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톨레도 및 세고비아 배낭여행

2009년 스페인 배낭여행
39일 차) 2009.6.16(화)('톨레도')

'톨레도'역에 도착하니 여성 두명이 걸어 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왔느냐 ? 어느 쪽으로 갈것이냐?'고 물으니 '폴란드에서 왔고 '대성당'부터 구경 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같이 가면서 지나가는 스페인 주민 붙잡고 '대 성당 갈려면 어디로 가야하죠?'하고 물었더니 그녀들은 깜짝 놀라며 내게'스페인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순간 '모른다'고 대답하려니 방금 스페인어를 유창?(단지 단어 몇 개 외운게 내 스페인어 실력 전부인데...)하게 한 뒤라 얼떨결에 '조금 할 줄 안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마 그녀들은 내가 스페인어를 아주 잘 하면서 겸손을 떠느라 '조금 할 줄 안다'고 대답한 줄 알 것입니다.

점심은 어제 슈퍼에서 산 빵과 요구르트, 바나나로 때웠습니다.
40여일간의 아침, 점심메뉴가 거의 동일 합니다. 길가에서 아무데나 앉아서 먹는 것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졌고.

'대성당' 입장료는 7유로, 입장료가 비싸긴 했지만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성당내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 하는게 아쉬웠습니다.

'톨레도'의 거리 풍경은 실로 장관이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몇 백년간 그대로 머무른 듯, 중세도시 그대로 재현 된것 처럼 보였습니다.

​시내 중심지엔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으로 넘쳐나고..세계적인 관광지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너무 억울할 뻔 하였습니다.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소에 가니 한 학생이 앉아 있었습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느냐?'니까 14세의 중학생인데 학교에서 영어를 배워 조금 할 줄 안다고 하였습니다.

조금 후 버스가 오길래 '이 버스가 맞느냐?'고 하자 '아마 맞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치는 않으므로 버스 기사에게 확인하라'고 당부 하였습니다.

 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 사람들은 오랜 역사를 가진 자기나라의 문화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으로 겨우 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을 경멸하는 한편, 영어도 사용하지 않았다는데 요즘엔 영어를 배우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보니 전망대에서 내리는 사람이 나 혼자 뿐이었습니다.

언덕 위로 올라가 20 여분 간 앉아서 시내를 구경 하다가 다시 시내로 가기 위해 언덕을 한 참동안 내려 가다가

생각 해보니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은것 같았습니다. 반대로 가다가 보니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지름길로 보이는 길이 있었습니다.

2km 쯤 걸어 가니 막다른 골목이었습니다. 이런 낭패가..서투른 성급한 판단을 후회하며 다시 돌아서서 내려 오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큰 길에 거의 도착 할 무렵, 이미 기진맥진 한 상태에다 길은 모르고, 온 길로 되 돌아 가자니 30분 이상 소요될 것같고, 또 버스는 언제 올런지 막막하였습니다. 잘못 하다간 밤 늦게까지도 '마드리드' 로 못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무조건 손을 들어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까지 태워 달라'고 부탁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부부와 딸이 타고가던 승용차가 지나 가길래 세워서는 사정 설명을 하니 대뜸 뒤에 타라고 하였습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고마웠습니다. 10대인 딸은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지만 부부는 전혀 못했습니다.

딸과 내가 영어로 의사 소통 하는 게 신기한 듯 환한 미소를 계속 짓고 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0분이었습니다.

길을 잘 못 찾아가는 바람에 시간을 낭비하여 계획된 기념관 하나는 구경하지 못했지만, 즐거운 추억 하나를 만들었으니 천만 다행이랄까...

7시 쯤 숙소에 도착 하였습니다. 샤워하고는 한국 식당을 찾아 가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 하였습니다.

​상점 쇼윈도 앞에 한참 기다렸으나 비가 개이지 않아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 근처 식당 어디 있느냐?'니까 바로 가까이에 있는 중국 음식점을 알려 주었습니다.

​카미노 도중 두번을 중국 음식점에서 식사 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았는지라 주저없이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역시 예상한대로 가격도 7.8유로로 아주 싸고 (이곳의 일반 식당의 음식값은 보통 15유로 이상입니다) 양도 뜸뿍...거기다가 맛도 최고였습니다.

