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하다고 했다. 산뜻하고 깔끔했다는 말도 있었다.
원희룡지사의 도지사 출마와 선거운동 과정, 당선 후의 행보와 직원조회 형식의 조촐한 취임식을 지켜봤던 이들의 상당수는 그랬다.

새누리당에서 차출된 깜짝 출마는 변화를 바라는 도민 적 욕구에 불을 질렀다. 반응은 열화(熱火)였다. 순식간에 선거 국면을 압도해 버렸다. 도지사 당선의 기폭제(起爆劑)였고 그로 인해 당선됐다.

(새월호 참사의 영향이었지만) 요란하지 않은 선거운동은 하나의 새로운 기록이었다. 로고송도 없었고 시끄러운 차량 마이크 유세도 없었다. 법이 허용하는 선거 비용도 쓰지 않았다. 돈 선거도 마타도어도 없는 그야말로 깨끗한 공명선거를 주도했다. 제주선거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선 후에는 매일 매일, 마을을 순회하는 민생탐방이었다. 민심의 바다에서 도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챙겼다. 이른바 협치(協治)공약의 실천이었다.

경쟁하다 낙선한 야당후보를 직접 찾아 진정성을 담아 위로했고 그를 새도정준비위워회(인수위원회)위원장으로 추대 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야당인사를 도정 주요보직에 기용하려 삼고초려(三顧草廬)했다는 말도 들렸다. 여당도지사로서 야당과의 연정(聯政)을 기획한 것이다.
연정(戀情)을 품었던 야당으로부터 거부당해 연정제의가 짝사랑 수준으로 머쓱해 버렸지만 보기드믄 정치실험이었다.

원희룡 도정 출범을 보는 일반의 시선은 이렇듯 긍정적이었다. 취임 일주일도 안됐는데 무슨 부정 탈 일이 있었겠는가. 설령 착오나 실수가 있다고 해도 일정기간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자는 것이 경험으로 익숙해진 미덕이다. 일종의 ‘밀월기간’인 것이다.

그러나 여론은 아침 다르고 저녁 달랐다. 새 도정 출범 일주일도 안돼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신선하고 산뜻하고 깔끔했다’는 입 고은 소리가 ‘신선하되 미숙하고, 산뜻하되 어설프고, 깔끔하되 매끄럽지 못하다’는 부정적 이미지로 채색되고 있다.
아무리 조석변(朝夕變)여론이라지만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가파르다.

일주일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여과장치 없이 시중에 흘러 다니는 설익은 고위직 인사구상이 냉소적 기류를 타고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원지사는 당선인 시절,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당에 사실상의 연정을 제안했다. 제주시장 등 고위직까지 제의했다.

이 같은 일련의 작업이 원지사로서는 ‘협치의 마중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분야의 정책연대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색깔이나 정책과 정강이 전혀 다른 여·야 정당이 연정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정부를 구성하려는 것은 ‘생산능력이 없는 노새의 짝짓기’처럼 비생산적이고 희극적이다. 또 다른 정쟁의 씨앗만 뿌릴 뿐이다.

그러기에 “원지사가 다른 정치적 노림수를 겨냥해 이미지 관리나 무책임한 포퓰리즘 행보를 하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협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제주도정의 통합지향 가치를 지사의 대권행보 실험용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강력한 의구심의 표현인 셈이다.

탕평인사(蕩平人事)의 이름으로 진행됐던 야당인사에 대한 ‘제주시장직’ 제의 등도 마찬가지다.
여당 도지사가 다른 야당인사에 대한 고위직 제의는 책임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야당과 책임을 공유하겠다는 얄팍한 발상이 아닌가. 책임회피의 노골적 수작이라는 독설도 없지 않다. 통합 지향의 협치가 야합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여당은 여당으로서, 그리고 야당은 야당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이 있는 것이다. 책임정치 구현은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야당인사에 대한 고위직 제의는 제의의 순수성여부에 관계없이 협치와 거리가 멀다. 자칫 협치가 협잡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같은 직위제의가 제주시장 및 서귀포시장 공모가 진행 중인 와중에 이뤄졌다는 데 있다. 공모에 응모한 인사들을 들러리로 세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을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한 셈이다. “들러리 공모는 공직을 놓고 사기를 친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무늬뿐인 공개모집이었지만 두 행정시장의 공모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당초 응모기간은 6월19일부터 23일 오후까지였다. 그런데 응모자가 있었는데도 느닷없이 마감을 7월2일까지 연장했다.
특정인을 낙점하기 위한 ‘반칙’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더욱 해괴하고 놀라운 일은 또 있다. 2일 마감한 두 행정시장 응모결과 제주시장에 6명, 서귀포시장에 8명이 응모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감도 되기 전에 두 행정시장 내정자가 실명으로 급속하게 나돌았다.
제주시장에는 시민사회단체 출신 L씨가, 서귀포시장에는 현역 여성 고위 공직자 H씨가 낙점됐다는 것이다. 시험도 보기 전에 합격자가 발표된 것이다.

