 신바람 났다.
 
물론 여기에는 현경대부의장이나 서청원 의원 같은 거물이 개입했다고 볼 수는 없다. 호가호위(狐假虎威)세력들의 자가발전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거물이 자칫 빗나가면 괴물로 비쳐지는 세상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 측근이나 실세라는 사람들이(비록 계보원들의 일탈이라 해도) 중앙권력의 관점에서 본다면 쪼가리 권력이나 다름없는 비례대표 도의원 후보에까지 침 흘리는 것으로 비쳐진다면 비극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의 하이에나들이 먹잇감을 찾아 이빨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 개입설이나 위원장 독식설을 뒷받침하듯 비례대표 후보 안정권에는 거론되던 특정인의 이름이 올라있다. 위원장 측근도 상위 순번에 배치됐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공모 신청 마감 전부터 비례대표 도의원후보 사전 내정설이 그럴듯하게 유포됐었다. 면면이 실명으로 거론됐다. 아니나 다를까. 당 밖으로 새어나온 후보 명단에는 놀랍게도 그들이 포함됐다. 우연으로만 볼 수 있을 것인가.
 
소문은 꼬리를 물었다. 언론사에는 사전 내정설의 정황증거로 활용될 수도 있을 구체적 제보도 있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모 인사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도의원 후보 신청 마감 하루 전 당 고위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급히 만나자는 것이었다. 만나서는 후보 신청을 하라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서류준비를 한 후 둘이서 ‘30년 산 발렌타인한 병을 비우면서 저녁을 즐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 인사는 또 다른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류를 제출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30년 산 발렌타인 한 병으로 고조됐던 새누리당 비례대표 도의원의 꿈은 술잔 속으로 사라져버린 꼴이다.
 
사전 내정설 또는 내락설의 개연성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정황 제보다. 물론 당에서는 아니라고 도리질 칠 것이다. “심사는 전문성과 도덕성 당공헌도 의정활동 능력 등 10개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심사했다고 할 것이다.
 
사실 외부인사로 구성된 공천관리위원회 위원들이 당이나 외부입김 또는 압력에 의해 부적격자를 후보로 확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정 계파 또는 계보 인사를 차별하거나 편향되게 풀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사 후 불공정성 시비가 뒤따를 것이고 그것이 공천관리위원 개개인의 명예나 인격에 일격을 가할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서청원의원 등 외부 개입설과 관련해서는 중앙인사와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발언의 취지가 왜곡됐고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는 일반의 의혹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권력이 불을 지피면 연기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비례대표 도의원 후보 선정과 관련한 일련의 의혹에 새누리당 도당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진솔하게 답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궤변과 억지 논리로 상황을 비켜가려 하다가는 더 큰 의혹이 늪으로 빠져 든다는 것은 각종 의혹사건을 지켜봐온 일반의 경험칙이다. 의혹을 물 타려 하거나 일반이 수용할 수 있는 통상의 허용범위를 벗어나려 해서는 아니 된다. 일탈을 꿈꾸지 말고 당당하게 임해야 할 이유다.
 
신은 사람을 부패시키기 위해 권력을 안겨준다는 역사학자 비어드의 말을 긍정하다고 해도 정치는, 정치가는 바르게 나가는 것이다. 정자정야(政者正也)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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