즐거운 만찬을 끝내고, 일기를 쓰고 빨래를 한 후 10시 30분 쯤 침대에 들어 갔습니다.

헌데 이때부터 계속 새로운 손님이 민박 집으로 들어 왔습니다.

내 방에는 미국서 직장일로 온 교포와 서울에서 출장 온 1명이 같이 들어 왔습니다.

주인이 '사람들이 자고 있으니 조용히 하라'고 일러 주었으나, 오자마자 불을 키고, 가방을 열고 닫고, 밖으로나갔다, 들어왔다를 수없이 반복 하였습니다.

복도에서 1시간 이상을 인터넷을 하고는 침대에 와서는 다시 큰 소리로 서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들어오자 마자 자는 사람을 깨워서는 무려 2시간 이상을 잠 못자게 해 놓고는 이제와서 다시 침대에 와서도 떠들다니...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한 마디 하였습니다.

'제발 그만 잡시다.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 누웠는데도 시끄러워 잠이 오지않네요'하고 말하자 그때서야 조용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얼굴은 멀쑥히 잘 생긴 50대 초반의 친구였습니다.

공중도덕을 지키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톨레도=TOLEDO) 소개
마드리드 남서쪽으로 70km 떨어져 있는 세계 문화유산의 도시. 15세기 말 가톨릭 세력 '펠리페 2세'가 1560년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정치적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상당수의 이슬람 교도가 이 도시에 거주해 지금도 이슬람 문화가 곳 곳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예부터 상공업이 크게 발달했으며 무기 산지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톨레도의 고성 (古城)​

(이슬람 교도를 발로 밟고 칼로 찌르고 있는 동상)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가 'TOLEDO'에 관해 쓴것 같은데...

대 성당

성문으로 들어가는 길


( 각종 도검류로 가득한 가게 진열장)

상점마다 가득한 중세풍 무기 기념품이 그 옛날 수없이 치른 전쟁 이야기를 전해주고,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금은세공에서 400년 간 이곳을 지배한 이슬람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시내 운행중인 꼬마열차

('톨레도' 중심가)

40일 차)6.17(수) ('세고비아')

'세고비아'에 가기로 작정하고 민박집 주인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오페라'역에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프린시페 피오'에서 '세고비아'버스표를 사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좀 덤벙대는 스타일이라 믿을 수가 없어서, '프린시페 피오'에서 내리면서 승객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도 가던길을 멈추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곳에선 '세고비아'로 갈 수 없고 '꽈뜨로 까미노'에서 타야 한다고..'꽈뜨로 까미노'에 도착하여 역무원에게 문의하니 또다시 잘 못 왔다는게 아닌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아토차'역으로 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거기가면 '세고비아'가는 버스 탈 수 있느냐고 물으니 '그것 까지는 모르겠다'하고..이처럼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얘기하므로 민박집 주인이 얘기한대로 가기로 결심하고 '프린시페 피오'로 가는 길을 문의하자 고맙게도 '프린시페 피오'행 열차를 타는 곳 까지 5분여를 동행까지 해 줍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열차를 타기위해 체크기에 표를 넣었으나 문이 안 열립니다. 역무원에게 문의하니 조금전에 열 정거장을 타고 왔기 때문에 왔던 곳으로 돌아 가려면 다시 표를 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엉뚱한 곳으로 온 것도 억울 한데 1유로까지 다시 내라고 하니 너무 어이가 없어 한참 영어로 설명하며 떼를 쓰니 불상하게 보였는지 옆 문으로 통과 시켜 주었습니다.

'프린시페 피오'에서 버스 타는 곳 까지 가는데도 이리저리, 말 틀리고 저 말 틀리고...'프린시페 피오'에서 한시간 반 만에 '세고비아'에 도착 하였습니다.

'까데드랄' 3유로, '알카사르' 4유로를 주고 구경 하고는 사 온 빵과 바나나, 요구르트로 점심을 먹는데, 요구르트용 플라스틱 스푼을 잊어버려서 궁리끝에 빵을 떼내어 그것으로 요구르트를 떠 먹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지나가는 행인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 보았습니다.

