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남 주필
20억 원의 뇌물, 거액이다. 판타스틱(fantastic)한 금액이다. 도의 일개 투자 자문관과 도 산하 관광관련 공기업 사장 둘이서만 짬짜미로 꿀꺽하고 입 닦아 버리기엔 너무 큰 액수다.

그러기에 여론은 거액뇌물 수수사건의 ‘ 숨은 그림 찾기’에 재미 붙었다. ‘몸통 알아맞히기’ 게임이다. 소문의 칼끝은 우근민 지사를 겨냥하고 있다. 진실여부는 내버려 두고 입방아 찧기가 그렇다.

도정 주요현안들의 의사결정이 제주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그 정점에 도지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건의 전말을 되짚어보면 도지사를 향한 여론의 촉수(觸手)가 지나친 것은 아닐 듯하다. 개연선(蓋然性)이 크다.

2011년 2월 25일, 우근민지사와 ㈜인터랜드 대표는 제주판타스틱 아트시티 조성사업을 위한 업무 협약(MOU)을 체결했다. 애월읍 어음리경 510만 평방미터 부지에 1조6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드라마 체험장 등을 조성한다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막대한 투자비에 대한 구체적 자금조달 계획이 없었다. 사유지 등 사업부지 확보 문제 등도 선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업자에 대한 신뢰성도 담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본금 5억 원에 불과한 사업자와 사업제안 한 달 만에 1조6000억 원 대의 대규모 사업협약을 한 것이다. 일사천리였다.

그러면서 도는 사업부지내 공유지를 공적자금으로 매입한 뒤 해당 사업자에게 장기 임대해준다는 방침이었다. 투자 인센티브로 인적 행정적 지원도 약속했다.

원칙도 없었다. 투명하지도 않았다. 떳떳하지도 못한 단세포적 행정추진이었다. 졸속적 초고속 행정행위였다.

당연히 여론은 ‘특혜종합선물세트’라고 날을 세웠다. 악화일로의 여론에 도는 2012년 1월 사업을 접었다. 우도정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여론의 뭇매에 항복한 것이다.

이 과정 깊숙이 도 투자자문관이었던 김영택씨(63.전 김영편입학원 회장)가 똬리 틀고 앉아 뇌물의 그물코를 엮고 있었다. 탐욕의 부패 고리를 짰던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우지사와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관계라는 말이 있다. 측근 중의 최측근이다. 우지사가 함부로 어쩌지 못할 정도의 ‘자금 줄’이란 말도 떠돌았었다.

1998년 민선2기 우근민 도정이 들어서면서 도 관광개발정책 고문을 맡았었다. 사연(私緣)이야 어떻든 공적관계의 출발이었다.

우지사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되자 그는 또 도투자자문관에 위촉됐다. 자문관에 위촉된지 1년만인 2011년 김씨가 회삿돈 72억원 상당을 횡령한 혐의가 드러났다. 법원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런데도 투자유치자문관 자리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씨는 도 관광개발정책 고문, 제주도외자 및 민자유치 자문위원, 국제자유도시 정책기획단 관광정책위원, 제주메가리조트 기획 및 외자유치 TF팀장 등 우지사가 관장하고 있는 요직 여섯자리에 위촉되기도 했다. 그만큼 우지사와의 관계가 돈독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투자나 관광개발사업, 외자유치와 관련해서는 명함만으로라도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위세였다.

권력은 망치라는 말이 있다. 망치처럼 잡으면 휘두르고 싶어지는 것이 권력의 생리다.

김씨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제주판타스틱 아트시티’ 개발 사업에 참여하려는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인허가 관련 청탁 대가로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4월7일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우도정은 김씨 구속 열흘 뒤 투자유치 자문관에서 해촉 했다. ‘품위 손상’이 이유다. 2년 전 회삿돈 72억원 횡령혐의로 징역1년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을 때는 모르쇠로 일관했던 우도정이었다.

긴 꼬리 도마뱀은 제 몸통을 숨기기 위해 아끼던 꼬리를 서슴없이 잘라낸다. 김씨의 발 빠른 해촉에 대해서도 몸통을 숨기기 위한 ‘도마뱀 꼬리자르기식 작전‘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1998년 12월 17일, 우지사는 “폴리네시아 왕국의 외무장관과 부수상을 만나 외자유치 협상을 했다”고 밝혔다.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까지 공개했었다. 이 자리도 김씨가 주선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놀랍게도  ‘폴리네시아 왕국’은 공식기록으로 존재하지 않는 유령왕국이었다. 도청외자 유치 담당자가 지사에게 “그런 나라는 없다”고 보고했다. 그런데도 우지사는 서울에서 정체불명 유령왕국의 부수상과 외무장관이라는 사람과 만나 “외자유치 협상을 했다”고 발표까지 했었다.
이 역시 김씨의 주선이었다. 우지사가 얼마나 김씨를 신뢰하고 있었는지 읽혀지는 대목이다.

또 한 명의 우지사 측근이 있다. 양영근 제주관광공사 사장이다.
16일 서울중앙지검 특수 4부(배종혁부장검사)는 양사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뇌물수수 혐의다. 제주판타스틱 아트시티 사업을 주도한 김씨로부터 억대의 뒷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영장이 청구되기 전부터 시중에서는 “100만원짜리 수표 350장을 모 장례식장에서 현금으로 돈세탁을 했다는 ‘부의금(賻儀金)을 이용한 돈 세탁 수법’까지 회자(膾炙)됐었다.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소문은 그렇게 알을 까며 둥지를 옮겨 다녔다.

‘양과 김’은 우지사의 아바타라는 말도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20억원의 뇌물 수수 사건에 연루돼 이미 구속됐거나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다.

우지사는 관련사업의 최종 결재자다. 그런데도 이들 뇌물 수수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우지사는 이들의 뇌물 수수 사실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인지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뇌물사건 책임의 일단은 우지사에게 귀착될 수밖에 없다는 여론이 많다.

어린아이 과자 값도 아니고 아무리 간 큰 사내들이라 해도 20억원대의 거액 뇌물을 주군에게 알리지 않고 둘이서만 나눠 가질 수 있는 일인가.
상식의 영역을 넘어선 일반의 상상력은 20억 뇌물 수수 사건의 몸통을 꿰뚫고 있을 터이다.

옛 글에 ‘백주홍인면(白酒紅人面), 황금흑인심(黃金黑人心)'이라는 말이 있다.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붉어지듯, 돈을 보면 마음이 검어진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금욕(金慾)은 생선을 탐내는 고양이의 본능과 비슷한 것이다. 부퍠는 악취가 아니라 향기를 품으며 다가오기 마련이다.

얼치기 투자전문가가 당국을 움직여 규제의 사슬을 풀고 사업자를 꼬득여 20억원의 뇌물을 삼켰다면, 이것은 얼치기가 제주도 행정을 추행한 추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뜨내기가 던지는 달콤한 미끼에 농락당한 제주도정, 어떻게 얼굴을 들것인가. 우근민지사의 입장을 듣고 싶은 것이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입을 열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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