특히 거명되고 있는 제주시장 내정자(?)는 사회에 대한 공적기여 여부나 사회적 여론검증에 관계없이 지사와 고등학교 동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반의 냉소는 벌레 씹은 듯 고약하다. 이로 인해 지사에 대한 사회적 냉기는 더욱 싸늘해 졌다.

권력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잘못된 정책추진을 고발하고 비판해야 할 시민단체나 구성원이 권력의 부름을 받아 감시대상인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면 참으로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민단체의 순수성에 대한 훼절(毁節)이며 배신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사 취임후 도청 내 새로운 권력 이너서클에 대한 설왕설래(說往說來)가 많다,
지사와 고등학교 동문인 특정고 출신 인사들이 지사 최측근으로 배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쪽에서다. ‘일고산성(一高山城)’이니, ‘아이고 마피아’니 히죽거리는 소리가 심심치 않다.

여론에서 거론되는 K(정무부지사), L(제주시장), H(서울본부장), L(협치정책실장), K(공보관), Y(정책보좌관) 등등과 큰 바위처럼 버티어선 자타가 공인하는 도지사 당선 일등공신 Y(자문위원장)이 지사와 같은 고등학교 동문들이다.
‘일고 산성’이니 ‘아이고 마피아’는 그냥 나오는 소리가 아닌듯하다.

여기에다 비서실·협치정책실 등에 포진하는 15명이 넘는 ‘그림자 부대’가 지사의 친위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이를 보고 듣는 새누리당 쪽의 반응은 씁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괘씸하고 배신감을 가질 수도 있을 터이다.
‘협치의 담론’이나 도정 개방직 인사 관련 사안에서 철저히 무시되고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원지사의 친정이다. 그런데도 야당을 포함한 시민단체에는 구애하며 도정참여 제안이나 직위 제의를 하면서도 친정인 새누리당에는 ‘소가 닭 쳐다보듯’ 무심하고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윙크는 고사하고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는다는 불만도 많다.

“집토끼는 버리고 언제 잡힐지도 모르는 산토끼만 좇아 간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야당과 시민단체만 협치 대상이고 여당은 퇴치 대상이냐”는 노골적 반감도 예사롭지가 않다.
‘외눈박이 물고기(비목어)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듣는 듯, 새누리당 처지가 고단해 보일 뿐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전래되는 속담이다. 떡잎을 보면 장차 나무의 됨됨을 미리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의 상태가 중요하다는 일깨움의 비유다.

그렇다면 원희룡 도정의 떡잎은 어떤가. 미래를 담보할 만큼 건강한가.
“떠도는 인사잡음이 사실이라면 싹수가 노랗다”는 세간의 지적은 출범 일주일도 안 된 지사에게는 뼈아픈 독수(毒手)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잘 관리하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의 훈수(訓手)가 될수도 있다.

인사는 공정하면서도 투명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인사의 기본원리가 여기에서 출발한다.

고대 중국의 탕(湯)임금은 정치에서 현명한 인재를 구하는 방법으로 입현무방(立賢無方)을 제시했다. 현명한 사람을 찾을 때는 출신성분이나 학연 지연 혈연 등 연고를 따지지 말고 “현명하냐, 아니냐, 역할 수행능력만 보고 고르라”는 것이다. 맹자(孟子)의 가르침이다.

인사는 만사(萬事)라 했다. 만 가지 일의 성패가 사람쓰기에 달렸다는 교훈이다. 인사가 망사(亡事)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할 일이다, 출범 일주일 원도정에게 뼈아픈 고언(苦言)을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여간 안타깝지가 않다. 그러나 원도정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냥 눈치만 볼일은 아니다. 할말은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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