'톨레도'와 '세고비아'에서는 10유로이면 이 지역 별미를 먹을 수 있다고, 꼭 먹어 보라고 가이드 북에서 얘기하고 있으나 '까미노' 길에서의 절약정신이 몸에 배었는지 아침 식사와 점심은 돈이 아까워서 도저히 식당에서 사 먹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먹고 싶은 것 안 먹어 가면서 절약해 놓고는, 덤벙대다가 엉뚱한 곳에 낭비를 하고마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웠습니다. .'까미노'를 출발 하기 전 인천-파리 항공편 예약시 결재했던 신용카드를 재 발급 받는 바람에 '몽파르나스'역에서 재 결재해야 했고, 마드리드-파리로 예약해야 할 것을 '산티아고'-파리로 예약하므로써 '산티아고'-파리를 장장 왕복 18시간을 공연히 허비하는 실수에다가 '마드리드' 민박집에도 돈을 잘못 지불하여 손해를 보았습니다.

15일 8시에 민박집에 도착하여 바로 3일 치(15.16.17일)를 지불 했는데 어제부터 곰곰 생각해보니 오늘저녁 10시쯤 떠나므로 침대를 딴 사람에게 팔 수도 있고(실제 그렇게 했다) 또 내일 아침식사도 걸르니 얼마든지 싸게 할 수 있는 경우였습니다.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용기를 내어 부인에게는 내일 아침 안 먹는 대신 오늘 저녁 밥에 김치만 좀 줄수 없느냐니까 밥에다 라면까지 끓여주어 출국후 처음으로 라면맛도 보았으며 남자 주인에게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10유로를 깍아 주었습니다.

결국 15유로 낸 셈인데 라면과 밥을 얻어 먹었으니 그렇다면 손해는 아닌 셈입니다. 밤 10시까지 침대에서 쉬다가 가도 되고..어떻든 말은 하고 보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만일 마음속으로만 끙끙대며 말을 안 했다면 두고두고 얼마나 억울해 했을까? 모처럼 잘 한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세고비아'는 모두들 좋다고 하지만 어제 '톨레도'를 보고 난 연후인지라 별로입니다.

'까데드랄'로 가는데 중학생 20여명이 여 선생 인솔하에 자유분방하게 웃고 떠들며 걸어 가는데, 한 학생이 내 동생 아들 '강현'이 와 너무도 흡사하였습니다.

틀림없는 한국인이라 생각하고 '꼬레아노'이냐고 물으니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하였습니다. 재차 물으니 옆의 학생이 그때서야 내말을 알아 들었는지 '치노(chino=중국인)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디 랭규지'와 영어로 '네 얼굴이 나와 너무 닮아 한국인인줄 알았다'고 하자 그때부터 내 주변에 학생

3-4명이 몰려 들어서는 이것저것 짧은 영어로 대화를 시도 하였습니다. '북한이냐, 남한이냐,남북한은 아직도 싸우느냐?...내가 '나는 남한에서 왔고 아직도 남,북한은 서로 싸우고 있다'면서 두 주먹을 서로 부딪치며 알려주니 깔깔 웃으며 재미있다고 야단들입니다.

영어로 나와 얘기한 친구는 친구들에게 '그것봐라. 내 영어가 통하지 않느냐?'는 듯, 으쓱 대는것 같고 나머지 학생들도 신기한 듯 서로 시끄럽게 얘기 하였습니다.

그때 쯤 미모의 여 선생이 내 옆을 지나가길래 '저 학생이 내 조카 얼굴과 비슷하여 한국인인줄 알았는데 중국인이라 해서 서로 웃고 있는 중이다'라고 했더니 '저 아인 스페인에서 태어 났지만 부모님 모두 중국 태생이다'라며 얘기 하는데 아주 상냥하였습니다. 물론 영어도 아주 잘하였습니다.

'나는 순례자이다'라고 했더니 '언제 어디서 출발 했느냐, 몇 km 걸었느냐, 지금 기분이 어떠냐, 나도 언젠가는 꼭 걷고 싶다. 부럽다, 한국에 대해 잘 몰라 미안하다...'는 등의 얘기를 하다 헤어졌습니다.

'까데드랄'은 이제까지 본 성당들과는 외부와 내부의 모양이 아주 달랐습니다.

