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나라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린다는 화공(畵工)에게 물었다.
“무엇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가”.
“말이나 개를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왕이 또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그리는 것이 가장 쉬운가”.
화공은 주저함이 없었다. “도깨비를 그리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왕이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말이나 개는 항상 사람들의 눈에 띄어 그 모양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금만 잘못 그려도 사람들이 바로 알아보기 때문에 그리기가 어렵습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도깨비는 형체를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그려도 시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도깨비가 그리기 쉬운 이유입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고사(故事)다.

원희룡 도정의 핵심 키워드는 협치(協治)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도깨비처럼 ‘원희룡 도정의 협치’도 형체가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다.

‘공무원이 주도하는 일방적 행정을 탈피해 도민과 시민사회단체, 분야별 전문가 등이 모여 도정 현안을 함께 논의하고 집행하는 시스템’이라는 설명이지만 대다수 평균적 도민들에게는 생소하고 난해하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글로벌 거버넌스 분야의 최고 석학중 한명으로 알려진 ‘가이 피터스(Guy peters·미국 피치버그 大 석좌교수)는 거버넌스(협치)를 ’한가지 방향과 목표를 향해 다양한 행위자들을 조율하고 인도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럼에도 설명은 추상적이고 내용은 모호하다. 전문가 그룹의 논리 영역에서나 이해 될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밀집모 쓰고 땀 흘리던 농부가 박사모 쓰고 책상에 앉아 있는 것 처럼 어색하다.

‘협치라는 이름의 도깨비를 그리는 원희룡 도정’
“형체를 모르기 때문에 도깨비 그리기가 쉽다“는 화공처럼 ”실체가 모호한 협치를 포장해 현학(衒學)적 이론으로 도민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은 바로 원희룡도정의 실체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주시장 인사 문제만 봐도 그렇다. 원지사는 이지훈 제주시장 인선배경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아이디어와 탁월한 업무능력’을 들었다. 듣기 거북할 정도로 아부 수준의 친사였다.

그러면서 “시민사회 출신이기에 협치의 실제모습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큰 역할을 기대한다”고 했다.

정말 그런가. 이 시장은 취임하자마자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다. 시세 차익을 노린 부동산 투기 의혹에다 건축허가 특혜 외압 등 부도덕한 의혹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시민단체까지 들고 일어섰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응분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염치모르고 부동산 투기와 특혜를 받아 사익(私益)을 챙기는 탐욕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탁월한 업무 능력’이란 말인가. 부동산 투기나 특혜 분야에서는 탁월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도민을 우습게 여기고 조롱하는 것이다. 원희룡지사에게 60%를 넘는 지지를 보냈던 도민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발탁 배경이라면 원희룡 도정은 이미 망조(亡兆)가 들었다.

‘협치의 탈을 쓴 땅 투기 협잡(挾雜)’에 농락당한 원희룡 도정의 인사 난맥(亂脈)은 앞으로 전개되는 도정 인사에 두고두고 부끄러운 구정물이 될 것이다. 이참에 화끈하게 털고 가지 않으면 향후 4년 원희룡도정의 뼈아픈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도깨비를 그리는 또 하나의 ‘협치 시스템’이 있다. ‘협치정책실’이다.
원지사는 조직 개편을 통해 ‘협치정책실’을 신설한다고 했다. 실장의 직급은 별정직 3급이다. 선거캠프에 있던 인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지사는 협치정책실이 기존의 정책기획관과 업무가 중복되고 옥상옥(屋上屋)이라는 지적이 있자 ‘순수 보좌기구 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자료를 찾고 자문을 수합하고 손님을 영접하는 정도‘가 협치정책실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옹 식’의 변명이다.
이 정도의 보좌기능이라면 하위직급 또는 임시직이나 아르바이트를 써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3급의 고위직급을 신설하여 서류 심부름이나 시키겠다는 것은 소도 웃을 일이다. ‘낙하산 직위 사냥’의 전형(典型)을 보는 것 같아 여간 씁쓸하지가 않다.

특히 이와 관련한 원지사의 히스테릭한 과민 반응은 벌써 ‘선출된 독재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 같아 오싹한 한기(寒氣)가 느껴진다.

원지사는 제주MBC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 “협치정책실과 충돌하거나 갈등을 빚는 공무원들이 있다면 인사조치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수많은 시청자가 보고 듣는 공중파 방송을 이용해서다. 노골적으로 공무원들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으름장이다.
협치를 말하면서 공무원들을 겁박(劫迫)하는 저돌성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취임 보름도 안 돼 권력의 망치를 휘두르는 것인가.

도깨비 그리기는 또 있다. 원지사의 경직된 대 언론관이다.
언론은 소통의 창구다. 민(民)과 관(官)을 잇는 여론의 징검다리이며 소통의 파이프라인이다.
거침없는 시시비비(是是非非)나 가감 없는 여론 전달은 비뚤어진 권력이나 통치기구에 경종을 울리고 바로 잡는 민주사회의 자양분이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명언은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경구다.

그런데도 원지사는 언론과의 관계에서 빗장을 걸어 잠그겠다는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최근 도의회 의장단의 예방자리에서다. 원지사는 “신문을 안 본다. 전혀 안 본다. 앞으로도 보지 않을 것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놀랍다. 경위가 썩 유쾌하지 못한 폐쇄적이고 비겁한 언론관을 보여 준 것이다.

이것이 원희룡지사가 자랑해마지 않는 ‘협치도정’의 맨얼굴이라면 여간 실망스럽지가 않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제주의 미래가 걱정이다.

원희룡도정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도에 대한 공적기여도 없고 준비도 없었다, 제대로 된 정책하나도 검증되지 않았다. 들어 섭섭할지 모르지만 준비 안 된 도지사다.

그럼에도 얼떨결에 새누리당에서 차출되어 변화의 물결에 올라탔다가 자고나니 어느덧 도지사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은 케이스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고 있다.
중앙정치는 도통할지 모르지만 지방행정은 아마추어적이고 서툴다는 지적이다. 여론이 그렇다. 원도정이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취임 보름도 안됐다. 언론 등과의 관행적 밀월기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원희룡 도정에 보내는 도민들의 눈빛은 점점 싸늘해지고 있다. 비판의 목소리도 거침이 없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있음이다.

물론 원인 제공자는 원지사다.
검증을 거치지 않는 즉흥적인 제주시장 임명은 '원희룡 도정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다. 당연히 책임은 지사의 몫이다.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도 지사가 해야할 일인 것이다.

공무원들에 대한 침묵 강요나 ‘그림자 부대’를 동원한 보좌기능 강화, 신문을 격리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폐쇄적 언론관은 권위주의 시대의통치 기술을 배우려는 것이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
이는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완고한 불통 이미지만 키울 뿐이다.

원도정은 ‘협치라는 이름의 도깨비’에만 매달릴 일이 아니다. 구체적 제주발전 미래비전을 밝히고 도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위민행정, 생활정치를 통해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제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올인해야 하는 것이다. 머리는 똑똑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마음이 딱딱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제주도정은 도깨비 그림처럼 아무렇게나 그려도 되는 실험용일수는 없다. 지사의 중앙정치 발판에 이용되는 모르모트나 실험실의 청개구리는 더 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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