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은 기상이변으로 인한 심각한 환경위기를 경고한 다큐멘터리다.
미국 부통령을 지낸 환경보호론자 ‘엘 고어’의 작품이다.

지구 온난화로 닥칠 인류의 재앙을 예고하고 이에 대한 무관심과 무감각을 경고했다.
당장의 불편이 싫어 미래의 재앙(죽음)을 모른 척 하거나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위험을 지적한 것이다.

‘개구리는 뜨거운 물에 넣으면 펄쩍 뛰쳐나온다. 그러나 수온이 15°c인 미지근한 물에서는 헤엄을 잘 친다.
이 상태에서 1°c씩 서서히 온도를 높여나가면 감각이 마비돼 온도가 올라가는 줄도 모르고 서서히 죽어간다‘.

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종말도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그렇게 서서히 찾아들고 있다는 메시지다. ‘불편한 진실’의 예다.

원희룡지사 취임 두 달이다. 생뚱맞게 ‘불편한 진실’을 끌어낸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두 달간 행보가 역동적이지 않아서다. 미지근한 물에 안주하다가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위기에 처할 수도 있음을 경계(警戒)하고자 함이다.

그동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도정수행은 볼 수 없었다. 도정을 중앙정치무대의 실험용으로 착각하거나 중앙정치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어서다.
그러기에 똑똑하고 패기에 찬 지사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고 있다는 소리가 많다.

‘불편한 진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알고 싶지 않는 진실이다.
또 많은 사람들에게는 꼭 알아야 할 진실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원희룡 도정의 불편한 진실’도 지사로서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민들에게는 알고 싶은 진실인 것이다.

지사로선 듣기 거북한 소리겠지만 취임하며 자랑스럽게 내걸었던 ‘협치(協治)’는 아직도 구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관념적이다.

네편 내편 없이 상하좌우를 아우르는 도정(道政)을 펴겠다는 각오일 터이지만 아직도 논리는 애매하고 색깔은 모호하다.

협치로 포장됐던 공모(公募)를 통해 발탁 임명됐던 제주시장의 ‘중도 탈락’은 개방형 직위공모의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특정인 사전 내정설, 들러리 응모자들의 심리적 상처 등 형식적이고 말뿐인 공모제의 부끄러운 맨얼굴이 여실히 드러났다. 심사 전부터 거론되던 인사가 그대로 임명된 것이다.

이런 비정상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무늬뿐인 개방형 직위 공모제에 대한 비아냥 거림은 듣기가 거북할 정도였다.

개방형 직위의 사전 내정은 제주시장만이 아니었다. 제주관광공사 사장, 제주도립미술관장도 ‘호박에 줄긋기 식 무늬만 공모’를 통해 사전 내정대로 임명됐다.

이런 이유로 다시 모집하는 제주시장 역시, 이 같은 구설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지사는 “사전 내정은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지사와의 이런 저런 인연, 선거 캠프에 참여했던 인사의 추천설 등 구체적 연결고리와 이름까지 거명되고 있다.

소문대로 거명인사가 사실로 발탁될 경우 ‘원도정의 인사 시스템’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제에 행정시장이나 도 산하 기관장 공모제도에 대한 개선책을 논의 해 볼 필요가 있다.
차라리 공모제를 피하고 도지사와 도정 철학을 공유하고 책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임명제로 전환하는 것이 강력한 도정 수행과 책임행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인사권자의 인사권 보장과 인사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듣기 거북한 소리는 또 있다. 읍면장 향피제(鄕避制) 시행이다.
해당지역출신 공무원을 읍면장 인사에서 배제하여 연고주의 타파, 토착비리 근절 등을 통해 일 중심 행정을 펴겠다는 ‘봉황의 뜻(?)’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다만 읍면은 대민(對民)행정이며 위민(爲民)행정의 전초기지다. 공무원이 지역주민과 밀착해야 하는 것이 읍면행정의 현실인 것이다. 연고성이 강한 행정조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주민과의 소통과 대민 밀착행정을 위해서도 지역출신을 배치하는 것이 바람직 한 일이다.
 외부에서 온 읍면장이 지역주민과 소통이 되지 않고 지역실정에 어두울 뿐만 아니라 얼마 없어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향피제는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판·검사나 경찰 등 소위 권력기관이 토호세력을 형성하고 토착비리 온상이 되었던 사실에 근거하여 읍면장 향피제를 도입했다면 벼룩 한 마리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음이나 다름없다.

검사출신인 지사의 심리적 협곡에 이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자리잡아 이것이 읍면장 향피제로 나타난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연고주의에 의한 읍면장 비리사례가 있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기에 더욱 그렇다.

개방형 직위의 공모나 읍면장 향피제는 그러기에 다시 한 번 더 검토해 볼 일이다.

원도정의 또 다른 ‘불편한 진실’은 피부에 와 닿는 경제정책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도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소홀하거나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 도민들이 긍정하고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자본의 활용문제, 예를 들면 복합리조트나 카지노 문제도 운동권적 시각이나 도민정서에 묻어 갈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도민 소득 증대를 위해 열린 시각으로 당당하게 접근하는 것이 책임 있는 도백의 자세가 아닌가.

일본을 비롯해 지금 아시아 각국이 카지노와 복합리조트 등 글로벌 내수 부흥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이다.

이외에도 지지부진한 강정 민군복합관광미항 문제 등 원도정이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은 한 둘이 아니다.

주요 정책의 현실 적합성이나 성공가능성 보다는 개혁의 이미지만 지나치게 앞세워 강박함으로써 정책이나 행정이 파행을 부른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지근한 물에 발이나 담가 현실에 안주해도 좋을 만큼 지금 제주도는 한가하지가 않다. 치열하게 내달려야 할 절박한 시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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