각종 무기류, 갑옷, 갑옷 입고 말을 탄 병사, 군인복장, 전쟁에서 싸우는 장면의 그림, 칼을 찬 수 많은 추기경들의 그림 등, 마치 전쟁 박물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중 가장 내 눈길을 끈 것은 철로 만든 갑옷이었습니다. 몸 전체 중 눈을 제외한 어느 한 구석도 빈 틈이 없이 완전무결한 갑옷이었습니다. 저런 옷을 입고 싸웠으니 전쟁에서 백전백승 했으리라 이곳에 유난히 중, 고교및 대학생들이 단체로 많이 온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이 인솔해서 곳곳에서 설명하는 걸 보면 조상들의 정복의 역사를 매우 자랑스럽게 교육시키는 것 같습니다.

​로마 수교도(ACUEDUCTO ROMANO) 앞에서
로마 수도교는 기원 1세기 '클라우디우스' 황제시절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로마인들이 15km이상 떨어진 '아세베다' 강물을 끌어오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이 수도교는 '세고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며, 구시가 입구 '아소게호' 광장에 거대한 모습을 자랑하며 서 있습니다.

전체 길이가 728m에 달하고 최고 높이가 약 30m의 2단 아치 모양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돌과 돌 사이에는 어떤 접착제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884년 까지는 물을 흘려보내 시내에 용수를 조달했고. 1928년 부터는 수도교에 수도관 을 설치하여 지금까지 수로로 이용하고

길가의 ​조각품이 눈길을 끕니다


(대성당)
후기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세련미와 우아함이 돋보여 '대성당의 귀부인'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성당 정문이 서쪽을 향하고 있어 실내가 풍부한 자연 채광으로 환하게 밝혀져서 조각과 예술품,스테인글라스등이 더욱 화려하게 빛납니다.

대 성당 내부의 모습입니다

한국인인 줄 알았더니 중국인 2 세였습니다


구 시가로 가는 길

('알카사르')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성으로 고대 로마의 요새가 있던 자리에 12세기 '알폰소 8세'가 축성한 후 수세기 동안 역대 왕들을 거치면서 증개축 되었다가 1862년에 화재로 불탄 것이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 이사벨' 여왕의 즉위식과 '펠리페 2세'의 결혼식 장소로도 유명 합니다. 내부에는 왕가의 화려한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알카사르 내부의 모습

(옛 전차 모형)

기마상 앞에서~

('알카사르'의 스테인드 글라스)

기마상

41일 차)2009.6.18(목)(마드리드-산티아고/00:30/09:30/9시간 /버스51.000원)
(산티아고-파리/15:10-17:10/2시간/뷰엘링126.706원)

버스 안에서 대충 잠을 자면서 9시간 만에 '산티아고'에도착 하였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고 '산티아고'대 성당으로 가던 중 슈퍼에 들려 점심용으로 빵, 바나나, 체리와 물을 샀습니다. 이제껏 거의 모든 순례자들이 물을 사 먹었지만 나는 돈이 아까워 계속 길가의 수도, 부엌과 화장실에서 물을 병에 받아 가지고 다니면서 먹었는데 오늘을 왠지 물을 사 먹고 싶었습니다.

​까미노 길에선 지나가는 마을이 거의 시골이라 그런지 이 보다 적은 500ml 한병에 1유로 이상 받았는데 오늘은 큰 병인데도 0.3 유로, 우리 돈 500원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500원이 아까워서 물을 사 먹지 못했던가? 하는 자괴감도 순간 들었으나' 소수이긴 하지만 딴 사람도 먹는물을 나도 먹었을 따름이다'하고 자위 하였습니다.

​빵을 하나 사서 계산 하려니 점원이 '그건 하루 지난 것이라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100 % 스페인어지만 이제 손 발짓으로 다 통합니다)

그래도 사고 싶다고 했지만, 절대 안 된다면서 5분만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평소 모든 음식을 유통기한에 관계없이 먹어도 배탈이 나 본 적이 없어서, 새 빵을 사기위해 기다리는 5분이 아까웠으나 결국 내 고집을 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천천히 걸어 대 성당 광장에 가니 운 좋게도 전통 순례자 복장을 한 노인과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책방 5곳을 전전한 끝에 겨우 카미노 가이드 북 영어판을 발견하였는데 15유로라는 말에 한 참 망설이다 큰 마음먹고 구입 하였습니다. '까미노' 중 외국인들은 거의가 이 책을 뒷 포켓에 놓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곤 하는 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글판이 아니라 영어판이라 얼른 눈에 안 들어 옵니다.

