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을 전후해 한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책이 있었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원제: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였다.

100만부 이상의 판매 기록이었다. 철학인문 서적이 한국에서 밀리언 셀러가 되었던 경우는 드물었다.

당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데도 폭발적 판매 부수를 올린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정의에 대한 시대적 갈망’이라거나 ‘역설적이게도 정의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정의가 불의와 뒤엉키고 원칙과 반칙이 착종(錯綜)되는 정치 사회현상에 대한 가치혼란이 ‘정의의 담론’을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정이야 어떠하든, 정의와 불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키게로의 말대로 ‘정의가 미덕의 최상’이라면 ‘불의는 최악의 악덕’인 셈이다. 따라서 정의와 불의는 선과 악의 대척점에 서 있다.

한 쪽은 아름다운 향기로 다가서지만 다른 한 쪽은 역겨운 악취를 풍기며 달려든다.
80년대 섹시스타 김부선의 정의와 살똥스러운 국회의원 김현의 발칙한 불의도 마찬가지다.

먼저 김부선 이야기다. 뜻하지 않게 28세에 미혼모가 된 후 홀로 딸을 키웠다.
“갈곳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서 산에서 슬프고 고단한 심신을 달랬다”는 그녀의 인생은 기구했다.

대마초로 인한 고초와 사회적 질시와 냉대는 홀로 딸을 키우는 미혼모에게는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견기기 힘든 삶의 무게였다.
그러나 살아야 했다. 주저앉고 싶어도 이를 악물고 일어서야 했다.
10여년간 분식집 장사를 하면서도 구차한 생각을 가질 수는 없었다. 세상과 맞서 당당하게 겨룰 수밖에 없었다.

이번 ‘아파트 난방비 비리 폭로’도 당당하지만 억척스런 삶의 학습효과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이다.
10여년 간의 끈질긴 문제 제기와 “쉬쉬”하며 비리를 숨기려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과 한 통속인 일부 주민들의 공론화 방해공작에 맞서 싸웠다.

세상에, 27개월간의 한겨울인데도 난방비가 0원으로 나온 계량기가 300건, 42평 35평형 등에서 겨울 난방비가 100원, 200원, 1500원 등, 9만원 미만이 2398건이었다.
서울시의 감사결과 김부선의 폭로내용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10여년간의 외로운 싸움이 정의로운 시민정신의 승리로 반전되는 순간이었다.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채 외면하거나 침묵을 지키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정의 실현에 대한 반역이다.
김부선은 침묵하지 않았다. 비리와의 외롭고 길고 거친 전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정의는 진실의 실현이다. “정의란 저마다 자기 일을 다 하고 남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플라톤의 말이다.
정의는 행동에 의해서 진실해지는 것이다. 행동이 따르지 않은 정의는 사이비 정의다.

김부선의 정의실현은 온몸을 던져 쟁취한 것이기에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격려와 박수를 받는 것이다.
온갖 질시와 손가락질과 따돌림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끈질기게 비리를 파헤치고 고발한 용기는 살아있는 ‘시민정신의 표상‘이라 할만하다.

김부선은 제주에서 태어났다. 모슬포가 고향이다. 그곳 여고를 졸업했다.
그녀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제주도가 고향임을 밝혔다. “고향사람들 처럼 서로 용서하고 사이좋게 지내면서 함께 아파트에 꽃을 심고 가꾸었으면 좋겠다”다고 어색해진 관계의 주민들과 화해를 제의했다.

‘제주의 딸 김부선’, 비리척결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그녀의 용기는 가상하고 자랑스럽다.
정의실현의 긍극적 목표는 아름답고 행복한 삶에 있다. 그녀의 삶이 아름답고 행복한 향기로 가득 찼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다음은 슈퍼 갑(甲) 국회의원 김현(새정치민주연합)의 갑(甲)질이다. 그동안 의정활동에서 보여줬던 이미지는 ‘싸움닭’이었다. 삿대질과 악다구니가 그녀가 휘두르는 무기가 아닌가 여겨질 정도였다.

최근 대리기사에 대한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전 간부들의 집단 폭행사건과 관련한 김현의원의 말과 행동도 마찬가지다. 당돌하고 지저분했다.
권력의 위세를 뽐내면서도 언행은 무책임하고 비겁했다.

김의원은 사실상 대리기사 집단폭행 사건의 원인제공자였다. 저녁 9시부터 자정 넘게 유가족 대책위 간부들과 술을 마셨다. 다른 유족들의 단식농성장 인근에서 그들과의 술자리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과의 싸움으로 연명하는 대리기사를 불러 30분이나 대기 시켰다. 대리기사는 가난하고 고단하여 세상에서 더욱 주눅들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다.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그가 기다리다 지쳐 “가겠다”고 했다. 생계수단인 ‘다른 콜’이라도 연결할 요량이었다.

그러자 김의원이 그를 불러 세웠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국회의원이라고 으스대는 안하무인 적 위세가 사건의 발단이었던 것이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는 협박조로 신분을 과시하려는 깡패나 조폭 등 주먹세계의 언어다.
김의원을 감싸 안으려는 이석현(새정치민주연합 ·국회부의장)의원 말처럼 ‘46kg의 허약한 체구와 온순한 성품의 주부인 김현의원이 할말’은 아닌 것이다.

‘46kg의 허약 체구와 온순한 성품의 아줌마’라면 우선 대리기사에게 용서를 빌었어야 했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동안 대기시간의 수고비를 주며 양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도 나이가 한창 위인 아저씨 뻘 대리기사에게 반말과 막말을 섞어 위세의 패악질이었다.

그래놓고 여론이 악화되자 “그런 말 한적도 없다”, “폭행 장면을 보지도 못했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목격자들의 일관된 주장과 영상자료로 사건의 전말이 대충 밝혀지고 있는데도 그렇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참으로 비겁하고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김의원은 안전행정부와 경찰청등을 소관하는 ‘국회안전행정위원회’ 소속이다. 경찰조사나 수사에 갑(甲)의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위치다.
이 같은 김의원의 갑(甲)질은 사건 발단에서 경찰 조사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사건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지구대로 가지 말고 경찰서 형사계로 가라“는 명령조였다.
경찰서 형사계에는 이미 폭력행위혐의를 받고 있었던 세월호 간부들은 없었다. 그들은 되레 병원을 찾아 “폭행을 당했다”고 엄살이었다.

집단폭행을 당한 대리기사와 목격자만 조사 받았던 것이다. 김의원의 보이지 않은 영향력의 위세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의원은 경찰의 통보 출석일을 무시하고 아무예고도 없이 하루 전에 경찰서에 기습적으로 출석하여 두 시간이나 형사과장실에서 앉아 있다가 변호사가 오자 그때서야 참고인 진술을 받았다.
슈퍼갑 국회의원의 위세는 그렇게 대단했다. 교만이 하늘을 찔렀다.

김의원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가까운 우리에게만 따뜻한 사람이 아닌 넓은 우리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는 문구가 돋보인다.

양의 탈을 쓴 늑대이거나, 악마의 숨겨진 두 얼굴이거나,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화끈 거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의원이 내 걸 문구는 아닌 것이다.

“차라리 김부선을 국회로 보내고 국회의원 김현을 국회에서 끌어내리자”는 인터넷 댓글의 삿대질은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슬픈 현실이다.

‘영화배우 김부선과 국회의원 김현의 경우‘에서 외롭고 힘든 정의실현의 아름다움과 불의한 권력의 패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의와 불의‘의 변별력을 위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