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차 길을 헤매다

07:15-15:30(8시간 15분), 알베르게:20유로(아침포함)

어제부터 의도적으로 가능하면 나 혼자 걸을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혼자 걸으니 여유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공부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생각도 하고, 사진도 찍고, 수시로 쉬기도 하고 '나초'보고는 "당신하고 걸으면 내가 따라가기 힘이 든다. 그러니 나를 의식하지 말고 먼저 걷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중간에 만나, 식사를 같이 하거나 알베르게에서 만나자"고 섭섭해 하거나 오해하지 않도록 잘 이야기 하였더니 수긍 하였습니다. 중간에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울창한 숲길에서 두 갈래 길이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봐도 너무도 헷갈렸습니다.

직진하는 방향의 큼직한 나무 표지판엔 산티아고 길이라고 크게 쓰여 있는데, 그 옆에는 화살표시로 왼쪽으로 가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서서 한 참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왼쪽으로 가라고 한 표시가 잘못 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직진 했는데 가다보니 아스팔트길의 대 도로가 나왔습니다.

그 곳엔 좌회전 하라고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가이드 북을 꺼내보니 내가 가는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도록 되어있는데 길옆에 서서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에게 물어보려고 수 차례 손을 들었지만, 고속도로​ 인지라 그냥 질주 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다가 생각해 봐도 분명 이 길은 내가 온 길로 돌아가는 길인 것 만 같았습니다. 다시 되돌아와 한참 이리저리 둘러봅니다.

그러나 그 쪽도 아무런 표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잘못된 길로 가는가 싶었지만, 다시 화살표 방향으로 계속 직진했더니 10여 분만에  드디어 정식 카미노 화살 표시가 보였습니다.

그 길을 따라 30여 분을 걷노라니 '나초'가 두 갈래 길에서 비를 맞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나중에 알베르게에서 물어보니 길을 잘못 든건 나 혼자 뿐이었습니다.

착하고 고마운 '나초'와 같이 걷지 않는다고 하느님이 벌을 주신걸까?

비가 온 뒤라 시정이 너무도 좋습니다.

몇몇은 산을 보고 앉아 있고, 몇몇은 지나가는 나를 쳐다보며 앉아 있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는지 저기 '나초'가 보입니다.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집들이 눈길을 끕니다.

독일인 '카차'와~~

-가다보니 '카차'가 길가에 쉬고 있었습니다.

몸이 불편하여 아침 5시에 '엘리나'와 함께 출발 했다고 합니다.

10년 넘게 신은 신발을 신어서인지 무릎이 아프다고 하여 어제 저녁에 피내침을 몇 개 꽂아 주었었습니다. 무릎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면서 고마워했습니다.

이 후 근 두 시간 동안 같이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자신은 사이클을 무척 좋아하며, 카미노 길을 걷는 이유는 작년에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져서 그 슬픔을 잊기 위해서라고 혼자 외롭게 걷다가 '엘리나'와 같이 걸으니 너무 좋다고 합니다.

오늘 가는 '야네스'는 큰 도시라 신발파는 곳이 있을 것 같다며 좋아 하기도 합니다.

'카차'의 배낭은 거의 내 배낭의 두 배는 됨직 해 보였습니다.

너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니까 무릎이 아픈것 아니냐면서, 그녀의 배낭을 들어 보았더니 정말 내 배낭의 두 배 가까이 됨직 하였습니다.

뒤에서 보면 머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배낭이 가득 하였습니다.
돌담이 너무도 예쁜 숲길을 걸어갑니다.
 
짧은 길이지만 계단과 평지를 동시에 만든 사람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런 물이 모여, 모여 큰 강물이 되고 결국엔 바다로 흘러가겠지요

이곳에서 잠시 쉬고 가겠다며 나 보고 먼저 가라고 하였습니다.

나 딴엔 그녀와 보조를 맞추느라고 무척 천천히 걸었건만, 아픈 그녀에게는 무리였나 봅니다.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이 안 갑니다. 사진 기술이 없다 보니 현장감을 잘 살려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었는데도 황홀할 만큼 너무도 예쁜 풍광이네요~

꼬불꼬불한 아리랑 고개가 두 시간 이상 계속 이어집니다.

이런 호젓한 숲길도 있습니다.

아! 너무도 아름다운 환상적인 풍광이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마을 한 복판에 소형 배들이 정박하고 있습니다.

알베르게 보다 더 저렴한 호텔

야네스'에 도착하자 마자 알베르게로 가는 표지판이 길 왼쪽에 있었습니다. 카미노 방향은 직진이고..혹시 이 곳에 '나초'가  있을지도 몰라 10여 분간 걸어가니 사진의 호텔이 나옵니다. 들어가 보니 호텔과 알베르게를 겸용하는 곳이었습니다.