한국인 순례자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2004년:3명/2005년:50명/2006년:250명/2007년:500명/2008년:800명)이고 보니 아마 2-3년내 한글판도 나오리라고 기대를 해 봅니다.

버스 터미널에 가서 공항가는 버스표를 사고 승차 장소를 확인하고 나니 오늘 일정 중의 큰 것은 다 끝난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건 적당한 장소에서 빵과 바나나, 체리로 점심을 먹고 비행기를 타서 파리공항에 도착한 후에, 민박집에 전화하여 숙소를 찾아가는 일 뿐입니다.

민박 집을 찾아 가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그동안 워낙 돌발사태가 많이 발생 하였고 또한 프랑스는 서울에서 파리공항에 도착한 것 말고는 처음이나 마찬가지인바 약간의 긴장과 주의가 필요 할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편안한 마음으로 조급해 하지말고 느긋하게 행동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며칠 전 '까미노'를 마치고 도착한 '산티아고 꼼뽀스뗄라'와 동일한 장소이건만 그때와는 기분이 사뭇 달랐습니다. 그땐 처음 '생장 피드 포르'를 출발 하고나서 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항상 '올라'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이젠 말은 안 나오고 그냥 쳐다보며 싱긋 웃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만 큼 열기와 흥분이 식은 탓이리라..길가에 앉아 이 글을 쓰다 보니 또다시 피로감이 몰려 옵니다.

그렇다! 오늘 새벽 0시 30분에 '마드리드'를 출발하여 버스에서 9시간을 보내면서 잠을 설친 탓이었습니다.

어디가서 잠을 좀 자고 싶은데 배낭 때문에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땐 동행자가 있어 서로 교대로 배낭을 지켜주며 잠을 잔다면 얼마나 좋을까..길가에서라도 한 두시간 눈을 붙였으면 좋으련만..아무튼 적당한 곳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잘까? 아니 그곳은 더 위험하다고 가이드 북에서 써 있던데...

그때 누가 '헬로'하고 불러서 쳐다 보니, 15일 전 2-3일 숙소에서 만났던 독일계 오스트랄리아 인'JURGEN'이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서로 안부 말을 묻고 기념 촬영하고는 헤어졌습니다.

조금 있으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할머니가 오십니다.

반갑게 포옹하고 나의 발 상태를 묻는 등 반가운 인사를 하였으나, 언제 어디에서 만난 누구인지 전혀 생각 안 났습니다. 눈에는 많이 익은데...

서양인들의 얼굴은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모두가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기억력이 하루하루 감퇴되는 결과이리라...의자에 앉아 있어도 불안하여 잠을 잘 수 없기에 일기장을 꺼내 일기를 쓰고 있으려니 누가 '계수'하고 불렀습니다. 아니 이럴수가! '카미노' 첫날 만나서 3일 동안 같이 걸었던 독일인 '노베르뜨'였습니다.

그는 옆의 친구에게 '첫날 만나고 마지막 날 만난 친구'라고 소개한 후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까미노' 길은 우연치고는 너무도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하는 곳인것 같습니다.

​마음속으로 '노베르뜨'와 7일 간 함께 걸었던 이스라엘인 '라즈레비'와 한번 만났으면 했는데 그 소원 한 가지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산티아고'에서 파리로 가는 저가항공 '뷰엘링'은 우리나라 저가항공보다 오히려 불편한게 많았습니다.

음식은 물을 포함하여 철저히 유료입니다. 물 1병에 1.5유로, 간단한 식사도 판매하고..고교생 30여명이 탔는데 중간중간에 인솔교사가 조용히 하라고 하는데도 계속 떠들었습니다.

​학생은 어디나 마찬가지 인가 봅니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전원박수로 기쁨을 나타내고...오후 5시 10분에 파리 공항에 도착 하였습니다.

어제까지 있었던 '마드리드' 민박집은 사장 부부가 인터넷을 하지 못하는 탓에 인터넷 상태가 엉망이라 파리 민박집 찾아 가는 길 메모 하려니(프린터도 없다) 계속 오류가 떠서 하는 수 없이 민박집 전화번호만 겨우 알고 왔습니다. 전화 했더니 '7호선 타서 2번 출구로 나온 후 .....'라고 하였습니다.

