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소식 전할 일이 생겼다. 주인은 굼뜬 하인이 못미더워 말 한필을 내줬다. "빨리 다녀오라"는 조치였다. 행인이 그에게 물었다. "갈 길이 급한 모양인데 왜 말 타서 가지 않고 끌고 가는 거요?". "네 발로 가기보다 여섯 발로 가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이오". 하인의 대답은 한심하다는 듯 퉁명스러웠다. 중국 고전 '광소부(廣笑府)'에 나오는 우화(寓話)다.

말인즉 그럴듯하다. 그런데 '여섯 발로 가는 것이 네 발로 가는 것보다 빠를 것'이라는 생각은 왜 틀리는가?. 다리 수만 보고 실제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형식이 실제를 압도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율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15일 발족한 매머드 급 '민선 6기 새 도정 자문위원회'를 보면서 떠오른 우스개다. 원희룡 당선인은 15명의 상임고문을 포함한 210명 규모의 새 도정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도민대통합, 중국자본 대응 방안, 난개개발 방지방안, 중산간 보전 등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운 사항에 대한 다양한 자문을 제공하기 위한 조직이다.
 
여기에다 도민제안과 각종 의견을 효율적으로 수렴해 각 분과위원회에 전달하고 검토하는 역할을 담당할 도민위원 38명도 위촉했다.
 
이에 앞서 원당선인은 6개 위원회, 12개 분과에 전문위원 23명을 포함한 137명의 '새 도정 준비 위원회'를 구성하여 가동하고 있다. 준비 위원회와 자문위원회, 전문위원과 도민위원 등을 포함하면 385명의 거대한 군단(軍團)급(?) 조직이 민선6기 도정준비에 투입되고 있다.
 
놀라운 규모다. 역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규모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 15대 김대중 대통령직 인수위원은 25명이었다. 실무위원을 포함 모두 180명 규모였다.

16대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도 비슷했다. 인수위원 26명에 전체규모 230명선이었다. 17대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은 24명에 총규모 183명이었다.

18대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는 어땠는가. 26명 인수위원에 200명 규모였다.
 
규모로만 봤을 때 원당선인의 제주도지사직 인수위원회는 역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크게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민선 5기 우근민 도정의 도지사직 인수위원은 34명 규모였다.
 
원 당선인과 함께 야당과의 '연정(聯政)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인은 어떤가.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혁신위원회)는 15명 안팎의 실무 형 인수위원회로 꾸려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규모의 면에서 전국 1%라는 제주도, 이런 규모의 도지사직 인수위원회를 꾸림에 있어 역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압도하는 거창한 조직을 만든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도민 통합정신의 발로(發露)인가. 여야나 네편 내편을 가리지 않고 다양성을 아우르겠다는 협치도정(協治道政) 쪽수 채우기인가. 물론 허장성세(虛張聲勢)는 아닐 터이다. 봉황의 깊은 뜻을 어찌 참새가 알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민사회에서는 말이 많다. 새 도정 준비위의 효율성에 대한 걱정도 그것이다. 채 보름도 남지 않는 준비기간이다. 이 짧은 기간에 거대조직이 제대로 굴러가겠느냐는 의구심인 것이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새 도정 준비위 조직을 들여다보면 기능중복의 틈새가 보인다. 기능의 옥상옥(屋上屋)으로 비쳐지는 부분도 없지 않다.

준비위원회의 분과별 위원과 분과별 전문위원, 자문위원, 도민위원 등은 유기적 조합이라기보다는 자칫 중구난방(衆口難防)을 부르는 혼란의 얼개가 될 수도 있다.

매머드 인수위원회가 얼굴 알리기 명함용이거나 세 과시용이라는 일각의 지적은 그래서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앞서 예로 든 중국 우화는 바로 거대 규모의 준비위와 자문위의 비효율성에 대한 우려의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다.

사실 자문위 내부에서도 이미 걱정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문위는 준비위 활동을 보완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 데 결과가 상당히 의심스럽다"거나 "핵심 정책 현안이나 기초자료도, 방향도 불분명한데 어떤 자문을 제대로 할 수있느냐"는 불평이다. 걱정의 소리이긴 하다. 그러나 자문의 기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인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전래(傳來) 속담이다. '요리사가 많으면 고깃국을 망친다'는 외국의 경구도 있다. '사람 수가 많다고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 있다.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경고나 다름없다.

업무의 효율을 이야기 하자면 소수정예(少數精銳)가 대안일 수 있다. 미국 첩보영화 '미션 임파서블'은 소수정예가 '불가능한 사명'을 완수하는 내용의 영화다. 사명과 열정으로 뭉친 소수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는 조직이야기다.

그렇다고 이왕지사 한참 활동 중인 준비위와 자문위의 규모를 축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더 큰 혼란만 부를 뿐이다. 새 도정에 대한 신뢰성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준비위나 자문위가 사회일반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옥상옥이나 비효율의 걱정을 걷어내는 일이다. 사소한 명분이나 자존심 보다는 '희망찬 제주 미래를 담아내라'는 거대 담론에 귀기우려 달라는 것이다.

시간은 없고 할 일은 많다. 준비위와 자문위 활동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14일이 제주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새도정 4년의 운명이 여기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 도정 준비위와 자문위의 사명은 이처럼 엄중하고 막중하다. 거대조직의 잡음을 불식시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긴가민가하면서도 그만큼 도민의 관심과 기대가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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