가격은 12유로로 무척 쌌습니다.'혹시 나초라는 스페인 순례자가 왔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합니다. 그 후 30여 분 걸어서 허름한 역 알베르게에 도착해 물어보니, '나초'가 미리 도착해서 내 침대까지 잡아놓고 있었습니다. 또 한번 '나초'에게 감동 받습니다~

'야네스' 시가지 풍경입니다

이탤리아노 '루시아'가 만든 파스타로 저녁을 먹습니다.

한국인 3명, 스페인인 2명과 이탤리아노 1명이, 5유로씩 내서 음식재료 사 오는것은 스페인인 두 명이 하고, 요리는 이탤리아노 '루시아노'가  책임지기로 하였습니다. 이탤리 정통요리인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는데, 분위기가 좋으니 음식맛도 더 있는 듯 하였습니다. 돈이 많이 남았는지 '마뉴엘'이 고급 와인을 두 병 더 사왔습니다. 오랫만에 술을 많이 마셨는데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헌데,아직까지도 고급와인과 저급 와인의 맛을 구분하지 못 합니다.

내게는 고급이나 저급이나 그저 다 비슷비슷하기만 합니다.

#16일차 판단 미스로 거금 주고 호텔에서 자다
07:00-14:30(7시간 30분),  호텔:25유로

'리바디세야'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 30분. 알베르게까지는 20여분을 더 걸어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도 피할 겸, 점심 시간도 됬고 해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3시 30분 경에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방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알베르게는 이 곳 하나 뿐이고~

중간에 '나초'의 학부모를 만나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지체했고, 점심까지 먹고 가다보니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싼 호텔이 없느냐고 묻고 물어 겨우 별 두개짜리 호텔을 찾아 거금 25유로 씩을 물고 묵었습니다. 비가 계속 오므로 빨래는 생략하고, 모처럼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이므로 지인들에게 그간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밀린 일기와 오늘 일기, 걷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손발톱을 깍고 어제부터 통증이 있었던 무릎 위 근육에 침을 꼽았습니다.

비싸기는 하지만, 나만의 시간을 가질수 있어서  역시 호텔이 좋기는 좋습니다.

 '나초'는 피곤한지 씻지도 않고 그냥 쿨쿨~~~

색상과 모양이 각기 다른 스페인 집들

마치 동화속에나 나옴직한 아름다운 풍광들이 즐비하게 나타납니다

처음 보는 야생화가 너무 이뻐 보입니다

정글같은 숲 길을 지나기도 합니다~~

한국의 농촌과 너무도 흡사한 풍경입니다

지나온 곳을 되돌아 봅니다~

너무도 환상적인 풍경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줍니다 

'나초'는 '비아델라 플라타' 길(은의 길)에 있는 '카세레스'에서 수학과외 선생을 하는데, 오늘 그의 학생과  부모를 만나는 날입니다. 

그들이 이 곳에 바캉스를 즐기러 왔는데 마침 '나초'도 이 길을 걷는다니 온 김에 만나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거였습니다.

자신은 영어를 잘 못하지만, 자기 제자인 학생은 영어를 잘 하니 만나게 되면 나와 대화가 잘 될거라면서 나도 합석 해야 한다며 미리 쐐기를 박습니다. 14살인 '하비에스'는 영어를 곧 잘 하는데, '나초'와 엄마가 나와 영어로 대화하라고 자꾸 부추겨도 부끄럽다는 듯 말을 안 건네기에, 내가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학생에게 준비해간 선물과 한국 동전을 기념으로 주었습니다.

우리보고 힘들터인데, 자신들의 차로 '리바디세야로 모시고 가서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만, 완곡히 거절하였습니다.

우리는 걷는게 목적이기 때문에 고맙지만 차를 타고 갈수 없으며, 저녁도 우리끼리 해결하겠다고 하여 맥주 한 잔 마시고 헤어졌습니다.

쉴 때마다 양말을 벗어 뜨거워진 발 바닥을 식히곤 했는데 이곳에선  체면상 신발만 벗었습니다.

모처럼 흙길을 걷습니다

카미노 방향을 말해주는 표시인듯 합니다.

바닷가를 끼고, 이 처럼 아름답고 색상과 디자인이 다양한 집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야경 이모저모 

우리가 묵었던 호텔

내일 아침과 점심용 음식을 슈퍼에서 사 오고 있는 '나초'의 모습

#17일차 흙 길과 숲 길을 원 없이 걷다

06:15-14:00(7시간 45분), 알베르게:4유로

모처럼 호텔에서 둘이서만 기분좋게 자고 6시에 출발 하였습니다. 길이 너무 좋았습니다. 모처럼 흙 길과 숲 길을 원 없이 걸은 날입니다. 무릎 통증이 더 심해져 약국에서 약을 사서, 쉴 때마다 발랐습니다. 네델란드인 부자 순례자를 만나 30여 분간 함께 걷기도 했습니다. 좋은 인상의 아버지인 '레슬리'(50세)는 성격이 아주 활달하고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내게도 아주 살가롭게 대하였습니다.

