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지사 당선자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 원희룡 후보는 서귀포시 중문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시절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학창시절 내내 운동화는커녕 구멍 난 타이어표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초등시절 원희룡 당선자
어린 시절은 그는 가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닐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그렇다 보니 어린 시절 리어카 바퀴에 발가락이 끼어 거의 잘릴 뻔한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를 받지 못해 발가락 두 개가 위를 향해 뒤틀리는 장애를 갖게 됐다.

하지만 그는 늘 가슴에 큰 꿈을 간직하며 가난으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은 공부라고 믿었다.

“보다 큰 가치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과 함께 가난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난을 이해하고 동참할 수 있는 마음으로 승화시키자고 노력하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에 진학 한 후 전교수석을 한 번도 놓쳐 보지 않을 정도로 공부에 매진했고, 그렇게 공부에만 전념한 결과 당당히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것이 원희룡 당선자의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그러던 도중 그는 5월 도서관 앞 광장에서 열린 집회를 보고 80년대 대학가를 지배했던 학생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본 민주주의는 교과서에 배웠던 민주주의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였다.

기본적인 인권마저 유린당했던 원희룡 당선자의 20대. 현실에 부딪히면서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지역

▲ 서울대 입학 당시 원희룡 당선자
연고, 이념적 독기와 섬뜩한 증오심. 그 독기와 광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그가 정치를 하게 된 출발점이였다.

1987년 민주화와 1989년 동구권 몰락을 본 그는 학생운동에 몰입하도록 사로잡고 있는 가치관에 대해 허탈감을 느끼고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현실적인 세계에 좀 더 능동적인 역할을 하면서 공익적 기여를 하기위해 사법시험 준비를 결심한다.

그리고 준비 2년만인 92년 수석으로 합격했다. 이후 서울지검과 수원지검, 여수지청, 부산지검 등에서 검사로 재직하고 이후 2년여간 변호사 생활을 거쳤다. 그러다 2000년 제 16대 총선 직전 당시 거세게 분 젊은 피 수혈바람을 타고 곧바로 정계에 입문했다.

정계에 입문한 그는 16, 17, 18대 국회의원(서울 양천갑)과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제17대 대통령선거 한나라당 후보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역경의 세월을 딛고 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그의 인생은 마라톤이였다. 실제 그는 마라토너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꿈을 위해 달린다 42.195km의 여정 중 결승점에 다다르면 다리와 발뿐만 아니라 어깨와 팔, 심지어 얼굴의 근육도 마비가 된다. 빗물처럼 흐르는 땀은 속눈썹 끝에 메달려 시야를 가로막는다. 장애를 가진 발가락의 고통은 정점에 이른다. 지금이라도 그만 두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는 유혹이 너무 달콤하다고...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마라톤이 끝나고 힘든 여정이 마무리된다.”

“나에게 달리기는 인내와 겸손을 가르쳐 준다. 지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완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달리는 동안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하고 다른 본인의 모습을 보게된다고 달리는 동안 지혜와 큰 마음으로 복잡한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앎)'의 나이 쉰.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인생의 중간점에 선 그는 인생 초반 수석의 제왕으로 마음만 먹으면 1등을 했지만, 과연 정치 수석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제주도지사에 당선된 그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교해왔던 그가 제주의 발전을 위해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완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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