안내센터를 찾아 문의하니 14호선을 타라고 하는 게 아닌가?
주인은 7호선을 타라고 하고 역 안내원은 14호선을 타라고 하고, 또 다시 헷갈립니다.

마침 지나가는 한국인 젊은 부부가 있어 물어보니, 지하철 지도를 펴서 한 참 보더니 자신들도 여행 왔다며 잘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한 참 고민하다가 민박집 주인 말을 듣기로 하고, 7호선 열차 타는 곳을 물어보니 아래 층의 22-24번 열차를 타라고 하였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니 22-24번 열차는 안 보이고 23번 열차 게이트만 있길래 '당연히 23번은 22-24번사이이니까 맞겠지' 하고 조금의 의심도 없이 기다리다가 열차가 오니 올라 탔습니다.

​올라 타자 마자 승객 한 사람에게 '7호선'이냐고 물어보니 '잘못 탔다. 7호선은 저쪽 편에서 타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맙다' 하면서 가까스로 열차를 빠져나와 건너편 게이트에서 탑승 하였습니다.

열차를 탄 후 안심이 안 돼 옆의 젊은 친구에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지도를 옆 사람에게 빌려다가 한참 보더니 안내센터 직원이 말 한 것이 틀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럴리가 있나 ? 참 ! 그럴리가 있습니다. 그동안 스페인에서도 수차례 경험 했으니까..자기가 목적지 전 역에 도착하면 알려 줄 터이니 안심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비교적 쉽게 1시간 반 만에 무사히 도착 하였습니다. 오늘은 새벽 00시 30분 부터 9시간 버스에서 시달리고 하루종일 심신이 피곤합니다.

 빨래하고 밥 먹고 한 숨 자야겠습니다. 아 ! 피곤하다....

다시 찾은 산티아고 성당

옛 날에은 아마도 이런 복장을 하고 순례의 길을 걸었지 싶습니다. 산티아고 성당을 짓기위해 설계를 고민하는 표정인 듯 합니다

어느 상점 앞~

순례자가 너무 곱게 차려 입었네요~

첫 날 만나서 3일 동안 함께 걸었던 독일인 노베르뜨와~

('산티아고'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산티아고-저가항공으로 파리행

​제1차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프랑스 길' 920km를 2009년 5월 7일 부터 6월 14일까지 37 일간 걷고 나서, 3 일간 스페인의 마드리드, 톨레도 및 세고비아를 배낭여행을 한 기록입니다.

38일 차)2009.6.15(월)('마드리드')

'마드리드'에서의 여행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이동은 밤에 하기로 하였습니다.

​오후 시 30분에 출발 하여 다음 날 아침 6시 25분에 도착하는 버스는, 50인승으로 승객들 중 절반 가량이 흑인들이었습니다. 땅이 넓은 탓인지, 길이 곧고 흔들리지 않아 마치 열차를 탄듯 쾌적하고 안락 하였습니다.

​중간에 두 번 휴게소에서 쉬는데 다들 내려서 음식을 사 먹었으나, 나는 어제 준비한 바나나와 빵을 먹었습니다. 이 곳 역시 여느 스페인 식당처럼 점원수가 적고 점원들의 느린 행동으로 인해 주문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만, 어느 누구도 재촉하거나 화를 내지않고 느긋이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어제 민박집 사장 하고 전화 했을 때, '버스에서 내려 바로 열차를 타고 전철역에 도착한 후에, 바로 오른 쪽 앞 골목으로 오면 된다'고 하였는데 역에서 내려 아무리 살펴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한참 생각하다가 '내가 착각 한게 아닐 까 '하고 배낭을 뒤져 수첩에 적혀있는 것을 보니 아닌게 아니라 내가 착각 한 것이었습니다.

수첩에는 확실하게 '오페라 역'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다시 행인에게 물어 역 안으로 들어가서 열차를 탔습니다.

'오페라'역에 도착 한 이후는 순조롭게 진행 되었습니다. 도착하자 마자 샤워를 하고, 8시30분에 시작한다는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니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이미 식사 중이었는데 내가 의자에 앉는데도 아무도 아는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식사를 하면서 이것저것 물어 보았습니다. 이들 중 연장자인 50대 초반의 남자는 식사를 하며 계속 불평을 털어 놓았습니다.