자신의 6대조가 아프리카 수단에서 네델란드로 이민을 왔으며 원 조상은 인디언이라고 합니다. 내가 '당신은 동양인 같아 보이고, 당신의 아들 '자이메'는 한국인 같아 보인다'고 하자 매우 좋아 하였습니다. 카미노는 첫 번째냐고 묻길래, 세 번째라니 무척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자신은 겨우 40일 전에야 산티아고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번에 15일 휴가를 얻어 걷고 있는데, 걸어보니 예상했던것 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은 아주 아름다운 나라라고 알고 있다면서 언젠가는 한국에도 꼭 방문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중간에 보니 아들 '자이메'가 아주 힘들게, 한 참 떨어져서 걷고 있었습니다. 왜냐고 물으니, '무릎에 이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날 헤어지고 나서, 7월 24일 산티아고에서 만나 기쁨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농촌과 흡사한 마을을 지납니다

한국의 시골 풍경같은 마을을 지납니다.

어느 식당 앞의 설치예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보기에는 좋습니다.

바다를 오른 쪽에 끼고, 계속 잔디 밭 같은 폭신폭신한 길을 걷습니다.

이어지는 고사리 밭 사이로~~

우리나라에선 봄철에 고사리 순이 올라오는데 이 곳에선 7월에도~~

제주 올레길을 연상케 하는 바다풍경입니다.

계속 이런 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래사장 옆으로 잔디밭 길이 쭉 이어져 있습니다

이 집 앞을 지납니다~~ 

나를 기다리다 지쳐, 길가에 누워있는 나초

쉴 때는 반드시 신발을 벗으라는 내 충고를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할머니와 5분여 동안 얘기를 나누는 '나초'

 -무슨 말을 했을까? 나초와 의사소통이 잘 안되니 물어보기도 미안하고 대충 감으로 짐작만 할 따름입니다.

독일 청년들이 보무도 당당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알베르게 2층 창가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는데 '레슬리'부자가 지나 갑니다

-인사를 하자 "그냥 가려고 했었는데 조금 쉬면서 생각해보겠다"면서 배낭을 내려놓고 두 시간 정도 쉬다가 다시 출발 하였습니다.

내 수건에 싸인을 하고있는 '자이메'

이동 슈퍼마켓에서 저녁거리를 사는 '마뉴엘'

알베르게 근처에 슈퍼가 없는 관계로 이 처럼 이동 슈퍼가 대행했습니다.

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 '나초'

 서로 설거지 하겠다고 다투다가 결국엔 내가졌습니다.

막상 내일 '나초'와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근 10여 일 동안 그와 정들었던 시간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시골 출신에다 13남매의 막내인 그와 어떤 부분에선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나에 대한 여러 가지 배려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빠른 걸음이 습관이 된 그가 나를 위해 걷다, 쉬고를 반복하고, 알베르게에 맨 먼저 도착해서는 나를 위해 침대를 미리 준비해 놓고, 음식 먹고 난 후 쓰레기를 부득불 자신이 버리겠다고 한 다던지, 음식 값을 자기가 낸다고 우긴다던지, 무거운 것을 자신이 나 대신 들고 간다던지,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내 자랑을 늘어 놓는다 던지, 걷다가 내가 너무 뒤쳐지면 일부러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척 하면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던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언젠가 스페인에 오게되면 그를 다시 만나리라. 물론 그에게도 정중히 내 고향 제주를 방문토록 요청한 터입니다.

나는 프랑스 길에서 산 모자와 제주올레 스카프, 핸드폰 고리와 한국동전, 지폐 등을 주었습니다.

모자와 스카프에는 내 이름을 썼고 '나초'는 쪽지에 나를 만나 너무도 행복 했었다는 글을 써 주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루시아노' 8시 20분 경 독일 대학생이 배낭을 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2시 반경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글을 쓰고, 남들과 대화를 하며 휴식을 취하던 그가 돌연 배낭을 매고 인사를 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 갈려고 그러느냐?' 물으니 ‘비가 안 오는 날씨이니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야영 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텐트가 안 보여서 '텐트는 어디 있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돗자리만 있으면 된다.'며 웃으며 떠나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뭉클해집니다.

그때서야 며칠 전 내가 묵었던 '산티에나' 알베르게에 에서도 서너 시간 머물다가 다시 출발한 게 생각이 났습니다. 아, 그때도 야영한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이 친구는 비올 때만 알베르게에 자는 모양이었습니다.

텐트를 갖고 다니는데도 배낭이 내 배낭보다 가벼워 보입니다. 그대 이름은 멋쟁이, 멋쟁이, 멋쟁이 젊음과 용기가  새삼 부럽습니다.

알베르게 옆 잔디밭에서 캠핑하고 있는 독일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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