서울에서 출장 왔는데, 25유로씩이나 받으면서 시설은 너무 엉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내가 보기에도, 인터넷에 올린 내용과는 너무도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아파트를 개조한 민박집인데 2층 침대의 6인 실 두개로, 8명이 묵고 있었습니다. 식사는 6명이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의 좁은 복도에서 해야 했으며 샤워실은 가로 세로 60cm로 몸도 돌리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인터넷은 좁은 복도에 하나뿐인데, 주인 부부 모두 인터넷을 할 줄 몰라서 인터넷이 자주 에러가 발생하는데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녁까지 제공해주면 좋으련만 주인 부부가 딴 집에서 자는 관계로 아침만 제공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이 보다도 더 열악한 순례자 숙소만을 이용해 온 나는, 저녁을 제공 안 해주는 점 외에는 별로 불편한 게 없었습니다. 여학생 2명은 두달 째 배낭 여행중이고 마드리드 유학생 1명은 7일 째, 남자 직장인 1명은 20일 여정으로 유럽 여행 중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출장을 온 세 사람을 제외 하고는 모두 아르바이트로 여행비를 어렵게 준비한 터라 본 전을 뽑는다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돌아 다녔습니다.

아침을 먹고 왕궁에 갔더니 까미노를 마친 한국 신부님, 한국인 중년 부부와 한국인으로 보이는 많은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계단에 앉아 한국인 부부와 순례에 대한 담소를 하다가 혼자 시내 관광을 하였습니다.

점심은 길가에서 빵과 콜라로 때우고, 저녁은 모처럼 한국 식당에서 먹을 요량으로 물어물어 '한강'이라는 한국식당에 도착 했더니 오후 8시 30분에 오픈한다고 쓰여있었습니다.

​1시간 30분간 기다릴 마땅한 장소도 없거니와 설령 있다 하더라도 너무 피곤해 그때 까지 기다리기가 곤란할 것 같았습니다. 숙소로 돌아 오다가 '오늘의 메뉴' 있는 식당으로 가서 10유로 주고 식사 하였습니다.

이제껏 외국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다가 처음으로 혼자 식사 하려니 재미가 없습니다.

식사 후 '마요르 광장'에 오니 데모한다고 요란 하였습니다.

깃발을 들고 광장 주변을 빙빙돌면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구호를 외치는데, 3명의 경찰관이 팔장을 끼고 멀리서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저런 시위 문화를 도입할 단계가 됬는데...

숙소에 오니 27세의 한국인 남학생 한 명이 방금 도착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호텔조리과를 아르바이트로 졸업하고 작년에 미국의 식당에 취업해서 요리를 익히고 받은 돈으로 미국 3주 여행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주 3일간 마드리드를 구경한 다음, 해산물 요리로 유명한 스페인 북부의 식당에 취업할 계획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고 당차 보였습니다.

오늘 하루 '마드리드'시내를 열심히 걸으며 구경 했는데, 가이드 북에 있는 주요 관광지를 다 구경 했습니다.

'산티아고'를 걷고난 후라 역시 예상대로 재미가 별로였습니다. 내일은 민박 집 주인이 추천하는 '톨레도'나 가야겠습니다.

​('오리엔테'=PLAZA DE ORIENTE 광장)


'펠리페 4세'의 기마상이 서 있습니다.

​('펠리페' 4세의 기마상)


('알무데나'=CATEDRAL DE LA ALMUDENAA 대성당)


19세기에 건축 되었습니다.
(왕궁=PALACIO REAL)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인 '펠리페 5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닮은 호화로운 궁전을 지을 것을 명해 이 왕궁이 건립 되었습니다.

왕궁 안에는 2.800개나 되는 방이 있는데 일반인에게는 50개의 방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궁전의 외양은 신 고전주의 양식을 취하고 있으나 내부는 이탈리아 양식입니다.
('알무데나 대성당' 내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각 상)

'솔 광장'=PUERTA DEL SOL

'태양의 문'이라는 뜻. 광장은 스페인의 중심이자 마드리드의 심장부입니다. 광장 중앙에는 도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카를로스 3세'의 동상이, 광장 한 쪽에는 '마드리드'의 상징인 곰과 마드로뇨 나무 동상이 서 있습니다.

'마요르 광장'=PLAZA MAYOR)
광장으로 통하는 9개의 문이 있어 어디서나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매주 일요일에는 벼룩시장이 서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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